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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1 (화)

진보정당은 왜 ‘사회민주주의’를 내걸지 못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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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수의 ‘진보를 찾아서’ _08

한겨레

2013년 7월21일 경기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진보정의당 혁신대회. 이 대회에서 당원 총투표로 당명을 바꿨는데, ‘정의당’이 ‘사회민주당’을 간발의 차로 이겼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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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의 사민주의는 미국 정치학자 셰리 버먼의 사회민주주의론과 흡사하다. 버먼은 20세기 자유주의가 정치적으론 전체주의(파시즘, 스탈린주의)와 싸우고, 경제적으론 사회주의(공산주의)와 싸워서 이긴 승리자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 과정에서 시장과 국가, 사회의 관계를 완전히 바꿔버린 ‘사회민주주의가 진정한 승리자’라고 주장했다.

대중적 진보정당의 새 장을 연 민주노동당은 1997년 대선 때 활동한 국민승리21을 기반으로 했다. 국민승리21은 1997년 12월 대선에서 권영길 민주노총 위원장을 독자 후보로 내세워 김대중-이회창 구도에 도전했다. 선거 결과는 성공적이지 못했지만, 2000년 민주노동당 창당의 발판을 마련했다는 의미는 작지 않다. 그런데, 왜 이름이 ‘국민승리21’이었을까? 얼마 전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 주도로 당명을 바꾼 보수정당의 새 이름이 ‘국민의힘’이다. ‘국민승리’와 ‘국민의힘’, 어딘가 비슷하다.

정당 이름을 정하는 규칙은 없다. 다만, 당의 정체성을 함축적으로 표현하고 국민이 쉽게 기억할 수 있는 걸 대체로 선택한다. 이 점에서 보면, 한국 정치에서 가장 일관성 있는 이름을 지닌 정당은 집권세력인 ‘민주당’이다. 1961년 5·16 쿠데타 이후 민주당-신민당-새천년민주당-통합민주당-더불어민주당 등으로 바뀌긴 했지만 ‘민주당’이란 키워드는 그대로 유지했다. 예외는 1995년 김대중 총재가 정치에 복귀하면서 창당한 새정치국민회의와 2004년 노무현 대통령 시절의 열린우리당 정도다. 그에 비하면 정말 변화무쌍한 건 ‘보수’를 자처하는 정당의 이름이다. 3공화국과 유신 시절의 민주공화당에서 민주정의당-민주자유당-신한국당-한나라당-새누리당 등으로 이어졌고, 올해에만 자유한국당에서 미래통합당, 국민의힘으로 두 차례 이름을 바꿨다. 당명만으론 정당의 노선을 짐작하기가 쉽지 않다.

정체성을 중시하는 진보정당에선 이름을 정하는 과정 자체가 치열한 논쟁과 갈등의 연속이었다. 1997년 결성한 진보정당 이름이 ‘왜 국민승리21이냐’는 질문에 노회찬은 “절대다수 국민이 노동자, 서민인데 기득권 정당들이 국민정당을 참칭하고 있다. 내가 국민정당을 이야기하자 일부에선 맛이 갔다며 비난했지만 큰 논쟁은 되지 않았다”고 설명한 적이 있다. 그러나 내부적으론 반발이 있어, 국민승리21 앞에 ‘민주와 진보를 위한’이란 수식어를 붙였다.

2000년 민주노동당 창당 때는 당명을 놓고 적지 않은 진통을 겪었다. 4차까지 가는 투표 끝에 민주노동당 651표, 통일민주진보당 611표로 ‘민주노동당’으로 최종 결정됐다. ‘민주진보당’이 좀더 유력했으나, 자주파(NL)가 ‘통일’을 당명에 넣자고 주장하는 바람에 다른 정파 표가 ‘민주노동당’으로 몰려 판세가 뒤집혔다고 한다.

