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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0 (월)

“신규식 선생 독립운동 업적 재평가 위해 전집 발간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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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 예관 전집편찬위 박정규 위원장 등

한겨레

<예관 신규식 전집> 편찬위원회 박정규 위원장. 사진 기자


“청산은 지난날 생기 사라지고, 스산한 낙엽에 가을이 깊었구나. 밉살스럽다. 돈 많은 장사치들 관 놓고 돈벌이만 궁리하다니.”

예관 신규식(1879~1922) 선생의 명저 <아목루>의 첫 글 ‘술회’다. 선생은 오언절구 짧은 시에 시국을 평하고, 구국을 위한 결연한 의지를 담았다.

<예관 신규식 전집>이 최근 세상에 나왔다. 선생이 떠난 지 98년 만이다. 1, 2권을 더해 1303쪽에 이르는 전집은 예관의 고향인 충북 청주의 후학들이 편찬했다. 박정규(75·신문방송학)·이성(72·한문교육)·윤순(69·중문학부) 전 청주대 교수와 신범식(58·교양학부) 유원대 교수 등 전·현직 교수와 한학자 10여명이 꾸린 편찬위원회가 심혈을 기울였다. 이들은 2018년 10월께부터 전집 발간에 나서 2년 만에 책을 내놨다.

박정규 예관 전집 편찬위원장은 “애초 임시정부 수립의 주춧돌을 놓은 예관의 뜻을 기려 임시정부 수립 100돌(2019년)에 맞춰 발간하려 했지만 자료 수집, 번역, 집필 등의 어려움 때문에 조금 늦었다. 선생의 독립운동 폭과 학문, 문학적 깊이와 넓이가 워낙 방대했다”고 말했다.

전집에는 <한국혼>(통언) 한글판이 수록됐다. 김동훈 전 옌볜대 교수는 “<한국혼>은 민족의 역사적 문헌일 뿐 아니라 우수한 문학작품이다. 굴원의 이소, 루소의 사회계약론, 링컨의 노예 해방선언을 방불케한다”고 평가했다.

<한국혼>은 독립운동가이자 예관의 사위 민필호 선생이 1955년 대만에서 한문판으로 발행했지만, 국내 학자가 한글로 풀어쓴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한국혼> 서문에서 “곤궁을 무릅쓰고 나라를 위해 전력을 다하고, 파당을 두지 않고, 오직 충애심만 지니고 있다”고 예관을 평했다. 윤보선 전 대통령도 서문에서 “한국인 중 나라를 생각지 않고 탐욕스럽게 쟁탈하려는 자 <한국혼>을 읽어야 하고, 동족을 생각지 않고 증오하고 다투는 자 마땅히 <한국혼>을 읽어야 한다”고 썼다. 예관과 <한국혼>의 위치를 가늠케 하는 대목이다.

예관은 <한국혼>에서 단군 시조, 임진란 이순신·권율, 일제 강점기 안중근·홍범식 의사 등 역사 속 사건·인물을 날줄과 씨줄로 엮었다. 그는 <한국혼>에서 “한마음 한 가지 덕으로 분발하고 시종일관할 수 있으면 고국을 잃은 상란의 참화를 해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겨레

예관 신규식 선생. 전집편찬위 제공


청주 후학 교수·한학자 10여명

편찬위 발족 2년만에 전집 두권 완간

‘한국혼’ 등 산문 16편과 시 156수


을사늑약 의병 거사 뒤 상해 망명

1919년 임시정부 수립 연출가 평가

“끝 모를 깊이와 넓이 지닌 지식인”


한겨레

<예관 신규식 전집> 표지.


예관의 시집 <아목루>도 번역됐다. 전집에는 시 156편과 산문 16편이 실렸다. 단재 신채호, 벽초 홍명희, 도산 안창호 등 당대의 지사 등과 벗하며, 주고받은 시와 글 등이 눈에 띈다.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쓴 ‘또’(又) 연작 시는 생동감·서정성·풍자·해학이 녹아있다.

예관은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를 두고, “청천 대낮에 진동한 벽력 소리여 세계 사람들 혼담이 놀랐도다. 영웅의 분노 일격에 고꾸라진 간웅 독립 삼창에 조국이 살아났도다”라고 읊었다.

<아목루>는 그의 인생 역정과 궤를 같이한다. 그는 을사늑약 때 군인 신분으로 의병 거사를 일으키려다 실패한 뒤 음독했다. 목숨은 건졌지만 독이 퍼져 한쪽 눈의 신경이 마비됐고, 이후 ‘흘겨본다’는 뜻의 예관을 호로 정했다. <아목루> 또한 흘겨볼 예(睨)를 ‘아이(兒), 눈(目)의 눈물’(淚)로 풀어쓴 말이기도 하다.

예관은 1911년 중국 상하이로 망명해 쑨원, 천두슈 등 중국 혁명가들과 교류하면 신해혁명에 참여해 중국과 항일 연계 투쟁의 고리가 됐고, 임시정부 법무총장, 국무총리 대신 겸 외무총장 등을 지냈다. 독립운동 비밀결사인 ‘동제사’, 유학 예비교육기관 ‘박달학원’ 설립, 독립운동과 임시 정부의 분열상 등 파란만장한 삶의 질곡이 <아목루>에 녹아있다. 전집 편찬위원 신범식 교수는 “독립을 향한 애국은 말할 것도 없고, 문학적으로 운율·대장법을 적절히 활용하는 등 작품성도 매우 빼어난 시가 많다. 독립운동가로서 예관뿐 아니라 문학인 예관으로서 조명과 연구, 평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집 2권에는 예관이 발행한 최초의 공업·기술계 월간지 <공업계>, 양계 지도서 <가정양계신편>, 중국 상하이에서 중국어로 발행한 <진단주보> 등에 쓴 논설, 기고, 연설문 등을 담았다. 예관의 글씨와 그와 관련한 신문기사, 편지 등도 실려 있다. 박정규 교수는 “유족 등이 간직하고 있던 소중한 사료들을 전집에 실었다. 선생은 독립운동가, 외교관, 정치인, 문학인으로서의 풍모뿐 아니라 서예가로서 족적도 간단치 않다. 그야말로 끝 모를 깊이와 넓이를 지닌 당대의 지식인”이라고 말했다.

편찬위는 전집 500질을 발행해 학교·교육청 등 교육기관과 주요 도서관 등에 보내 예관의 발자취를 알리고 있다. 박 편찬위원장은 “조국 광복과 민족을 위해 혁명의 길을 걸었던 선생은 정부 수립의 연출가로서 드높은 업적을 남겼지만 과소평가돼 아쉽다. 예관 전집이 독립운동과 선생을 연구하는 실마리가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오윤주 기자 sting@hani.c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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