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비즈=박정환·김진희 기자] “삼성을 세계적인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시키겠습니다.”
호암(湖巖) 이병철 삼성 창업주가 별세한 후 1987년 12월 1일 만 45세의 젊은 이건희 회장이 취임사에서 이 같이 말했다. 이날 삼성그룹 2대 회장에 오른 그는 약속대로 책임감과 뚝심을 발휘하며 ‘일류 기업 삼성’을 일궈냈다. 이로써 1987년 당시 10조원이 채 못되던 삼성그룹의 매출은 2018년 기준 386조원을 넘기면서 39배 늘어났고, 시가총액은 1조원에서 396조원으로 396배나 커졌다.
◆“삼성을 초일류 기업으로!”…위기 극복의 리더십, 미래를 열다
세계가 놀란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는 이 회장의 혜안이 있었다. 실제로 시대를 꿰뚫어보는 그의 촌철살인 어록은 산업계 변화와 맞물려 수차례 회자됐다.
“언제까지 그들의 기술 속국이어야 하겠습니까? 기술 식민지에서 벗어나는 일, 삼성이 나서야지요. 제 사재를 보태겠습니다.” 이건희 회장이 파산 직전의 한국반도체를 인수한다고 했을 때 모두가 반대했지만 이 회장의 결심은 확고했다. 지금이야 반도체 하면 '삼성'을 떠올리는 시대가 됐지만, 당시만 해도 한국반도체 인수는 말도 안 되는 공상과 같은 이야기로 치부됐던 때다. 일본의 한 기업 연구소는 ‘삼성이 반도체를 할 수 없는 다섯 가지 이유’라는 보고서를 내놓으며 비판하기도 했다.
1986년 7월 삼성은 1메가 D램을 생산하면서 반도체 산업을 본격적으로 꽃 피우기 시작했다. 이후 64메가 D램 개발로 기술 주도권을 확보한 데 이어 생산량을 늘리며 시장 점유율도 1위를 기록, 기술과 생산 모두에서 명실상부한 세계 1위 기업으로 올라섰다.
이 회장은 1993년 6월 프랑크푸르트 선언에서 “국제화 시대에 변하지 않으면 영원히 2류나 2.5류가 될 것”이라고 강조하며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라”라고 변화의 중요성을 역설하기도 했다.
또한 같은 시기, 이 회장은 당시엔 다소 낯선 개념인 ‘디자인’의 중요성을 일찌감치 알아보기도 했다. 이 회장은 “앞으로는 개성화 시대라 디자인이 제일 중요해진다”며 “자기 개성의 상품화, 디자인화, 인간공학을 개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렇게 애니콜 신화가 반도체 성공을 이어받게 된다. 이건희 회장은 “반드시 1명당 1대의 무선 단말기를 가지는 시대가 온다. 전화기를 중시해야 한다”며 삼성의 신수종 사업으로 휴대폰 사업을 예견했다. 1995년 8월 마침내 애니콜은 전 세계 휴대폰 시장 1위인 모토로라를 제치고, 51.5%의 점유율로 국내 정상에 올라섰다. 당시 대한민국은 모토로라가 시장점유율 1위 자리를 차지하지 못한 유일한 나라였다.
1997년 IMF 직전 이 회장은 신년사를 통해 “우리는 지난 30년 동안 하면 된다는 ‘헝그리 정신’과 남을 뒤쫓아가는 ‘모방정신’으로 세계가 부러워하는 경제성장의 기적을 만들어 냈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 재래식 모방과 헝그리 정신만으로는 새로운 시대를 이끌어 갈 수 없게 됐다”며 “이제는 자율적이고도 창의적인 주인의식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IMF 속에서도 이 회장의 혜안을 빛났다. 삼성은 파격적인 구조조정을 통해 59개 계열사를 40개로 줄이는 등 조직 재정비를 단행하며 위기를 돌파했다.
이 회장은 미래를 이끌 인재 확보에도 주력했다. 2011년 선진제품 비교 전시회에 참석해 “5년, 10년 후를 위해 지금 당장 소프트기술, S급 인재, 특허를 확보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건희 회장의 삼성, 사회 문화 변화를 이끌다
삼성은 1957년 1월, 민간 기업 최초로 공개 채용 제도를 도입해 27명의 사원을 채용했다. 이후 1995년 삼성은 공채에서의 학력제한을 폐지, 실력 위주로 뽑겠다고 발표했다. 글로벌화되는 열린 시대를 맞아 학력, 성별, 직종에 따른 인사 차별을 타파하라는 이 회장의 지시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회장은 “대학 졸업장과 관계없이 입사할 수 있는 기회를 동일하게 주고 입사 후 승진, 승격에도 차별이 없도록 해야 한다”며 “삼성의 입사 기준은 학력이 아니고 실력”이라고 강조했다. 이때부터 3급 신입사원 입사 시험이 시작됐다.
또한 여성 분야에서의 변화도 일었다. 이 회장은 “여성 인력을 활용하지 못하는 것은 자전거 바퀴 두 개 가운데 하나를 빼놓고 다니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여성에 대한 차별을 과감히 없애고 동등한 기회를 부여할 것을 주문했다.
취임 초부터 여성 인재의 중요성을 강조해 온 이 회장은 특히 여성들이 육아 부담 때문에 마음 놓고 일하지 못하는 현실에 주목, 어린이집 사업을 현실화했다.
♣pjh1218@segye.com·purple@segye.com
ⓒ 세상을 보는 눈, 세계일보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