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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1 (금)

클라우제비츠, 바보 이반, 전쟁 비즈니스 [강수돌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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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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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수돌 | 고려대 융합경영학부 명예교수



흑백논리 내지 이분법의 위험성을 알면서도 전쟁에 관한 두 유형의 인간을 상상해 본다. ‘클라우제비츠형 인간’과 ‘바보 이반’이다. 이는 일본의 재야 언론인 히로세 다카시의 ‘왜 인간은 전쟁을 하는가’(프로메테우스)에 나온다.



‘클라우제비츠형 인간’은 이런저런 구실로 이간질을 일삼고 적대적 싸움을 선동하는 부류다. 원래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1780~1831)는 프로이센(독일)의 영리한 군인이었다. 그의 유작인 ‘전쟁론’에 나오는, “전쟁은 다른 수단으로 벌이는 정치의 연장선”이란 명제는 지금도 널리 회자된다. 그래서 클라우제비츠형 인간은 결코 전쟁을 멈추지 않는다. 그들에게 전쟁이란 곧 비즈니스(돈벌이)이기 때문이다.



반면, 톨스토이의 소설의 주인공 ‘바보 이반’은 순진한 농부로, 우연히 왕이 돼서도 정직하고 부지런하게 땅을 일구며 산다. 남의 것을 탐하지 않고 늘 사이좋게 지내려 한다. 이들에겐 처음부터 진영도, 국경도, 적군도 없다. 싸울 이유가 없으니! 흔히 우리가 시골 마을에서 만나는 대다수 노인들도 바보 이반처럼 순하다. 또 각박한 한국에서 살던 우리는 동남아 등 시골 마을에 가면 눈빛부터 선한 ‘바보 이반’들을 쉽게 본다.



문제는, ‘클라우제비츠형 인간’이 ‘바보 이반’ 같은 사람들을 선동하고 은근히 강제해, 결국 전쟁터로 내몰아 서로 피 흘리게 하는 일! 정작 자기들은 안전한 곳에서 술과 음악을 즐기며 잔치를 벌이면서도, 온 세상을 적군과 아군으로 나눠 살육하게 한다.



여기서도 분명하듯, 전쟁은 결코 인간 ‘본성’ 탓에 생기는 필연적인 게 아니다. 사회 갈등의 최악 형태인 전쟁은 ‘클라우제비츠형 인간’이 ‘바보 이반’들을 선동한 결과다! 그런 선동의 이유는 결국, 돈과 권력, 즉 이해관계다. 히로세 다카시의 통찰 덕에 나는 전쟁을 전혀 새로운 눈으로 보게 되었다.



물론, 앞의 두 유형은 전쟁 지향과 평화 지향이라는 이상형을 설정한 것일 뿐, 현실에선 그 중간에 여러 인간형이 스펙트럼으로 존재한다. 예컨대, 전쟁이건 평화건 세상일에 아무 관심 없는 이들도 많고, 또 목소리 큰 편에 쉽게 끌리는 이들도 많다. 그러나 우리들 경험에 따르면, 처음부터 전쟁을 좋아하는 이는 거의 없다. 즉, 전쟁은 인간 본성이 아니다!



히로세 다카시도 2차 세계대전 이후 소련·동구 몰락까지 47년간의 분쟁사를 잘 정리한 결과, 분쟁사는 결국 ‘선동사’라 한다. 즉, 대다수는 ‘바보 이반’처럼 살지만 극소수의 ‘클라우제비츠형 인간’들이 부단히 전쟁을 선동해 왔고 지금도 그렇다!



그러고 보니, 지금 한국 사회에도 ‘전쟁 의지’에 충만한 ‘클라우제비츠형 인간’이 제법 보인다. 2024년 11월 초 미국 대선을 앞두고 한반도 전쟁 위기와 계엄 음모가 감지됐다.



