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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1 (토)

[뉴노멀-트렌드] 그럴싸한 것을 믿지 마라 / 김용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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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김용섭 ㅣ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장

“팬데믹 때문에 출산율도 높아질 것이다. 대신 이혼율도 좀 높아질 것 같다”는 얘길 어느 포럼에서 들었다. 사실 이건 전형적인 그럴싸한 ‘구라’에 해당된다. 팬데믹으로 부부가 함께 있는 시간이 늘어나니 출산율이 늘어날 거라는 발상도 너무 구닥다리인데다, 함께 오래 있으니 자꾸 싸워서 이혼도 더 하겠지라는 접근도 터무니없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솔깃하거나, 그럴 수도 있겠다는 식으로 반응한다. 우린 쉽고 단순하게 세상의 변화를 캐치하길 선호한다. 그래서 과도한 예측이나 단정적인 전망, 그중에서도 믿고 싶은 것을 얘기하면 더 잘 받아들인다. 장담컨대 올해 출산율은 더 떨어지면 떨어졌지 올라가기 어렵다. 과연 우리나라 부부들이 함께 있는 시간이 부족해서 출산율이 낮았던가? 현재도 팍팍하고 미래에 대한 희망도 낮은 것이 출산율 하락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던 걸 보면, 팬데믹의 불안한 상황은 출산율 하락에 보태기 할 요인이면 요인이지 그 반대는 아니다.

한동안 유행한 인구절벽이란 말이 있다. 아니 지금도 유행 중인지, 여전히 그 말은 여기저기서 자주 쓰인다. 말 자체로도 무시무시한 게 인구절벽이다. 출산율 감소와 노령화 심화가 빚어낸 암울한 미래를 극단적으로 겁주는 말처럼 들리기도 한다. 사실 이 말에 대해서도 학계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설령 인구가 줄어드는 시점이 와도, 인구절벽이라 할 정도로 심각한 위기일까? 오히려 인구 감소가 경제적 반등의 기회가 될 수는 없을까? 일자리 감소 시대에 인구 감소가 위기만은 아니지 않을까?

인구가 줄어드는 게 분명 손실이겠지만, 그렇다고 아이 낳자고 십수년간 별의별 방법을 써도 출산율 감소를 못 막는다는 건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다는 얘기다. 사실 출산율 문제는 아이를 낳고 안 낳고 문제만이 아니라, 청년 일자리 문제, 주거 안정과 부동산값 폭등 문제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 아울러 성차별과 양극화 심화 등 한국 사회가 가진 구조적인 문제와도 연관이 있다. 이런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데 어떤 희망으로 자녀를 기쁘게 출산할 것인가? 어떤 개인도, 개인의 행복을 위해, 자녀의 행복을 기대하며 출산을 하는 것이지, 국가에 세금 내줄 사람을 만들어내기 위해 출산하는 게 아니다. 저출산과 노령화는 전세계에서 겪는 보편적인 현상이다. 삶의 질 높고, 복지 좋은 유럽의 출산율 높다는 국가들도 2명 미만이다. 즉, 남녀 2명이 짝을 이뤄 2명 이하가 출생하는 것이니 장기적으로 인구는 그들도 줄어든다. 그럼 줄어드는 출산율을 한탄만 하며 위기감만 가질까? 아니면 줄어든 인구를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실현 가능한 대안을 찾는 게 더 필요하지 않을까?

참고로 해리 덴트라는 사람이 <인구절벽>(The Demographic Cliff)이란 제목의 책을 써서, 인구절벽이란 말이 퍼뜨려졌는데, 2015년 한국에 와서 2018년에 한국이 인구절벽을 맞는다며 그 전까지 부동산을 처분하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그의 주장은 틀렸다. 2006년에 쓴 책에선 2008~09년 다우지수가 3만5천 이상 간다는 주장을 담아 주목받았다. 하지만 그의 주장과 달리 글로벌 금융위기가 오면서 7천대까지 떨어지자, 곧바로 대규모 공황이 온다며 3천대까지 떨어질 거란 책을 썼다. 근데 떨어지긴커녕 그 뒤로 계속 올라갔다. 극단적인 주장으로 이슈몰이에 능할 뿐, 맞는 것보단 틀리는 게 많았다. 그랬던 그가 증시 대신 인구구조를 가지고 극단적인 예측을 펼치기 시작했고, 그걸 저출산으로 절박한 한국이 가장 잘 받아줬다.

팬데믹이 초래한 변화가 아주 많은 해다. 절박하고 다급한 사람도 그만큼 많을 것이고, 극단적이고 단정적인 예측과 주장도 난무할 때다. 그럴싸한 얘기가 아니라, 믿고 싶은 얘기가 아니라, 진짜를 잘 가려낼 때다. 트렌드는 믿되, 트렌드 정보는 반만 믿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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