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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3 (수)

朴 전 대통령, 국선변호사에 두 차례나 "기록 줄 수 없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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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박근혜 전 대통령/뉴시스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국정농단’ 사건 기록에 대해 직접 열람등사를 신청해 복사작업이 진행중인 가운데 그가 신청 전 두 번이나 국선변호사 사무실에 “기록을 줄 수 없느냐”고 의사타진을 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법조계에 따르면 지난 4월 중순, 국정농단 혐의로 재판중인 박근혜 전 대통령 파기환송심을 맡은 국선전담변호사 사무실에 유영하 변호사가 연락을 해 왔다. “박 전 대통령 기록을 받을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17년 10월 1심에서 추가 구속영장이 발부를 이유로 재판을 거부했다. 당시 유 변호사를 비롯한 변호인단은 모두 사임했다. 박 전 대통령이 구속상태여서 법에 따라 국선전담변호사들이 선임됐다. 이들은 법원이 지정한 형사사건만을 수행한다.

이들은 20만쪽에 달하는 기록을 보며 궐석(闕席)재판을 진행하고 있었고 그간 박 전 대통령이 특별히 이들에게 사건과 관련한 연락을 해 온 적은 없었다. 2심에서 징역 25년이 선고된 박 전 대통령 사건은 지난해 8월 대법원에서 파기환송됐고, 파기환송심도 마무리 단계다. 그런데 갑자기 유 변호사가 ‘기록을 보고 싶다’고 연락한 것이다.

국선변호사들은 유 변호사의 요청을 거절했다. 유 변호사가 박 전 대통령의 뜻을 전달한다고 하더라도 정식으로 선임된 변호사가 아니어서 법적으로 그에게 기록을 넘겨줄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며칠 후 박 전 대통령이 교도관을 통해 직접 연락을 해 왔다. 박 전 대통령의 부탁을 받은 서울구치소의 담당 교도관이 이들 변호사들에게 전화를 걸어 “기록을 줄 수 있느냐”고 한 것이다.

요청을 받은 변호사들은 고민에 빠졌다. 유 변호사와 달리 박 전 대통령은 사건 당사자로 기록을 볼 권한은 있다. 하지만 현실적인 문제들이 있었다. 기록 분량이 20만쪽으로 사무실 하나를 가득 메울 정도여서 넘기는 것 자체도 만만치 않았다. ‘기록 소유권’도 문제가 됐다. 한 변호사는 “국선 사건의 경우 기록 복사비용을 법원이 지급하기 때문에 기록이 변호사 개인 소유가 아니어서 함부로 넘겨주기도 어렵다”고 했다. 박 전 대통령에게 국선변호인이 선임된 2017년 말 법원이 기록복사를 위해 지급한 비용만 해도 600여만원에 달했다. 이후 추가된 재판 기록까지 포함하면 복사비가 1000만원을 넘어설 상황이었다. 국선전담변호사들은 이 같은 이유로 난색을 표하고 서울구치소측에 거절 의사를 전달했다.

그러자 박 전 대통령은 지난달 15일 파기환송심 재판부인 서울고법 형사 6부(재판장 오석준)에 직접 사건 기록 열람 및 복사신청을 했다. 재판부는 고심 끝에 사건 기록을 스캔해 파일 형태로 USB에 담아주기로 했다. 이 경우 종이 복사에 비해 비용이 절반 가량으로 줄어든다. 박 전 대통령이 예상 비용의 절반 가까운 300만원 가량을 예납(豫納)해 복사가 시작됐다. 서울고법 관계자는 11일 “기록 분량이 많아 아직 스캔 작업이 진행중”이라고 밝혔다. 법원은 스캔이 완성되면 구치소에 USB를 전달할 예정이다.

박 전 대통령이 USB를 전달받더라도 열람 방법이 문제된다. 구치소에서 USB에 담긴 기록을 열람한 전례가 거의 없었다. USB자체가 반입 금지 물품이기도 하다. 법무부 관계자는 “USB기록을 열람할 수 있는 근거규정이 없다”고 했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 단계에서 열람이 원천봉쇄되는 것은 아니다. 이 관계자는 “전직 대통령 예우 차원에서 교도관 참관 하에 기록을 열람하는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다”며 “허용 여부는 서울구치소에서 결정할 것”이라고 했다.

박 전 대통령은 두 번이나 기록 열람 의사를 보이면서도 그 이유를 밝히지 않았다고 한다. 일각에선 “박 전 대통령이 무죄 주장을 하기 위해 지금이라도 기록을 보겠다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사건 진행 단계를 고려하면 현실적으로 결과를 뒤집기는 어렵지만, 사법절차를 포기했던 이전과는 태도가 달라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 변호사는 “기록 열람 후 박 전 대통령이 여러 형태로 사법절차를 이용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양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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