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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6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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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석 거여의 입법 독주, 정치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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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 연동형 비례대표제 악용

총선 압승, 상임위원장도 독식

입법 강행 땐 ‘주먹 제스처’까지

“진영에 묻혀 다른 의견은 무시”

야당은 신공항 등 내분에 무기력



2020 이슈 ② 180석



중앙일보

180석 그래픽=신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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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정치권을 관통한 작동 원리는 ‘180석’이었다. 더불어민주당이 4·15 총선에서 180석을 확보하자 이해찬 당시 대표는 “100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수준”이라고 감격스러워했다. 거여(巨與)의 감격은 곧 합의제 민주주의를 저격하는 힘으로 돌변했다. 강원택(정치학) 서울대 교수는 “이견을 조정하고 타협을 통해 이해관계 차이를 극복하는 것이 정치의 역할”이라며 “올해는 정치가 제 기능을 완전히 상실한, 정치 실종의 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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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원내대표가 지난 8월 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본회의 종료 후 주먹을 불끈 쥐며 의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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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당제 회귀=지난해부터 더불어민주당은 정의당과 힘을 합쳐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밀어붙였다. 국민의힘(당시 미래통합당)이 반대하자 민주당은 의회정치를 개혁하겠다며 지난해 말 4+1 협의체를 구성했다. 그러나 선거법 개정에 앞장섰던 민주당이 말을 뒤집고 비례위성정당을 활용한 소수 정당 몫 뺏기에 동참했다. “저들(미래통합당)이 저렇게 나오면 우리도 방법이 없는 게 아니다”(윤호중 당시 사무총장)라는 말이 나온 ‘마포 5인 회동’(2월 26일)이 계기였다.

민주당은 180석 중 17석을 비례당에서 거둬들였다. 제1야당은 비례당에서 19석을 확보하고도 지역구에서 참패해 지난 9월 당명을 국민의힘으로 바꿨다. 양당의 연동형 비례제 악용 결과 20대 국회에서 원내교섭단체였던 민생당이 사멸했다. 교섭단체 진입을 노리던 정의당은 20대 때와 같은 6석에 그쳤다. 국회 교섭단체는 3개(20대)에서 2개(21대)로 줄어들었다. 민주당이 호남에서 부활했고 국민의힘은 TK(대구·경북)를 싹쓸이해 영호남 지역 구도가 재현됐다.

◆18대 0 체제=21대 국회는 원 구성 협상부터 민주당 독무대였다. “양당 체제가 아닌 1.5당 체제라는 뉴노멀 시대가 왔다”(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전망이 현실이 됐다. 관례상 야당 몫이던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을 두고 여야가 20일 넘게 실랑이를 벌였다. 원 구성 법정 시한(6월 8일)이 3주 지나자 민주당은 18개 국회 상임위원장을 모두 자당 의원으로 채웠다. 1987년 5월 12대 국회 후반기 원 구성 이후 33년 만에 처음 벌어진 일이다.

박성민 정치컨설팅 민 대표는 “야당이 법사위원장을 맡아야 한다는 건 과거 민주당이 야당일 때 하던 주장”이라며 “자신들이 권력을 잡으니 이제 와 법사위를 탈취하고 야당 몫 국회부의장마저 없앤 초법적 국회를 반년 넘게 운영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강경 일변도로 대응한 건 국민의힘도 마찬가지다. 민주당 측 양보를 받아내지 못하자 상임위원장과 국회부의장을 모두 포기하면서 전략적 갈등 노선을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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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15 총선 당일 더불어민주당 지도부가 당선된 의원들 사진 옆에 스티커를 붙이며 박수를 치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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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가는 여당=거여가 장악한 국회에선 입법 강행 때마다 주먹 제스처가 등장했다. 지난 7월 주택임대차보호법 통과 순간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가 주먹을 치켜들며 미소 지은 모습이 상징적이다. 그는 5개월 뒤(지난 13일)에도 국정원법 개정안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이 찬성 180표로 종결되자 주먹을 흔들었다. 다음 날 대북전단살포금지법(남북관계발전법 개정안) 가결 직후엔 이낙연 대표가 박병석 국회의장 쪽으로 주먹을 움켜쥐고 화답하는 모습이 보였다.

주먹이 대변하는 힘의 정치는 다수결 원리를 맹종했다. 상임위 단계부터 수적 우세를 점한 여당이 임대차 3법, 권력기관 3법, 경제 3법 등 쟁점 법안을 단독 처리하기는 쉬웠다. “통법부” “입법 독재” 비난 속에서 민주당은 내부 이견도 잠재운 채 철저한 ‘원팀’ 기조로 움직였다. 강 교수는 “청와대에도, 민주당에도 집권세력 내부에 생각이 다른 사람이 없다”며 “진영에 파묻혀 열혈 지지층만 보는 집권당이 사회적 공감대, 대안 형성을 도외시했다. 합의 실패와 대안 부재는 야당보다 여당 책임”이라고 말했다.

◆속수무책 야당=하지만 국민의힘도 1년 내내 뾰족한 수를 내지 못했다. 민주당 독주에 속수무책이면서 가덕도신공항, 안철수 연대론, 전직 대통령 관련 사과 등을 놓고 번번이 내분 양상을 보였다.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 체제에서 혁신을 꾀했지만 자생 요인으로 인한 지지율 반등 계기가 없었다. 라임·옵티머스 의혹, 추미애 법무부 장관 아들 병역 의혹, 부동산 정책 실패론, 코로나19 백신 수급 위기론 등 정권 공격에 화력을 집중했지만 중도층 지지 회복에 실패했다.

박 대표는 “올해는 보수가 주류에서 비주류로, 상수에서 변수로 전락한 해”라며 “90년 3당 합당 이후 30년간 굳어져 온 ‘민자당 대 반(反)민자당’ 구도가 처음 붕괴하면서 한국의 보수가 오너십 상실 시대를 맞았다”고 분석했다. 현재 야권 대선주자 1위인 윤석열 검찰총장이 국민의힘 밖에서 자생 중인 점이 이를 방증한다.

◆예산 합의는 성과=다만 코로나19 경제위기 속에서 네 차례 추경과 내년도 예산안을 비교적 무난히 합의 처리한 건 올해 국회의 성과였다. 지난 2일 국회선진화법 시행 첫해(2014년) 이후 처음으로 법정 시한 내에 558조원 규모 내년도 예산안이 본회의 문턱을 넘었다. 2차 재난지원금 지급을 위한 4차 추경안도 지난 9월 여야 합의로 역대 최단 기간 내 통과됐다. 21대 첫 정기국회에서 가결된 법안 수는 400건, 대안 반영까지 포함하면 총 1293건으로 역대 최다다.

심새롬 기자 saero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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