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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2 (토)

[이건희 별세] 이건희 회장 '신경영' 삼성의 글로벌 도약 이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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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화 시대에 변하지 않으면 영원히 2류나 2.5류가 될 것입니다. 지금처럼 잘해봐야 1.5류입니다.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꿉시다."

한국 재계를 대표하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취임 5년째인 1993년 독일 프랑크푸르트 켐피스키 호텔에서 임원 200여명을 모아놓고 설파한 '신경영' 선언 중 일부다. 삼성그룹은 이건희 회장의 '신경영'을 선언한 뒤 선진 경영시스템과 조직문화를 도입하며 대대적인 변화를 추진했다. 반도체 등 핵심사업에 과감한 투자를 벌여 삼성전자를 세계에서 손꼽히는 기업으로 키워냈다.

이 회장은 이후 삼성을 글로벌 기업으로 성징키셨다. 취임 당시 10조원이던 매출액은 2018년 기준 387조원으로 약 39배 늘었다. 이익은 2000억원에서 72조원으로 259배, 주식은 시가총액 1조원에서 396조원으로 396배나 증가했다. 이에 이건희 회장이 걸어온 길을 정리해본다.

1942년 대구 출생인 고인(故人)은 1966년 동양방송에 입사한 뒤, 1979년 삼성그룹 부회장에 부임했다. 1987년 12월 1일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 별세 이후 삼성그룹의 2대 회장으로 취임했다.

이 회장은 외형적인 성장 외에 선진 경영시스템을 도입하고 도전과 활력이 넘치는 기업문화 만들어 경영체질을 강화하며, 삼성이 내실 면에서도 세계 일류기업의 면모를 갖추도록 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앞서 언급한 1993년 '삼성 신경영' 선언이다.

이 회장은 혁신의 출발점을 '인간'으로 보고 '나부터 변하자'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인간미와 도덕성, 예의범절과 에티켓을 삼성의 전 임직원이 지녀야 할 가장 기본적인 가치로 보고, 양을 중시하던 기존 경영관행에서 벗어나 질을 중시하는 쪽으로 경영의 방향을 선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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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영 철학의 핵심은 현실에 대한 명확한 인식과 자기반성을 통해 변화의 의지를 갖고, 질 위주 경영을 실천해 최고의 품질과 최상의 경쟁력을 갖는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인류사회에 공헌하는 세계 초일류기업이 되자는 것이었다.

이 회장은 이 때부터 학력과 성별, 직종에 따른 불합리한 인사차별을 타파하는 열린 인사를 지시했고, 삼성은 이를 받아들여 '공채 학력 제한 폐지'를 선언하기도 했다. 연공서열식 인사 기조가 아닌 능력급제를 시행한 것도 이때부터였다.

이 회장은 인재 확보와 양성을 기업경영의 가장 중요한 과업으로 인식, 임직원들이 세계 각국의 다양한 문물을 배우고 익힐 수 있도록 지역전문가, 글로벌 MBA 제도를 도입해 5000명이 넘는 글로벌 인재를 양성하기도 했다.

이 같은 노력은 삼성이 1997년 IMF 위기와 2009년 금융 위기 속에서도 성장을 가능케 했다.

2020년 현재 삼성의 브랜드 가치는 623억달러로 글로벌 5위다. 스마트폰, TV, 메모리반도체 등 20개 품목에서 월드베스트 상품을 기록하는 등 명실상부한 세계 일류기업으로 도입했다.

그 중에서도 반도체 사업은 이 부회장이 한국과 세계경제의 미래의 필수적인 산업이라고 판단해 적극적으로 밀어붙인 것으로 유명하다. 끊임없는 기술개발과 과감한 투자로 1984년 64메가 D램을 개발하고 1992년 이후 20년간 D램 세계시장 점유율 1위를 지속 달성해 2018년에는 세계시장 점유율 44.3%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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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회장은 회사 경영은 물론 사회공헌활동에도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사회공헌활동을 기업에 주어진 또 다른 사업으로 여긴 것이다. 특히 삼성은 국경과 지역을 초월하여 사회적 약자를 돕고 국제 사회의 재난 현상에도 지원을 아끼지 않으며 국격을 높였다.

1994년 삼성사회봉사단을 출범시켜 조직적으로 전개하고 있으며, 특히 기업으로서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첨단장비를 갖춘 긴급재난 구조대를 조직해 국내외 재난 현장에서 구호활동을 전개하고 있으며, 맹인안내견 등 동물을 활용하는 사회공헌도 진행하고 있다.

이 회장의 독특한 경영철학은 임직원들에게도 영향을 미쳐 매년 연인원 50만명이 300만시간 동안 자발적으로 고아원, 양로원 등의 불우 시설에서 봉사하고 자연환경 보전에 힘쓰고 있다.

스포츠계 업적도 빼놓을 수 없다. 1997년부터 올림픽 톱 스폰서로 활동하며 세계 스포츠 발전에 힘을 보탰으며,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으로서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에 큰 힘을 보탰다.

다만 이 회장이 실패한 분야도 있다. 바로 자동차산업이다. 이 회장은 취임 초기인 1987년부터 비서실에 자동차사업 진출방안을 검토하라는 지시를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기아자동차 인수 실패 후 일본 닛산자동차와 기술협력을 맺고 1995년 삼성자동차를 설립했다. 하지만 치열한 경쟁환경과 비효율적 투자구조, 외환위기 등이 겹쳐 삼성자동차는 법정관리에 들어갔고 결국 실패한 사업으로 남게 됐다.

또한 불법적인 경영권 승계와 정경유착, 비자금 조성 등의 논란에 휩싸이며 기소됐지만 집행유예를 선고받으며 실형을 면했다. 이를 계기로 한때 경영일선에서 물러나기도 했다. 그러나 정재계를 통틀어 한때 한국사회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인물로 꼽혔다. 한국경제성장에 가장 큰 공을 세운 경영인이 바로 이건희 회장이다.

허창수 전경련 회장은 25일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별세에 추도사를 통해 "당신은 영원한 일등이다"며 명복을 빌었다. 허 회장은 "이제 먼 곳으로 보내 드려야 한다니 가슴 속 깊숙이 느껴지는 비통함과 허전함을 감출 수 없다"며 "이제 무거웠던 모든 짐 다 내려놓으시고 편안히 잠드시기 바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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