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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2 (수)

어둠 속 '번쩍번쩍' 6억짜리 발광(發光) 화장실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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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의정부시에 발광(發光) 화장실이 생긴다. 밤이면 빛을 내뿜는 화장실이다. 화장실을 짓는데 들어가는 비용만 6억원. 공사비는 평당(3.3㎡) 2000만원에 달한다. 모두 세금이다. 지역 내 고급 아파트의 평당 분양가가 1325만~1500만원인 점을 감안하면 초호화 화장실인 셈이다. 애초 택시기사들의 급한 용변해결에 어려움이 있다는 민원이 생기자 2억원 수준의 간이화장실을 지으려했다. 그러다 대리석, LED조명 등 화장실을 꾸미는 디자인 비용이 추가되면서 총 공사비는 3배까지 뛰었다. 지역에서는 ‘초 역세권 프리미엄이 붙은 화장실’이라는 비아냥이 나왔다. 의정부시는 “의정부의 랜드마크로서 시의 위상을 높일 뿐 아니라 대한민국에 하나밖에 없는 조형 화장실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시민들은 “평소 청소나 깨끗하게 하고 몰카 단속이나 제대로 해라”면서 지적하고 있다.

조선일보

경기 의정부시 공공화장실 건립 모델인 지난해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출품작 '세이프존하우스'/의정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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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억원 들여 왜 화장실을 빛내야 하지?

논란의 화장실의 큰 특징은 발광(發光)이다. 1호선 의정부역 앞 근린공원에 들어선다. 하얀 대리석을 외벽재료로 사용하고 그 안에 LED 등을 채워 넣었다. 어두컴컴한 저녁 시간에는 화장실 전체가 번쩍번쩍 빛나게 했다. 외관은 시옷 모양(ㅅ)의 전원주택 형태로 화장실보다 마치 북극의 이글루 같다는 인상을 준다. 지붕 있는 우유 갑 같다는 의견도 나왔다.

의정부시는 화장실이 빛나야 하는 이유로 안전을 꼽았다. 발광 화장실은 의정부역사 앞 근린공원에 조성되는데 이곳은 지역 최대 번화가다. 평소 시민의 통행이 잦아 경찰에서도 강도, 성추행 등 우발적 범죄 발생에 신경을 많이 쓴다. 범죄가 보통 컴컴한 밤을 틈타 이뤄지는데 화장실의 강한 빛이 주변을 환히 비추면 범죄를 저지르려는 나쁜 마음이 누그러질 것이란 설명이다. 하지만 의정부경찰서 관계자는 “근린공원 주변에 설치된 방범카메라, 안심벨 등 여러 장치는 다른 곳보다 많은편”이라며 “개방된 공간보다 골목길처럼 은밀한 곳에서 범죄 발생률이 높다”고 말했다.

◇택시기사 위한 화장실이었는데…“설치하고도 욕먹을 텐데”

공사는 오는 7월 중순에 시작해 연말에 완성된다. 사업 추진이 알려지면서 혈세 낭비라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 정의당 의정부위원회는 보도자료를 통해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장기화로 불황이 이어지는데 세금 낭비”라며 “호화 화장실 사업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시의원들은 지난 3월 “이 장소에 설치하면 설치하고도 훨씬 더 혼나거나 욕먹을 것” “꼭 대리석으로 해야 하나” 등을 지적했다.

택시기사를 위한 화장실이 발광 화장실로 탈바꿈하면서 주객전도 됐다는 지적도 나왔다. 화장실이 들어설 근린공원은 1호선 의정부역 택시승강장 근처인데 기사들이 공공화장실이 없어 용변 해결에 어려움을 겪는다고 토로해 왔었다. 그래서 화장실과 관계없는 교통기획과에서 2018년부터 사업을 시작했다. 정선희 시의원은 “민원을 주신 분이나 주민 의견은 전혀 반영되지 않고 집행부가 주도해 인위적으로 가는 것이 과연 시민을 위한 예산편성인지”라고 꼬집었다.

◇의정부시 “지역의 랜드마크가 될 것”

의정부시는 의정부역의 상징성을 고려해 디자인을 신경 썼다고 했다. 시 관계자는 “1911년 만들어진 의정부역은 시의 얼굴 같은 곳”이라며 “비용을 이유로 대충 만들 경우 오히려 욕먹을 것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화장실이란 기존 개념을 벗어나 시의 대문 같은 의정부역에 상징물이 되도록 설계했다”고 덧붙였다. 특히 역전근린공원에는 많은 조형 작품이 있어 주변과 조화를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베를린장벽, 안중근 동상, 평화의 소녀상, 미 2사단 창설 100주년 기념비 등이 들어서 있다. 앞으로 수도권 광역 급행열차(GTX) C 노선이 개통하면 외부인 유입이 늘어나 이에 따른 대비도 해야 한다는 의견도 반영했다.

발광 화장실을 설계한 박광성 작가는 미래의 공공시설물은 기능 위주로 단순하게 만들기보다 더 많은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발광 화장실에는 대·소변 기능과 안전의 역할을 함께 담았다는 것이다. 화장실이 빛을 통해 우발적 사고를 막는 ‘사람 없는 파출소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박 작가는 본지 통화에서 “우리나라가 G7에 들어갈 수준의 국가가 됐다면 공공시설물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며 “마을의 등대처럼 동네를 지키란 의미”라고 말했다. 또한 “앞으로의 도시가 경쟁력을 갖추려면 (발광화장실처럼 특색있는) 공공시설물을 보러오도록 해야한다. 몰려든 사람에 의해 주변 상권이 형성되고 이는 곧 도시 활성화로 연결될 것”이라며 “유럽 등 선진국은 몇 년전부터 이러한 인식으로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설계에는 총 4명의 작가가 투입됐다. 지난해에는 작품명을 안전지대라 짓고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에 출품하기도 했다.

[조철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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