우리가 흔히 진보정당의 노선이라 생각하는 ‘사회민주주의’(사민주의)는 단 한 번도 정식으로 정당 간판에 내걸린 적이 없다. 좌우 양쪽의 비판과 공격 때문이었다. 2010년 무렵부터 공개적으로 사민주의자를 자처했던 노회찬을 두고, 작가 황광우는 “사람들은 노 의원의 이력에서 붉은 냄새를 맡을 것이다. 그는 정통 사회주의자다”라고 말했다.(<우리 시대 진보의 파수꾼 노회찬>, 2004) 사회주의나 사민주의나 ‘붉기는 매한가지’라는 색깔론이 기승을 부리던 시절이었으니, 한국 진보정당이 사민주의를 전면에 내걸지 않은 건 이해할 구석이 있다.

하지만 더 큰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사민주의는 개량주의’라는 진보 내부의 오래된 인식이다. 민주노동당이 강령에서 “국가사회주의 오류와 사회민주주의 ‘한계’를 극복하고…”라고 명시한 건 그런 흐름을 반영했다. 노회찬은 이런 내부 기류를 비판하면서 사민주의를 옹호했다. “노동운동이 사민주의를 잘 받아들이지 못한다. 사민주의는 개량이고 위험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회사’ ‘우리 노조’를 중시하는 (한국의) 노동운동이 오히려 사민주의 국가들의 노동운동보다 더 보수화되고 있다. 이것이 대중성을 잃는 원인이다. (…) 나는 사회주의적 이상과 원칙을 가장 잘 실현하는 것이 사민주의라고 본다. 이 이상으로 진도 나간 체제가 있는가. 현실 사회주의 국가보다 노동권이 더 많이 보장되고 있는 곳이 사민주의 국가다.”(<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 2014)

노회찬의 생각은 <정치가 우선한다>(The primacy of Politics)를 쓴 미국 정치학자 셰리 버먼의 사민주의론과 흡사하다. 버먼은 20세기 자유주의가 정치적으론 전체주의(파시즘, 스탈린주의)와 싸우고 경제적으론 사회주의(공산주의)와 싸워 이긴 승리자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 과정에서 시장과 국가, 사회의 관계를 완전히 바꿔버린 사민주의가 ‘진정한 승리자’라고 주장했다. 사민주의는 ‘정치 우선’과 ‘공동체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공존할 수 없을 것처럼 보였던 자본주의 체제와 민주주의, 그리고 사회적 안정을 잘 융화시킴으로써 유럽 역사상 가장 번성하고 조화로운 시기를 열었다고 버먼은 말했다.

가치의 실현을 위해 정치(선거)를 최우선에 두는 것, 이것이 사회주의와 사민주의를 가르는 핵심 요소 중 하나였고, 노회찬은 이 점에서 ‘사회주의 이상을 말하며 현실 정치에 복무하는 걸 꺼리는’ 진보 내부의 태도를 강하게 비판했다. 국회미래연구원 박상훈 박사(전 후마니타스 대표)는 “개량주의란 ‘혁명과 체제의 변혁’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개량’이지, 그게 타협이나 원칙의 훼손은 아니다. 오히려 민주주의라는 현실 속에서 원칙을 지키며 목표를 이루려는 노력은 사민주의가 더 했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사회민주주의 논쟁이 가장 치열하게 전개된 시기는 2013년 진보정의당이 혁신당원대회를 열어 ‘정의당’으로 당명을 바꿀 무렵이었다. 논쟁은 두 갈래였다. 하나는 당 이름을 정의당으로 할 것이냐 아니면 사회민주당으로 할 것이냐였다. 또 하나는 당 강령에 사민주의를 포함할 것이냐였다. 지역을 돌아가며 열린 토론회에선 다양한 의견이 쏟아졌다. 인천 토론회에선 ‘1차 세계대전 때 사회주의 대의를 배신하고 전쟁에 찬성했던 게 유럽 각국의 사회민주주의인데, 어떻게 그걸 당명에 쓸 수 있는가’라는 의견까지 나왔다. 천호선 전 정의당 대표는 “당원 총투표로 당명을 정했는데, 양쪽이 팽팽했다.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몰라 2013년 7월21일 열린 당원대회 날에 ‘정의당’과 ‘사회민주당’이라 적힌 대형 현수막 두 개를 모두 준비했다가 그중 하나를 대회장에 걸었다”고 회상했다. 진보정당이 사회민주당이란 이름에 가장 가깝게 다가섰던 순간이었다. 당명 투표는 당원 한사람이 1순위와 2순위를 선택해서, 1순위에서 과반이 되지 못하면 2순위 표를 1순위에 분배하는 방식이었다. 1순위에선 사회민주당이 1위로 나왔지만 절반을 넘지 못했고, 2순위 표를 합산한 결과 민들레당을 찍은 2순위 표 다수가 정의당으로 몰려 결국 정의당이 새 이름으로 결정됐다.

