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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그림이 있는 도서관] “넌 말을 더듬는 게 아냐, 강물처럼 속삭이는 거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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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나는 강물처럼 말해요

조던 스콧 지음|시드니 스미스 그림|김지은 옮김|책읽는곰|52쪽|1만3000원

말을 더듬는 아이는 늘 교실 뒷자리에 앉았다. 오늘은 말할 일이 없기만을 바라면서. 한 명씩 돌아가며 좋아하는 장소에 대해 이야기하기로 한 날, 발표를 망친 아이를 데리러 학교로 온 아빠는 강가로 차를 몰았다. 그러고 낙심한 아이에게 말해 줬다. “너도 저 강물처럼 말한단다.”

도도하게만 흐르는 강물 같아도 그 안에서 물결은 굽이치고, 부딪쳐 부서지고 소용돌이친다. 그러면서도 꾸준히 나아가는 강물에서 자신의 모습을 본 아이는 비로소 위안을 얻는다. 이 합일과 치유의 대목은 특별히 책장이 넓게 열리도록 구성했다. 아이의 침울한 얼굴을 클로즈업했던 페이지를 파노라마처럼 활짝 펼치는 순간 강의 잔물결이 햇살 받은 어류의 비늘처럼 눈부시게 반짝인다.

조선일보

/책읽는곰


‘강물처럼 말한다’는 표현은 캐나다 시인인 저자가 어렸을 때 아버지가 말 더듬는 아들에게 실제 들려줬던 말이라고 한다. 저자는 “강물 앞에 서면서 유창하다는 것에 대해 달리 생각하게 됐다”고 했다. “나도 가끔은 아무 걱정 없이 말하고 싶어요. 우아하게, 세련되게, 당신이 유창하다고 느끼는 그런 방식으로요. 그러나 그건 내가 아니에요. 나는 강물처럼 말하는 사람이에요.” 수묵화처럼 담담한 삽화는 직설적 묘사를 지양하면서도 아이가 처한 상황과 아이가 느끼는 감정을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강가에 다녀온 뒤에도 아이는 말을 더듬는다. 그러나 이제 아이는 생각대로 말이 나오지 않을 때면 그 당당한 강물을 생각한다. “나는 강물처럼 말한다”고 되뇌며 용기를 얻는다. 다시 돌아온 발표 시간에 아이는 두려움 없이 말한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는 바로 그 강가라고. 채민기 기자

[채민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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