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르포]
3선 당대표 vs 여야 신인‘3파전’ 경기 고양갑. 그래픽=신재민 기자 |
경기 고양갑은 ‘일산 밖 고양’을 담은 선거구다. 일산신도시 내 인근 선거구(고양을·병·정)보다 개발 수요가 크다. 시청이 자리잡은 원도심 일대에서 “도시개발 혜택에서 소외됐다”는 주장이 선거철마다 반복된다. 벽제 화장장으로 불리는 서울시립승화원이 있어 주민들이 상대적으로 박탈감을 느낀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현역은 이곳에서 19·20대 국회의원을 지낸 심상정(61·비례대표 포함 3선) 정의당 후보다. 당 대표인 그가 수성에 나섰는데 심 후보에 도전하는 여야 정치 신인들의 기세가 매섭다. 공통점은 전문성과 열정이다. 은행원 출신 문명순(58)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변호사인 이경환(53) 미래통합당 후보가 “이제는 바꿀 때”라며 고양갑 탈환을 외치고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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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민주당이다” 문명순
“명함 한 장 줘봐요.” 2일 오후 고양시 덕양구 원당시장에서 한 50대 남성이 지나가는 문 후보를 붙잡고 말을 걸었다. 허리를 90도로 굽히고 명함을 건넨 문 후보는 남성이 사라질 때까지 인사를 반복했다. “심상정이 되는 거 아니냐”는 행인들의 말엔 “이번에 제가 잘하겠다”고 응수했다. 공식 선거운동 첫날인 이날 문 후보는 ‘조용한 선거’라는 민주당 방침에 따라 별도 출정식을 생략하고 지역민 밀착 대면에 나섰다.
고양갑 선거구 문명순 더불어민주당 후보(왼쪽 세 번째)가 2일 오전 고양시 화정광장에서 유세 활동을 하고 있다. 최정동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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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후보는 “2012년에 비례대표 23번으로 국회의원이 될 뻔했다”고 했다. 지역구는 첫 도전이다. 그는 지난해 1월 지역위원장이 된 뒤 1년 남짓 출마 기반을 닦았다. “마음이 전달돼 지역민들이 진정성을 알아준다. 여론조사로 나타나고 있다”는 게 문 후보의 현재까지 자평이다. KBS가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지난달 29~30일 진행한 여론조사에서 문 후보는 33.5%로 심 후보(34.5%)와 오차범위 내 1.0%포인트 차이를 기록했다. 이경환 후보는 20.7%의 지지도를 얻었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
고양갑은 초선 도전자에게 민주당이 일찌감치 단수공천을 확정해 준 지역구다. 문 후보는 선거사무소 건물에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찍은 대형 사진을 내걸고 화정역 앞 광장에는 ‘나는 민주당이다! 우리가 민주당이다!’라고 적은 현수막을 달았다. 청와대·여당과의 긴밀한 관계를 강조한 선전이다. 코로나19 국면에서 상승세를 그리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을 등에 업고자 하는 뜻도 읽힌다.
KB국민은행에서 지난해 1월 명예퇴직한 문 후보는 “20대 때 회사 연수원 강사로 왔었다”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정치적 스승”이라고 표현했다. “금융 공기업을 비롯한 주요 기업들을 서울과 가까운 고양시 덕양구로 이전하겠다”며 “경제를 바탕으로 교통, 교육, 복지를 일으키는 ‘교·교·복 프로젝트’를 가동한다는 게 문 후보가 내세운 주요 공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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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다” “바꿔보자” 이경환
고양갑 선거구 이경환 미래통합당 후보(가운데)가 2일 오전 고양시 화정광장에서 21대 총선 출정식을 열었다. 최정동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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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당 핑크 점퍼를 입은 이 후보도 “경제”를 강조하고 있다. 정권심판론을 내세운 ‘경제무능! 바꿔야 합니다!’가 캠프 핵심 구호다. 이날 오전 화정역 광장에서 출정식을 진행한 이 후보 유세차 인근에는 60대 이상으로 보이는 시민들이 여럿 모여들었다. 약국에 공적 마스크를 사러 나온 노년층 지역민들이 “힘내세요”를 외치고 지나가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자신을 퇴직자라고 소개한 김경순(79)씨는 “명확히 정하지는 않았는데 통합당 쪽을 뽑을까 생각 중”이라며 “공정하고 공평하게 살자고 했는데 잘 안 되는 것 같다. 정권이 잘못하고 있는 부분들이 있다”고 말했다.
