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의 무덤으로 수억원 받아내기도
20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대규모 택지개발의 경우 통상 맹지나 농지에 이뤄진다. 농지의 경우 경자유전(耕者有田·실제 농사짓는 사람만이 농지를 가질 수 있다) 원칙을 규정한 농지법 제6조 제1항에 따라 취득할 시 지자체에 농업 경영계획서(영농계획서)를 제출해야 한다. LH 직원들은 신도시 예정지의 농지를 매입한 후 논·밭에 벼나 고구마, 옥수수 등을 재배하겠다고 신고했다.
경기 시흥시 과림동의 LH 직원 투기 의혹 토지에 나무 묘목들이 심어져 있다/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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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지가 아니더라도 자손이나 관리해 줄 사람이 없는 무연분묘(無緣墳墓)가 있으면 거짓말을 통해 땅 지분을 주장하기도 했다. 개발 대상지 안에 무연분묘를 가족의 묘인 것처럼 속여 보상금을 타내는 수법이다. 이 경우 보상금뿐 아니라 분묘 이전비와 보조비도 함께 타낼 수 있는데, 이 금액이 최대 수억원에 이를 수 있다.
이미 지난 2012년 LH 직원이 무연분묘 81기의 위치를 브로커에게 넘기고 그 대가로 2600만원을 받아 실형이 선고됐다. 이 브로커는 가짜 유족들을 불러모아 3억5000만원의 이전 보상금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에 의혹이 불거진 광명·시흥 신도시 지역에서도 일부 공인중개사들이 묘지로 가득 찬 토지를 쪼개 판매한 것으로 알려졌다.
땅을 확보했다면 보상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토지 지분을 바꾸는 ‘쪼개기’와 ‘합치기’ 작업이 시작된다.
지분 쪼개기는 보통 건물이나 땅의 지분을 나눠 구분 등기를 해서, 개발 시 아파트 분양권이나 대토(代土)보상을 많이 받아내는 행태를 뜻한다. 투기 의혹을 받는 LH 직원들 가운데 일부는 구입한 토지를 1000㎡로 쪼갰다. 1000㎡가 LH의 보상을 받기 위한 최저기준이기 때문이다.
현행 규정상 개발 관련 공고일 이전부터 1000㎡ 이상의 땅을 받으면 대토 보상이나 아파트 입주권을 받을 수 있다. 시흥·광명 신도시 부지에서 투기 의혹을 받는 5000㎡가량의 부지는 1000㎡의 4개 구역으로 쪼개졌다. 이 경우 분양권을 4개까지 늘려 받게 된다. 고양 창릉 등 다른 3기 신도시 예정지에서도 ‘쪼개기’ 의심 사례가 확인됐다.
1000㎡가 채 안 되는 토지들은 ‘합치기’를 통해 기준을 맞췄다. 경기도 과천 미니신도시 예정지에서는 LH 직원이 다른 2명과 함께 대상 517㎡ 필지 2개와 208㎡ 필지 1개 등 3개 필지를 12억원에 매입했다. 이들은 두 달 후 필지 3개를 하나로 합쳐 1350㎡의 땅을 만들었다. 업계에서는 이를 보상 기준인 1000㎡를 넘기기 위한 작업으로 이해하고 있다.
◇ 나무 심고 개 키워 보상금 추가로 타내
투기꾼들은 땅의 크기와 형태가 정해졌다면 추가 투자를 통해 가치를 올리는 시도를 한다. 보상받는 땅의 가치가 높아야 보상금도 더 많이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땅으로 수익 행위를 해왔다면 토지보상법에 따라 수익 행위에 해당하는 만큼의 보상을 해야 한다. 때아닌 유명세를 탄 ‘용버들’, 속칭 왕버들이 등장하는 것이 바로 이 지점이다.
LH 직원들은 영농계획서를 통해 농지에 벼·옥수수 등을 재배하겠다고 신고했지만, 실제로는 용버들이나 에메랄드그린 등의 묘목을 심었다. 용버들 등 수목(樹木)이 벼 등의 작물보다 보상 가치가 훨씬 크기 때문이다.
수목 보상을 위한 감정을 할 때 감정평가사들은 조달청 ‘조경수목 단가표’를 참고한다. 따라서 조달청의 단가가 비싸게 책정돼있거나, 단가표에 등록되지 않은 희귀수종이라 보상액을 과다 책정할 수 있는 수목을 고르는 것이 유리하다. 보상 시 나무 1주당 이식 비용의 2배를 우선 보상하기 때문에 나무의 수가 많은 것도 중요하다. 또 크고 두껍게 자라야 이식 비용을 더 많이 받을 수 있다.
