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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1 (월)

김명수 3년, ‘사법농단 단죄’도 ‘좋은 재판’도 구호에 그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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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환점 맞은 김명수 대법원장

고법 부장판사 승진제 폐지했으나

외부인사 참여 인사권 행사 방안에

‘사법행정권 침해’ 구실 거센 반대

법원장 후보 추천제 확대에도 미적

‘상고심 제도 개선’ 아직 해법 못 찾아

접수 3년 지난 사건 2배가량 늘어

사법농단 판사 10명만 징계위 회부

“진상규명·재발방지에 너무 소극적”


한겨레

김명수 대법원장이 2018년 12월7일 오전 서울 서초동 대법원에서 열린 전국법원장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회의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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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수 대법원장이 오는 26일 취임 3주년을 맞이한다. 3년 전 그는 “오늘 저의 대법원장 취임은 그 자체로 사법부의 변화와 개혁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사법농단’으로 무너진 정의를 바로 세우고 좋은 재판을 통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해야만 하는 자신의 역사적 소명을 강조했다. 그러나 사법농단 사태에 대한 단죄와 반성의 작업은 물론 그 재발을 막고 제왕적 대법원장 체제를 털어버리기 위해 법원행정처를 해체하는 사법개혁 작업도 지체되고 있다. 법조계 안팎에서 “대법원장의 존재감이 없다”, “개혁을 위한 골든타임이 지나간다”는 우려와 비판이 나오고 있는 이유다. 임기 반환점에 도착한 김 대법원장의 성과와 한계를 짚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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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행정권 통제·분산 필요하지만…‘법관 우위’ 행정기구 고집

지난 3월 ‘판사 줄세우기’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는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제도가 폐지되긴 했지만, 법관 인사권이 대법원장 1인에게 집중된 구조는 여전하다. 김 대법원장이 2018년 3월 출범시킨 ‘사법발전위원회’(사발위)는 △법원행정처를 폐지하고 △새로운 사법행정회의를 구성해 법관·비법관을 5명 동수로 하고 대법원장이 위원장을 맡으며 △법관들로만 구성된 법관인사위원회를 두되 사법행정회의가 심의·의결을 맡는 방안을 내놓았다. 대법원장을 정점으로 한 관료시스템 개혁을 권고한 것이다. 그러나 김 대법원장은 법원 내부 의견을 청취한다며 시간을 끈 뒤 법원 내부 인사가 사법행정회의의 절대과반(전체 11명 중 7명)을 차지하는 ‘개악’된 내용으로 법원조직법 개정 의견을 ‘정리’했다. 법원 외부 인사가 참여하는 사법행정위원회가 법관 인사권을 행사하게 하는 내용의 법원조직법 개정안(이탄희 의원 발의)에도 대법원은 “사법행정위가 헌법상 기관인 대법원장의 사법행정권을 침해하는 건 위헌”이라며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법원행정처가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판사를 ‘관리 대상’으로 삼은 건 법관 인사권을 대법원장이 쥐고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 대법원장이 가진 인사권의 분산이 필요하기에 판사들은 우선 법원장 후보 추천제를 통해 법원장 인사부터 개혁하자고 요구했지만 이마저도 진전이 없다. 김 대법원장은 지난해 처음 판사들이 추천한 법원장 후보(의정부지법·대구지법) 중 대구지법원장만 판사들 의견을 따라 임명했다. 올해 법원장 후보 추천 대상도 두 곳(서울동부지법·대전지법)에 그쳐 확대실시를 요구하는 일선 판사들과 확연한 온도차를 보였다. 법원행정처 근무 경험이 있는 한 판사는 “예산은 국회의 통제가 가능하고, 재판과 관련된 제도도 법으로 만들면 되지만 법관 인사는 민주적 통제가 더 필요하다”며 “이 부분에 대한 외부 관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대법원장이 사법행정권의 핵심을 놓지 않겠다는 얘기”라고 지적했다.

