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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5 (월)

이슈 불법촬영 등 젠더 폭력

“레깅스 몰카도 성적 수치심 유발” 대법, 무죄를 뒤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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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 수치심 유발, 인격권 침해”

자신의 개성을 표현하거나 신체 일부를 드러냈더라도 이를 몰래 촬영할 경우 성적 수치심을 유발하고 인격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조선일보

몰카 일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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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형사1부(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카메라 등 이용 촬영) 혐의로 기소된 A씨의 상고심에서 최근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유죄 취지로 파기하고 사건을 의정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6일 밝혔다.

A씨는 지난 2018년 5월 버스를 타고 가다 하차하기 위해 출입문 앞에 서 있던 B씨의 엉덩이 부위 등 하반신을 핸드폰 카메라로 약 8초 동안 몰래 동영상 촬영한 혐의로 기소됐다.

1심은 A씨가 촬영한 부위가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다른 사람의 신체’에 해당한다고 판단해 유죄를 인정하고 A씨에게 벌금 70만원 선고와 함께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24시간 이수를 명령했다.

그러나 항소심은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B씨가 성적 수치심을 느꼈다고 단정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A씨에 대한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의사를 표시했다는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A씨의 행위가 부적절하고 B씨에게 불쾌감을 준 것은 분명하다”면서도 “A씨가 특별히 B씨의 엉덩이 부위를 확대하거나 부각시켜 촬영하지는 않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B씨가 입고 있던 레깅스는 B씨와 비슷한 연령대의 여성들 사이에서 운동복을 넘어 일상복으로 활용되고 있고, B씨 역시 이 같은 옷차림으로 대중교통에 탑승해 이동했다”며 “레깅스를 입은 젊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성적 욕망의 대상이라 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항소심의 판단은 대법원에서 다시 뒤집혔다.

대법원 재판부는 “레깅스가 일상복으로 활용된다거나, B씨가 레깅스를 입고 대중교통을 이용했다는 사정은 레깅스를 입은 B씨의 모습이 타인의 성적 욕망의 대상이 될 수 없는 타당한 이유가 될 수는 없다”고 했다. 이어 재판부는 “카메라 등 이용 촬영죄의 대상이 되는 신체가 반드시 노출된 부분으로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이 사건과 같이 의복이 몸에 밀착해 엉덩이와 허벅지 부분의 굴곡이 드러나는 경우에도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신체에 해당할 수 있다”고 했다.

이 사건은 항소심 판결 당시 재판부가 판결문에 검찰이 증거로 제출한 관련 사진을 첨부한 것을 둘러싸고 판사들 사이에서 논란이 일기도 했었다. 법원 내 연구모임인 젠더법연구회 관계자가 해당 재판부에 판결문에 대한 열람제한 조치를 취해달라고 요구하면서 판사들 간의 ‘재판권 침해’ 논란도 벌어졌었다.

[이민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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