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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5 (목)

이슈 [연재] 뉴스1 '통신One'

[통신One] 세계 두 번째로 오래된 민주주의의 아이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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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여성투표권 채택 50주년

뉴스1

스위스 여성들은 1971년에 투표권을 쟁취했고, 일부지역에서는 1990년에 인정되었다. 사진은 영화 '거룩한 분노'의 한 장면. 조디악 필름(Zodiac films) 페이스북 게시물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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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뤼에르=신정숙 통신원) = 50년 전, 1971년 2월 7일은 스위스 여성들이 공식적으로 투표권을 얻은 날이다. 언뜻 들으면 2021년 오늘도 직접투표가 시행되고 있고 민주주의의 상징인 스위스에서 여성 참정권이 합법적으로 인정된 게 고작 50년이라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스위스에 10년 넘게 살면서 놀라웠던 사실 중 하나는 이 투표에 관한 것이다. 일년에 도대체 몇 번의 투표가 시행되는지, 또 시행되는 그 투표용지 안에 들어있는 안건은 몇 개나 되는지, 투표의 종류는 뭔지 스위스 국민들조차도 투표 내용을 다 파악하기 힘들 정도다.

투표에 대해 첨언하자면, 연방·칸톤·꼬뮨 투표가 있는데, 교육·도로·교통·치안·세제·사법 등의 문제는 주민투표로 각 칸톤(주州)과 꼬뮨(읍,면)이 결정하며, 국민제안으로 제기된 연방헌법 개정이나 국제기구 가입 등 국가 전체의 문제는 연방정부가 전 국민을 상대로 국민투표로 결정한다. 꼬뮨 투표의 경우 영주권자에게도 투표의 기회가 주어지고 있고, 때때로 동네의 안건들은 투표 대신 매년 한 번씩 열리는 총회에서 거수로 결정되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다양하고, 섬세하고, 체계적인 선거가 진행되는 스위스에서 여성의 참정권 역사가 50년이라는 사실은 다른 유럽국가와 비교해 볼 때 다소 충격적이다. 1906년 핀란드를 시작으로, 노르웨이를 포함한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이 여성 선거권을 도입했고, 세계 대전을 기점으로 여성들의 존재감이 강력하게 발휘되면서 1920년까지 독일, 러시아, 오스트리아와 미국이 여성들의 선거권을 인정했다. 스위스 이웃국가들인 프랑스, 벨기에와 이탈리아는 1945년과 46년 사이에, 한국도 해방 이후 1948년에 시행되었다.

영화 <거룩한 분노(원제 : Die göttliche Ordnung , 2016)>의 주인공 노라는 1970년 평화로운 스위스 시골 마을에서 남편을 내조하고 두 아들을 돌보며 살고 있는 가정주부다. 집안 일을 하며 농장 일도 돕고, 시아버지의 수발까지 들며 살고 있던 노라는 결혼 전 하던 일을 다시 하고 싶지만 남편의 동의없이는 할 수 없는 당시의 법률에 따라 일을 할 수 없다.

노라는 어느 날 여성 인권 관련 자료를 접하게 되면서 여성의 사회적 불평등에 눈을 뜨게 된다. 이후 주변의 불행한 환경에 처해 있는 여성들과 연대를 이뤄 ‘여성투표권을 위한 지역 운동 위원회’를 결성해 취리히의 대규모 시위에 참여하고, 마을 주민들을 대상으로 행사와 워크숍 등을 개최하는 등 1971년 2월 7일 연방 투표를 통해 ‘스위스 여성 투표권’이 통과되기까지 꾸준히 투쟁한다.

영화의 배경이 된 마을은 당시 투표율 58%, 찬성율66%로 통과된 여성 투표권을 1990년까지 거부한 아펜젤 인너호텐의 헤리자우였고, 촬영 당시 엑스트라로 동원된 마을 노인들 중 일부는 실제로 투표가 이루어질 때 끝까지 반대표를 던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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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니 로즈마리(73)는 나이 마흔이 넘어서야 직접 투표를 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 신정숙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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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여성참정권 역사는 주로 대도시를 중심으로 이루어졌고, 여타 국가와 마찬가지로 험난한 과정을 겪었다. 이렇게 힘겹게 얻어진 투표권을 처음으로 행사했던 소감을 시어머니, 로즈마리 (73)에게 물어봤다.

"뉴스를 통해서 알게 됐지만 직접 투표를 하기 시작한 건 내 나이 마흔이 넘어서였지. 내가 스물 셋일 때쯤 법안이 통과됐고, 그로부터 20년이 훌쩍 지난 후에야 선거에 관심을 가졌어. 그땐 먹고 사느라 바빴고, 지금처럼 선거가 제대로 홍보되는 것도 아니어서 모르고 지나칠 때가 더 많았지. 그리고 투표할 때마다 안건이 많아 그 내용을 다 읽어보고 결정하는 것도 쉽지 않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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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투표용지와 투표 관련 설명 책자. © 신정숙 통신원


올해의 첫 연방선거의 투표 용지와 투표 안건 설명 책자다. 왼쪽 투표 용지에는 세 개의 안건에 대해 찬반의사 표시를 하고, 오른쪽 붉은 색 책자에는 이들 안건에 대한 일종의 설명서로 총 55쪽에 내용들이 들어있다.

이 책자를 꼼꼼하게 읽어보고 권리 행사를 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대체로 안건만 보고 결정하기도 하지만 대충 훑어보고 투표를 하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다. 의사 표시를 한 투표 용지는 회신 봉투에 넣어 꼬뮨 사무실에 마련된 투표함에 넣을 수도 있고, 투표일 (2021년 3월 7일)에 신분증을 지참하고 꼬뮨에 가서 직접 투표할 수도 있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스위스의 민주주의는 여성에게 완전한 시민권을 부여한 마지막 국가 중 하나가 되었다. 역설적으로 1848년 초기 민주화가 여성참정권이 늦게 도입된 주요 원인이었다고 하는데 이 권리를 다른 나라에 도입한 것은 의회지만 이는 스위스 헌법을 개정해야만 가능했고 따라서 국민 투표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리고 스위스 남성 통치자, 즉 남성들의 보수성과 특권이 이러한 결과를 가져왔다고 전 스위스 연방통계청 정치, 문화, 미디어부 담당국장 베르너 세이츠(Werner Seitz) 는 그의 저서(Aofie Wartebank geschobe)에서 설명하고 있다.
sagadawashi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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