그 대신 당 강령엔 ‘사회민주주의 성과를 창조적으로 발전시킨다’는 문구가 새로 들어갔다. 강령 중간 부분이라 세심하게 보지 않으면 찾기 어렵다. 강령 작업을 주도했던 천호선 전 대표는 “사민주의 노선을 공식적으로 언급한 건 정의당이 처음이다. 사회민주당이란 이름을 쓰지 않았을 뿐, 강령 내용으로 보면 정의당은 사민주의 정당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강조하는 것과 강조하지 않는 것은 다르다. 김형탁 노회찬재단 사무총장은 “그때 사민당이란 이름을 썼으면, 적어도 지금처럼 ‘정의당의 정체성이 뭐냐’는 질문은 받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1991년 3월7일치 <한겨레신문>은 ‘사회민주주의, 학계서 부쩍 관심’이란 제목의 기사를 문화면 톱으로 실었다. 30년이 흐른 2020년, 사민주의를 진보정당 전면에 내걸자는 주장은 흘러간 노래를 다시 트는 것처럼 복고적으로 들린다. 정의당의 젊은 국회의원 장혜영은 “어마어마하게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서 사민주의 논의는 너무 평범해졌다. 이념의 언어를 앞세우기보다 무엇을 할 것이냐가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젊은 세대만 그런 건 아니다. 천호선 전 대표는 “(사민주의를 내세우는 건) 과거 회귀적이란 느낌을 준다. 트렌디하지 않다”고 말했다. 김형탁 사무총장은 “사민주의를 노선으로 천명하는 건 맞지만, 당명을 사민당으로 바꾸는 게 시대 흐름에 맞을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사회민주주의 같은 기본 틀 없이도 젠더와 생태, 청년 등의 이슈를 조화롭게 반죽해 보기 좋고 맛있는 케이크를 빚어내는 게 가능한지 누구도 자신 있게 말하진 못한다. 진보정당이 이슈마다 흔들리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건 그런 총노선의 불분명함에 기인하는 측면이 분명히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미국식 리버럴 정당을 지향한다면, 진보정당은 유럽식 사민주의 정당을 지향하는 게 현실적이지 않을까. 진보정당이 추구하는 사회의 상을 또렷하게 보여주지 못하면서 조각 그림으로 대중에게 믿음을 줄 수 있을지, 오랜 기간 이어져온 ‘사민주의 논쟁’의 고민이 여기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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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수 ㅣ 선임논설위원. <한겨레신문>에서 정치부와 사회부·국제부 기자로 일했다. 국회와 청와대를 취재하며 ‘정치란 결국 권력 행사를 통해 사회를 바꾸는 것’이란 생각을 갖게 됐고, 그 점에서 어떻게 하면 권력을 제대로 올바르게 행사할 수 있을까에 관심이 많다. 청와대와 백악관의 작동 방식을 비교한 <청와대 vs 백악관>(2009년)과 1986년 태동한 민족해방(NL) 사조를 다룬 <엔엘(NL) 현대사>(2017년)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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