용버들은 이 조건을 거의 완벽하게 충족하는 수종이다. 묘목은 1그루당 3000원 안팎에 불과하지만, 병충해에 강하고 특별한 관리 없이도 빠르게 성장한다. 이렇게 자라난 용버들은 조건에 따라 편차가 있지만 2~3년만 지나도 최대 수만원까지 가치가 올라간다.
용버들 나무를 제대로 키우기 위해서는 3.3㎡당 1그루 정도 심는 것이 적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LH 직원들은 1㎡당 20그루 가깝게 용버들을 빽빽하게 심었다. 그래도 용버들 나무는 큰 무리 없이 자라고 있었다. 이렇게 광명·시흥 신도시 부지 일대에 심어진 왕버들의 보상가는 대략 87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됐다.
나무 외에도 동물이나 비닐하우스 등도 동원된다. 지난 2010년 위례신도시 토지 보상이 이뤄질 당시 LH는 위례신도시에서 투기 목적의 비닐하우스 1700여동, 무단으로 반입한 벌통 8000여개를 적발했다.
미사·감일·감북지구 등에서도 토지 보상을 노린 770건의 불법 설치물과 닭 921마리, 개 640마리, 오리 504마리 등을 적발했다. 현행 규정은 나무의 이식 비용 보상처럼 ▲닭 200마리 ▲개 20마리 ▲오리 50마리 이상을 기르면 땅값과 함께 축산업 손실비와 이전비 등을 보상하도록 했는데 이를 노린 것이다.
경기 광명시 한 공무원이 매입한 노온사동의 토지에 지난해 12월 설치한 지하수 시설이 보이고 있다. 그 옆으로 얼마 되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 비닐하우스가 세워져 있다. 이곳은 지난해 이 공무원이 밭 1천322㎡를 취득한 곳이다/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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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접보상’까지 받아내면 투기의 완결
사전 투기의 보상은 이것 외에도 더 있다. ▲이주자 택지 ▲생활대책 ▲협의양도인택지 등 간접보상이 그것이다.
‘이주자 택지’는 신도시 예정지 공람공고일(발표일) 이전 1년 전부터 집을 갖고 있으면서 거주한 사람이 받을 수 있는 택지다. LH 직원들이 속칭 ‘벌집’이라 불리는 임시 조립식 주택을 지은 이유가 바로 이 때문으로 보인다. 특히 이 주택들은 수도·전기도 들어오지 않아 투기 의혹을 강하게 받고 있다.
‘생활대책용지’는 토지 수용으로 생계 수단을 상실한 사람에게 생계를 영위할 수 있는 상업용지에 대한 우선 분양권을 주는 것이다. 일반 분양가보다 싼 가격에 신도시 상가를 분양받을 수 있는데, LH 직원들이 쓰지도 않을 비닐하우스를 지은 것이 생활대책용지 때문 아니냐는 의혹이 나온다.
‘협의양도인택지’는 토지 1000㎡를 가진 토지주가 토지 보상에 적극적으로 임하면 제공하는 일종의 단독주택용지 매입 권리다. 집과 땅을 수용당하는 대가로 현금 보상을 받을 수 있는데 이 중 일부 금액만큼 다가구주택이나, 상가주택을 지을 수 있는 단독주택용지를 우선 분양받게 된다. 이 경우 싼값에 신도시 땅을 살 수 있고, 이렇게 산 땅을 전매할 수도 있어 부동산 전문가들은 협의양도인택지를 노리고 투기에 나선 이들이 많은 것으로 보고 있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현재 개발 관행은 지난 1980년대 국가보위입법회의에서 만든 법과 제도에서 비롯됐다"면서 "제대로 만들어지지 못한 법률로 과거의 개발 관행이 아직도 이어지고 있는 것이 근본적 문제"라고 했다. 그는 "대표적인 것이 ‘묻지마 결정’ 후 수용을 강제하는 비밀주의"라며 "사업 일정이 다소 지연되더라도 투명성을 강화하고 보상이 정당히 이뤄질 수 있도록 사업 공개주의 원칙을 도입하는 것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유병훈 기자(itsyou@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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