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대로에서 열린 전국의사 총파업 궐기대회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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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수를 늘리기 위해 의과대학 정원을 늘리겠다는 정부와 이를 막으려는 의사ㆍ의대생 단체 간 갈등이 갈수록 증폭되고 있습니다. 이달 7일 전공의 집단휴진으로 시작된 충돌양상이 14일에는 대한의사협회 주도 대규모 파업으로 번졌습니다. 2000년 이후 정부와 의사들이 이 정도로 대립한 것은 2000년 의약분업 사태, 2014년 원격의료 반대에 이어 세 번째입니다.
의료계가 이야기하는 주된 논지 가운데 하나는 ‘의료 질적 하락이 우려된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신설된 의과대학의 경우 제대로 된 수업여건을 갖추기 어렵다고 주장합니다. 열악한 여건 속에 ‘자질이 부족한’ 의사들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이죠. 의대생과 의학전문대학원생 단체는 “의사라 부르는 것조차 힘든 인원만 배출할 것”이라는 수위 높은 표현까지 썼습니다.
◇서남의대 폐교 사례 언급했지만…”의대 신설과 정원 확대는 별개” = 의사의 자질이 떨어진다는 이야기를 조금 구체화하면, 먼저 의대생들이 받게 될 의학 교육의 품질이 떨어진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의료기술의 특성상 책을 보고 시험을 치는 것뿐 아니라 실습 등의 여건이 중요한데, 이 과정을 속성으로 거친 ‘B급 의사’를 양산할 것이라는 우려입니다.
의과대생과 의학전문대학원 단체인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의대협)는 과거 ‘부실의대’의 대명사로 꼽히는 서남의대 폐교를 예로 들었습니다. 의대협은 회원들에게 보낸 서신에서 "서남의대는 가르칠 교수를 구하지 못한 과목도 있었고 실습병원이 없어 타교 병원을 통해 학생실습을 진행했다"며 “아무리 좋게 봐도 자질에 의문이 가는 의사를 양성해 사람 숫자만을 조달하게 될 뿐”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의대협이 콕 집어 우려한 상황은 ‘지방에 의대를 신설하는 경우’에 해당한다는 것이 정부 측의 설명입니다. 보건복지부는 5일 배포한 '의대 정원 증원 10문 10답' 자료에서 “의대 정원 최대 400명 증원은 현재 설치된 의대에 정원을 늘려준다는 개념을 기본으로 했다. 최대 400명 증원은 기존 의대 정원의 증원으로, 의대 신설과는 별개하고 이해하면 된다”고 설명했습니다.
정부가 계획 중인 의대 정원 확대 방향은 이미 규모와 체계를 갖춘 의과대학에 정원을 추가로 배정하는 방식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정원배정심사는 의학계, 전문가, 관계부처가 참여하는 정원배정심사위원회에서 결정합니다. 이때 대학의 교육 역량, 선발․양성계획, 진로 유인책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다고 합니다. 적어도 영세 의대의 졸속교육 우려는 크지 않아 보입니다.
대한의사협회 최대집 회장이 2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의대 정원 확대 및 공공의대 설립을 반대하고 있다.(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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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시전문가 “의대 입학점수 하락 폭은 ‘찔끔’…자질 논할 수준 아냐” = 의사의 자질이 떨어진다는 이야기를 조금 다른 식으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의대 입학 이후의 교육 문제가 아니라 의과대학에 입학하는 학생들의 ‘수준’이 하락할 것이라는 차원입니다. 공식적으로 언급되는 논리는 아닙니다. 하지만 이슈와 관련해 여러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심심치 않게 관찰되는 반응입니다.
언뜻 생각하기에 맞는 말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정부는 2022학년도부터 해마다 400명씩 10년간 총 4000명의 의사를 추가로 양성할 계획입니다. 올해 의학전문대학원을 제외한 전국 38개 의대 정원 내 학부 모집인원은 2977명입니다. 대학 한 곳당 평균 78명입니다. 한 해 모집 정원이 400명 늘어난다는 것은 수험생 입장에서 평균 규모의 의대 5곳이 신설되는 셈입니다.
입시 전문가들도 의대 합격선에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의대를 꿈꾸는 수험생들에게는 귀가 솔깃해질 이야기입니다. 이만기 유웨이교육평가연구소장은 “예전에 의과대학이 의학전문대학원으로 바뀌었다가 다시 의학전문대학원이 의과대학으로 바뀔 때 의대 모집정원이 일시적으로 700명 정도 늘면서 전체적인 의대 합격선이 내려갔던 적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입시점수가 하락하더라도 그 정도는 크지 않을 것이라는 게 관련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견해입니다. 임성호 하늘교육 대표는 “정원이 많이 풀린다기보다 현재 모집인원이 워낙 적다”면서 “지금도 의대 들어가는 경쟁률이 수시 같은 경우 200대 1에서 300대 1까지 가는데, 이것이 180대 1 정도로 낮아진다고 해서 입학생들의 수준이 낮아졌다고 보긴 어렵다”고 말합니다.
합격점수가 1~2점 낮아질 수는 있습니다. 다만 그것만으로 ‘예비 의사’의 자질을 논하기 어렵다는 견해도 함께 나옵니다. 외국 사례를 보면 네덜란드의 경우 일정한 기준을 충족한 경우 추첨을 통해 의대생을 선발합니다. 하위권 성적으로 입학한 학생이 훗날 세계적인 의사가 되기도 합니다. 이는 ‘공부를 더 잘하는 것’이 ‘더 좋은 의사’의 자질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이투데이/유충현 기자(lamuziq@e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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