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512조3000억원(본예산 기준)이었던 올해 지출 예산은 1~4차 추경을 거치며 554조7000억원으로 뛰어올랐다. 지난해 469조6000억원으로 400억원대였던 예산이 불과 1년 만에 500조원대 중반으로 불어났다. 전년 대비 증가율은 18.1%에 이른다.
한 해 동안 예산 추가(추경)가 네 차례나 이뤄진 건 1961년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3차 추경이 국회를 통과했던 지난 7월 3일까지만 해도 설마했던 일이다. 8월 연휴를 기점으로 방역망이 느슨해진 사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다시 번졌다. 일일 신규 확진자 수가 300~400명을 웃도는 2차 확산이 8월 말, 9월 초 한국 경제를 강타하면서 정부ㆍ여당은 서둘러 4차 추경안을 내놨다.
2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2020년도 제4회 추가경정예산안'이 통과되고 있다.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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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임시 국무회의를 통해 추경안을 의결(10일)하며 속도전을 펼쳤지만, 국회 협의 과정은 순탄하진 않았다. “피해가 가장 큰 업종과 계층에 집중해 최대한 두텁게 지원하는 피해 맞춤형 재난 지원”(10일 문재인 대통령)이란 취지에 어긋나는 전 국민 이동통신비 지급이 끼어들면서다. 결국 ‘추석 전 지급해야 한다’는 급박함 속에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야당인 국민의힘 주장을 일부 받아들였고, 국회 문턱을 넘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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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비 지원 축소, 아동돌봄 중학생도 15만원
가장 크게 달라진 건 이동통신비 지원이다. 야당에서 강력 반발했던 부분이다. 여ㆍ야 협의에 따라 만 13세 이상 전 국민에게 지급하려던 걸 만 16~34세, 65세 이상 지원으로 대상을 좁혔다. 배정된 예산도 9289억원에서 4083억원으로 5206억원 깎였다.
국회 논의 과정에서 이동통신비 지원 대상은 만 13세 이상 전 국민에서, 16~34세와 65세 이상으로 줄었다. 22일 서울 시내의 한 통신사 매장 앞에 걸린 통신비 지원 관련 현수막.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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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국민 지원에서 일부 지원으로의 전환인데, 사실은 원상 복귀에 가깝다. 당ㆍ정이 마련한 통신비 지원 초안은 17~34세, 50세 이상을 대상으로 했다. 그러나 지난 9일 문 대통령과 이낙연 민주당 대표 등이 만나 13세 이상 전 국민 지급을 전격 결정했다.
결국 포퓰리즘 논란과 야당 반대로 원래 방안으로 회귀했다. 이날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대부분 우리가 검토한 큰 틀이 대부분 반영돼 타결됐다”고 밝힌 이유도 여기에 있다. 통신비 전 국민 지원 사업을 제안한 이낙연 민주당 대표는 이날 “통신비를 국민께 말씀드린 만큼 도와드리지 못해 송구스럽다”고 말했다.
여ㆍ야 막판 논의 과정에서 바뀐 내용은 또 있다. 아동돌봄지원이다. 통신비와 달리 대상이 더 늘었다. 중학생 이하로 확대됐다. 대신 중학생 지급액은 15만원으로 초등생 이하 20만원보다는 적다.
아동돌봄지원은 통신비 못지않게 땜질이 거듭된 항목이다. 1차 아동돌봄쿠폰 때처럼 만 7세 이하 미취학 아동만을 대상으로 하려다가 ‘학교도 못 나가는데 초등생은 왜 빼냐’는 불만이 터져 나왔고, 정부안에 초등생이 추가됐다. 다시 ‘중학생은 왜 못 받냐’는 여론이 일었고, 국회 논의 과정에서 대상이 중학생으로까지 넓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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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인택시ㆍ유흥업종ㆍ콜라텍도 지원
22일 서울 동대문구 한 콜라텍의 닫힌 출입문 앞을 시민들이 지나고 있다. 이날 국회를 통과한 4차 추가경정예산안에 따라 유흥주점·콜라텍 등 정부 방역방침에 협조한 집합금지업종에 대해서도 소상공인 새희망자금 200만원을 지급한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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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상공인 새희망자금 지급 대상도 늘어났다. 유흥업종과 콜라텍이 추가됐다. 12종 고위험 시설로 ‘사회적 거리두기’ 방역 조치 격상에 따라 문을 닫아야 했지만 원래 지원 대상에 포함 안 됐던 업종이다. 정부 방침을 따랐을 뿐인데 단란주점도 받는 지원금을 못 받게 된 유흥업ㆍ콜라텍 업주들의 불만이 커지자 막판 예산 심사 과정에서 추가가 됐다.
