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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7 (토)

[음식평론가 윤덕노의 음食經제] 바다 이끼에서 슈퍼푸드로… 지구촌 사로잡은 김과 김밥의 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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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동남아에서는 김 과자가 인기다. K 푸드의 영향이라고 하는데 심지어 태국은 한국산 김을 수입해 자국 브랜드의 김 스낵을 만들어 수출한다. 미국과 유럽에서도 김이 건강식품으로 주목 받는다. 한때 태운 종이를 먹는 이상한 식품 취급을 받았던 김이 이제는 슈퍼 블랙 푸드라는 찬사와 함께 21세기 식품산업의 검은 반도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하나의 글로벌 문화 트렌드가 됐다.

김밥은 여러모로 기적 같은 음식이다. 김을 먹게 된 과정이나 김밥 종류 하나하나의 내력을 봐도 그렇다. 예컨대 누드김밥은 원조가 캘리포니아 롤인데 누가 그리고 왜 김밥을 밥알이 보이도록 거꾸로 말 생각을 했을까?

누드김밥은 1970년대 초, 미국 LA에서 처음 생겼다. 당시 미국인들은 김밥을 싫어했다. 태운 종이처럼 생긴 이상한 식재료에 밥을 담아 먹는다는 서양 특유의 편견에 더해 동양인한테는 고소한 김 맛이 이들한테는 김 비린내로 느껴졌다고 한다. 그래서 한 레스토랑에서 아이디어를 냈다. 김밥 속 재료로 미국인이 좋아하는 아보카도, 오이를 넣고 김이 보이지 않도록 거꾸로 만 후 고명으로 미국인이 최고급 식품으로 여기는 철갑상어 알, 캐비아 비슷하게 생긴 날치 알, 연어 알을 장식했다. 이름도 아예 아시아 느낌이 나지 않게 캘리포니아 롤로 바꿨다. 그리고 1980년대 미국에 초밥인 스시가 유행하면서 누드 김밥 캘리포니아 롤 역시 덩달아 대박이 났다. 일반 김밥을 역으로 뒤집은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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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밥 따로 무김치 따로 먹는 충무김밥도 유래가 특별하다. 지금은 사라진 부산, 충무, 여수를 잇는 한려수도 여객선 뱃길의 중심지 충무(지금의 통영)에서 생겨난 이 김밥이 처음부터 김밥 따로, 반찬 따로였던 것은 아니다. 여객선이 들어오면 노점상이 함지박에 보통 김밥을 담아 팔았는데, 여름철에는 재료 때문에 쉽게 상해 남은 김밥을 버리기 일쑤였다. 그래서 누군가 밥과 반찬으로 분리해보자는 생각을 했다. 당시 충무 바닷가에서 가장 값싼 오징어와 주꾸미에 깍두기를 버무려 반찬으로 만들었다. 이렇게 궁여지책으로 생겨난 김밥이 1970년대 중반 서울에 알려지면서 전국에 퍼졌다. 겉과 속을 분리해 김밥 맛도 살리고 주꾸미 깍두기도 강조한 결과다. 생각해 보면 김과 김밥의 변신 중 이런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밥에다 스팸을 붙였더니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즐겨 먹었다는 스팸 무스비가 만들어졌고, 그냥 먹으면 평범한 김밥인데 겨자를 풀어 만든 비법 소스에 찍어 먹는 방식으로 변형했더니 마법처럼 마약김밥이 됐다. 김과 김밥은 따지고 보면 역사 자체가 발상의 전환이 만들어 낸 기적의 연속이다. 일단 그 태생 자체가 특별하다. 김은 바닷가에서 자라는 이끼로 만든다. 그런데 언제부터 이런 바다 이끼를 따다 김으로 먹기 시작했을까?

우리나라에서 김을 먹은 것은 삼국시대 이전이다. <해동역사>에 신라에서는 바닷가 사람들이 새끼줄을 허리에 묶고 물속에 들어가 해초를 땄다고 했으니까 바닷가 바위에서 자라는 이끼인 김도 그 무렵 채취했을 것이다. 최초의 김은 바닷가 주민의 허기진 배를 채워준 구황식품, 구원의 음식이었다. 이런 김이 고려에서는 상류층의 밥상에 반찬으로 오르기 시작했다. 우리나라 김의 위상 변화를 이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김은 한자로 바다 해(海), 이끼 태(苔)자를 써서 해태라고도 하고 혹은 바다에서 자르는 갈색 풀이어서 자채(紫菜)라고 했다. 중국은 김을 자기네 발음으로 갈색 바다풀 ‘즈차이’라고 부른다. 일본말로는 김이 ‘노리(のり)’다. 미끈미끈하다는 뜻의 누라누라(ぬらぬら)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바다 이끼의 미끈거리는 촉감이 김의 어원이 됐다. 김을 보는 인식이 바다 이끼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우리말 김은 어원이 확실치 않다. 다만 옛날에는 김을 한자로 짐(朕)이라고 음역해 적었다. 옛날 임금이 스스로를 가리킬 때 썼던 글자를 빌어 김을 한자로 적었으니 김의 위상을 이만저만 높였던 게 아니다. 다르게는 바다 옷인 해의(海衣), 바다에 떠있는 깃털인 해우(海羽)라고 불렀다. 어딘지 모르게 고상하고 우아한 느낌이다.