■ ‘좋은 재판’ 핵심, 상고심 개선도 미지수

김 대법원장은 꾸준히 ‘국민이 수긍할 수 있는 좋은 재판’을 강조하며 ‘상고심 제도 개선’을 “사법신뢰 회복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과제”로 꼽았다. 대법원 접수 사건이 폭증하고 감당할 수 있는 용량을 넘기면서 ‘부실재판’ 우려는 오래전부터 제기됐다. 법원행정처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상고심 접수 사건은 4만6357건(2017년)에서 4만7949건(2018년)으로 증가했다가 지난해 들어 4만4271건으로 소폭 줄었다. 하지만 대법관 한 명이 1년에 처리해야 하는 사건이 무려 3518건(지난해 기준)에 이른다는 점을 고려하면 3심제가 제대로 작동한다고 보긴 어렵다.

대법원에서 판결이 지체되고 있는 사건도 크게 늘었다. <한겨레>가 전주혜 국민의힘 의원을 통해 확보한 자료를 보면, 대법원에 접수된 지 3년이 지난 민형사 사건은 2017년 157건(민사 84, 형사 73)에서 지난해 303건(민사 219, 형사 84)으로 2배 가까이 뛰었다. 지난해 대법원의 민사·가사·행정·특허 처리 사건의 심리불속행 기각률은 63%였다. 심리불속행이란 형사사건을 제외한 상고사건 중 본안심리 없이 상고를 기각하는 것으로 판결문에는 “상고를 기각한다” 외에 다른 문구가 없다. 대법원이 확정판결을 내놓았어도 소송 당사자 10명 중 6명 이상은 구체적인 판결 이유조차 듣지 못한다는 얘기다. 심리불속행을 피하고자 대법관 출신 변호사를 상고심 변호인으로 활용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상고심 처리 과정의 여러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대법원은 지난해 9월 ‘상고제도개선특별위원회’(상고특위)를 꾸렸고 24일 열리는 사법행정자문회의에 상고특위 활동 경과를 보고한다. 법원행정처 관계자는 “상고심사제, 대법원의 이원적 구성, 고등법원 상고부 등을 계속 논의하고 있다”며 “연말쯤 하나의 방안을 정해 국회에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 사법농단 판사 10명 징계 회부하고 ‘종결’

정권과의 노골적인 거래가 적나라하게 확인된 사법농단이 사법부의 신뢰를 땅에 떨어뜨린 만큼 철저한 반성과 문책으로 새 출발을 이끌어야 했으나, 김 대법원장은 이를 애써 외면했다. 지난해 3월 검찰은 사법농단 판사 66명의 명단을 대법원에 넘겼으나, 김 대법원장은 이 중 10명만을 징계위에 회부하고 “취임 후 1년 반 넘게 진행한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과 관련한 조사 및 감사를 마무리하고자 한다”며 ‘사태 종결’을 선언했다. 투명한 징계 절차 진행을 위해 징계위원 명단을 공개하고 참여도 보장해달라는 전국법관대표회의의 요구도 묵살됐다. 참여연대가 ‘사법농단 법관 명단과 비위사실을 공개해달라’며 법원행정처를 상대로 낸 소송도 지난해 10월 대법원에서 패소가 확정됐다. 김태일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간사는 “법관 66명 가운데 10명이 왜 징계에 회부됐고 나머지는 왜 회부되지 않았는지조차 알려지지 않았다”며 “사법농단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 등에 대한 김 대법원장의 의지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수도권 법원의 한 판사는 “형사처벌 여부와 별개로 법관의 위헌적 행위에 대한 윤리적·행정적 책임을 물어야 했다. 인적 청산이나 사법농단 재발 방지를 위한 후속 조처 마련에 앞장서야 할 김 대법원장이 지나치게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했다”고 지적했다.

장필수 장예지 조윤영 기자 fe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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