개인택시기사는 물론 법인택시기사에게도 지원금을 주기로 했다. 소상공인으로 분류돼 개인택시 운전자는 새희망자금을 받는데, 법인택시 운전자는 회사(법인) 소속이라 지원이 어려웠다. 여ㆍ야는 법인택시기사가 소상공인엔 해당하진 않지만 예외를 둬 새희망자금에 준하는(개인택시 기준 1인당 100만원) 별도의 지원금을 주기로 결정했다.
법인택시기사 지원금(100만원)으로 810억원, 유흥주점·콜라텍 지원금(200만원)으로 640억원 예산이 각각 추가됐다.
인플루엔자(독감) 무상 예방접종 대상도 정부 안보다 늘었다. 의료급여 수급권자(70만 명)와 장애인 연금ㆍ수당 수급자(35만 명) 등 취약계층 105만 명이 추가됐다. 관련 예산으로 315억원이 증액됐다. 전 국민 무상 접종을 주장했던 야당의 의견을 일부나마 수용한 내용이다. 백신 생산량과 확보 물량을 대폭 늘리기 어렵다는 현실론도 작용했다.
코로나19 백신 조기 개발 가능성에 대비해 관련 예산 약 1839억원도 새로 반영됐다. 한국 인구의 20%인 1037만 명 접종이 가능한 규모다. 코로나19 보건 인력의 재충전을 위한 상담·교육 등 지원 예산으로도 179억원이 추가 지원된다.
아동 학대 예방·보호와 심리 치료 인프라 구축에 47억원 예산이 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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땜질 변경 반복…급격히 불어난 나랏빚 ‘어쩌나’
이번 4차 추경은 이전 추경과 마찬가지로 여러 과제를 남겼다. 코로나19 재확산으로 인한 피해를 지원하겠다며 추석 전 신속한 지급을 목표로 했지만, 여러 사업이 얽혀있는 탓에 전액 추석 지급은 사실 물 건너갔다.
일부 소상공인 지원금과 돌봄 지원금 등은 추석 전 지급이 가능하다. 그러나 긴급고용지원금·청년특별구직지원금 추가 신청자는 11월에나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정부가 행정 자료를 보유하고 있지 않은 올해 창업한 소상공인 등도 빨라야 다음 달에나 지원금을 받는다. 실직·폐업 등으로 위기 상황에 부닥친 가구가 신청하는 ‘긴급 생계 지원비’는 11~12월에나 받을 수 있다.
편성 초기 때는 물론 국회 논의 과정에서도 소모적 논쟁, 땜질식 예산 추가와 변경이 거듭됐다. 정창수 나라살림연구소장은 “이번 4차 추경처럼 예산안 처리 막판에 사업이 추가되거나 바뀌게 되면 사업 심의가 부실해질 수밖에 없다”며 “오랜 토론을 거친 정책이 아닌 정치권의 즉자적인 합의 방식이 반복된다는 점이 우려스럽다”고 지적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통신비 지원 등 보편 지원하려던 걸 4차 추경 취지에 맞게 일부 지원으로 뒤늦게나마 바꾼 건 다행이지만 일찌감치 당ㆍ정에서 그렇게 결정했더라면 이런 논쟁의 여지를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상 최대로 증가하는 국가채무도 근본적 문제다. 3차 추경을 기준으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43.5%다. 4차 추경으로 이 비율은 43.9%로 늘어난다. 이마저도 지난 6월 기재부가 올해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할 때 제시한 0.1% 성장을 전제로 한 수치다. 최근 기재부마저 마이너스(-) 성장을 공식 인정한 상태다. 한국은행이나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통화기금(IMF) 예측대로 올해 성장률이 -1%대로 추락한다면 연말 채무 비율은 당장 44%대로 올라선다. 지난해 37.1%에서 올해 44%대로의 급격한 상승이다.
4차 추가경정예산에 따른 국가채무 비율 변화.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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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다음 주 나랏빚을 일정 수준으로 묶어놓기 위한 재정준칙을 발표할 예정이다. 하지만 현 정부의 헤픈 씀씀이를 막기에 이미 늦은 데다, ‘고무줄’ 기준을 내세워 무늬만 재정준칙을 제정할 수 있다는 우려가 벌써 나온다.
한편 홍남기 부총리는 이날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4차 추경과 관련해 “23일 임시 국무회의를 열어 추경 공고안과 배정안을 확정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세종=조현숙ㆍ임성빈 기자 newea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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