첫째, 한기호 국민의힘 의원과 신원식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 간 문자 대화를 보라. 둘 다 장성 출신으로 육군사관학교 선후배 사이다. 한 의원이 “우크라이나와 협조가 된다면 북괴군 부대를 폭격, 미사일 타격을 가해서 피해가 발생하도록 하고 이 피해를 북한에 심리전으로 써먹었으면 좋겠다”는 문자를 신 안보실장에게 보냈다. 이에 신 실장은 주저 없이 “넵, 잘 챙기겠다. 오늘 긴급 대책회의를 했다”고 했다. ‘적극 검토’란 얘기! 이에 대해 김민석 민주당 최고위원은 “우크라이나의 불길을 서울로 옮기고자 획책한 외환 유치 및 계엄 예비음모”라며 맹비판했다.



둘째, 윤석열 정부에선 ‘충암파’가 옛 ‘하나회’에 비견된다. 예로, 김용현 국방부 장관, 여인형 국군방첩사령관, 박종선 777사령관, 황세영 서울경찰청 101경비단장과 경찰 인사권자인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충암고 출신이다. 특히, 2023년 11월 방첩사령관이 된 여인형 중장은 윤 대통령의 충암고 후배로, 지난 8월 특전사령관, 수방사령관과 함께 당시 김용현 대통령경호처장 공관에서 비상시 계엄을 검토한 의혹이 있고, 그 뒤도 방첩사에 전두환 사진을 걸어 논란이 됐다. 방첩사 전신인 기무사령부는 박근혜 정부 때 ‘계엄령 검토 문건’을 작성한 전력이 있다.



셋째, 최근엔 홍장원 국정원 차장이 ‘군 참관단’과 함께 브뤼셀의 나토 본부를 방문해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을 브리핑했다. 참관단은 우크라이나로 가, 정보·국방 당국자들과 전황 공유 및 향후 협력(북한군 포로 심문·공작 등)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그러나 이 ‘전쟁 의지’에 충만한 ‘클라우제비츠형 인간’들의 출현을 단지 고교 동문들에 의한 정치적 카르텔 정도로 봐선 안 된다. 히로세 다카시의 혜안처럼, 사실상 그 뒤엔 비즈니스 세계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자세히 보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 외에 최근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의 배경엔 자본주의와 비자본주의 간의 이해관계 충돌이 있다. 또 당사국 주위엔 이해관계 동맹이 형성돼 있다. 한·미·일이 우크라이나, 이스라엘 우방이듯, 러시아 곁엔 중국, 이란, 북한이 있다.



무한한 자본축적을 원하는 자본은 1990년을 전후로 소련·동구 사회주의 붕괴와 더불어 새로운 시장과 공장을 창출했다. 세계시장과 세계공장이 거의 완성되자, 불행히도 2008년 세계금융위기와 더불어 세계자본주의도 사실상 파산했다. 지금은 국가 부채나 소비 촉진 등으로 억지 연명 중이다. 그 잘나가던 삼성전자조차 고전한다.



누군가에게 맹렬히 쫓기던 짐승도 막다른 골목에서 마지막 순간엔 죽기 아니면 살기로 자폭하는 경향이 있다. 자본은 무한이윤을 추구하며 본의 아니게 스스로 막다른 골목에 내몰렸다. 해고, 부채, 소비, 독점, 투기 등 전통적 출구가 더 이상 약효가 없을 때 마지막 순간엔 생사를 걸고 전쟁을 벌인다. 군수산업과 재건산업이 돈 된다!



1929년 세계 대공황 국면에서 구조조정과 대량실업, 공장폐쇄와 소비위축이 이어지자 미국에선 뉴딜 정책(케인스주의)을 폈지만, 그 역시 약효가 다하자 마침내 2차 대전을 통해 ‘최종 해법’을 찾았다. 그 뒤의 자본축적은 ‘대가속 시대’였다. 어쩌면 지금이 그런 때인 듯하다. 전쟁은 자본엔 돌파구일지 몰라도, 인류나 지구엔 지옥문(!)이다. 전쟁은 다른 수단으로 벌이는 비즈니스의 연장이다. 그러니 ‘바보 이반’들이여, 생명·평화를 위해 모두 일어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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