말장난 같은 아전인수 해석이지만 어쨌든 이름만 봐도 밥상에서 차지하는 우리 김의 위상이 중국, 일본과는 확연하게 달랐다. 기록을 봐도 김이 얼마나 상류층 입맛을 사로잡았는지 알 수 있다.

고려 말 재상을 지낸 목은 이색은 하얀 밥그릇에 푸른 김이 놓였으니 밥상에 꽃이 핀 듯하고 입안에는 향기가 감돈다고 노래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김은 왕실에 보내는 공물이었으니 임금도 김으로 밥을 싸서 수라를 들었을 것이다. 태초에 바다 마을 주민이 배고픔을 면하려고 허리에 새끼줄 매고 따왔던 바다 이끼가 변신에 변신을 거듭해 재상의 밥상과 임금 수라상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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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김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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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밥의 역사는 김과는 또 다르다. 김을 김밥으로 먹으려면 또 다른 발상의 전환이 필요했다. 김을 종이처럼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종이는 2세기에 중국 한나라의 채륜이 발명했다. 그러면 종이 김 역시 먼 옛날부터 있었을까? 그건 아닌 듯싶다. 바다 이끼로 종이를 만들려면 혁명적인 사고 변화가 필요했기에 종이 김을 만들기는 그렇게 쉽지 않았을 것이다. 옛날부터 김을 섞어서 만드는 종이가 있기는 있었다. 태지(苔紙)라는 한지인데 질기고 글씨가 잘 써지기에 최고급 종이로 꼽혔다. 이런 태지가 문헌에는 16세기 초, 중종 무렵에 보인다. 그러니 제조기술은 그보다 이전에 개발됐을 것이고 태지보다 훨씬 단순한 식용 종이 김은 더 일찍 만들었을 것 같은데 기록에는 보이지 않는다. 식용 종이 김이 확실하게 문헌에 보이는 것은 18세기 초 <성호사설>이다. 이 책에 속칭 김이라는 것이 있는데, 바다 바위에서 나는 이끼로 이것을 따서 마치 종이처럼 조각을 만든다(作片如紙)고 적혀 있다.

종이 김이 이 무렵 보이니 확실하게 김밥을 싸서 먹은 것은 17~18세기 초부터다. 이후 영·정조와 순조까지 조선 후기에는 김에다 밥을 싸 먹었다는 기록이 여럿 보이고 김밥 종류도 다양했다. 예컨대 순조 때 실학자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에 소금 기름에 재서 구운 김 가루로 주먹밥 만드는 법과 제사상에도 기름소금에 구운 김을 올린다고 소개했다. 조선 후기 <동국세시기>에도 정월 대보름이면 채소나 김으로 밥을 싸 먹는데 이를 복쌈이라고 부른다고 했다.

다만 지금 같은 원통 모양의 단무지가 들어간 김밥은 일제 강점기 이후에 보인다. 그래서 마치 김밥의 원조를 일본으로 착각하기도 하는데 오랜 세월에 걸쳐 획기적 발상의 전환을 통해 진화해 온 우리 김밥에 대한 모독이 아닌가 싶다.

물론 일본도 우리와 함께 옛날부터 종이처럼 생긴 김을 먹었던 나라다. 그런 만큼 김 조각을 붙인 삼각 김밥부터 김초밥인 노리마키(海苔卷き), 참치에 와사비를 넣어 톡 쏘는 맛을 내는 뎃카마키(鐵火券き) 등 다양한 김밥 종류가 발달했다. 다만 일본에서 김초밥이 널리 유행하기 시작한 것은 1830년대 무렵이고, 문헌에 김초밥인 노리마키가 보이는 것은 1787년에 간행된 문헌(<七十五日>)이라고 하니 일본 김초밥이 김밥의 원조 운운이라고 주장할 만큼 역사가 뿌리 깊지 못하다.

우리나라로 치면 순조 때인데 앞서 말한 것처럼 그 무렵 우리나라에 이미 다양한 김밥이 선을 보이고 있을 때다. 김밥을 말 수 있는 일본의 종이 김 역사 또한 여러 설이 있지만 가장 유력한 것은 옛 도쿄인 에도의 중심지였던 아사쿠사에서 18세기 중순에 종이 뜨는 기술을 응용해 종이 형태의 김을 만들었다고 한다. 한국과 일본의 김밥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을 수는 있겠다. 하지만 오랜 세월에 걸쳐 따로 발전했으니 김밥의 원조를 놓고 따지는 것 자체가 불필요하다. 정리하면 바닷가 마을의 구황식품이었을 바다 이끼가 귀족의 밥상, 임금의 수라상에 오를 만큼 위상이 높아지더니 19세기에는 명절음식으로 20세기에는 소풍음식으로 21세기에는 글로벌 건강식품으로 발전했다. 그리고 이제는 한국, 일본에 이어 김을 먹지 않던 태국과 베트남까지도 다양한 김 과자를 만들면서 검은 반도체 소리를 들을 정도로 가치가 높아졌다. 김과 김밥의 역사로 본 발상의 전환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궁금하다.

[윤덕노 음식평론가]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20호 (2020년 9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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