고양갑에서 10년 넘게 살았다는 이 후보는 세 후보 중 나이가 가장 젊다. 그는 “이경환은 무엇보다도 젊다, 새롭다, 적극적이다”며 “여의도 정치에 매몰되지 않고 지역구에 열정을 쏟겠다”고 강조했다. 당 대표이자 ‘전국구 정치인’ 위상인 심 후보를 겨냥한 말로 들렸다. 이 후보에게 마이크를 넘겨받은 아내 김유란씨는 “공기 좋고 물가 싸고 집값 저렴해 살기 좋은 고양갑이지만 교육·문화·예술이 뒤쳐져 인근에서 무시당하고 있다. 아이 셋의 엄마로서 내 자식 살기에 좋은 지역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이 후보가 1호로 내세운 공약은 경기도를 둘로 나눠 ‘경기북도’를 만들겠다는 거다. 그는 “고양시의 동북 지역이 상대적으로 열악해 이 곳으로 경기북도청을 유치하겠다. 일산 킨텍스 인근 서남지역만 서울의 강남처럼 개발된 불균형을 해소하겠다”고 설명했다. 실현 가능성을 묻자 이 후보는 “인근 지역 뿐 아니라 전체 국회 공감대를 얻어 큰 일을 만들어내는 것이 국회의원이 하는 일”이라며“시의원들도 할 수 있는 지역공약에만 매몰되지 않겠다”고 했다.
여론조사 결과로만 보면 세 후보 중 가장 열세지만 이 후보는 “반드시 승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바닥에서 체감하는 민심은 조금 다를 수 있다는 게 이 후보 측 캠프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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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해낸다“ 심상정
화정1동에서 24년간 세탁소를 운영했다는 윤기철(55)씨는 이날 “장사하는 사람은 체감 경기가 IMF(외환위기) 저리 가라 수준”이라면서 “지금까지는 진보 정당이 우세했지만 경제가 안 좋아 (여권 후보) 단일화가 안 되면 야당이 유리하지 않겠냐”고 말했다. 윤씨 말대로 민주당과 정의당 간 후보 단일화 가능성은 여전히 이 지역구의 가장 큰 변수로 남아있다.
고양갑 선거구 심상정 정의당 후보가 2일 오전 고양시 화정광장에서 시민과 사진을 찍고 있다. 최정동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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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16·17대 의원 때 지역구였던 고양갑은 진보 세력이 비교적 탄탄한 기반을 이루고 있는 지역구로 평가받는다. 민주당과 정의당으로 진보 표심이 양분되면 보수 후보에 유리할 수 있는 구도다. 하지만 민주당과 정의당은 공식적인 선거 연대를 선언하지 않고 있다. 유세 현장에서도 심 후보는 단호하게 “(단일화를) 고려 안 하고 있다”고 했다. “단일화는 없다”고 말한 문 후보와 같은 반응이다.
이날 오전 8시부터 시민들과의 스킨십에 나선 심 후보는 지역 현안을 꼼꼼하게 챙기는 모습을 보였다. 그는 “고양선 GTX(수도권 광역급행철도) 확정이 착착 진행 중이고 신분당선 서북부 구간 연장도 국회의원 모임을 구성해서 추진했다”면서 “대곡 국제철도 터미널을 개발해 화정에 새로운 비전을 만들겠다. 2500억원을 유치해 원당역 혁신도시도 준비했다”고 강조했다.
화정역 광장에 건 현수막에서도 심 후보는 구체적 지역 공약을 거론했다. ‘대곡역 국제업무단지 개발, 국제철도터미널 유지, 심상정은 끝까지 해냅니다!’ 초선 정치인은 지역구 현안에 밝지 않다는 점을 강조한 전략으로도 읽혔다. 자영업자 유상혁(38)씨는 “젊은 사람들이 민주당을 찍을 것 같긴 하지만 나는 심상정을 좋아한다. 발언이나 토론 정책이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심새롬·김홍범 기자 saero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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