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6.16 (일)

[설왕설래] 악마의 삶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세계일보

깜짝 놀랐다. 텔레그램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의 얼굴은 너무도 평범했다. 길거리에서 흔히 접하는 여느 청년의 모습이었다. 그는 보육원과 장애인 시설에서 200시간 넘게 봉사활동을 했다. 대학 성적도 좋았다. 학보사 편집장 시절에는 학교 당국에 확실한 성폭력 대책을 주문하는 글도 썼다. 그런 모범 청년이 아동과 여성을 협박해 성착취 동영상을 찍어 유포하는 악마의 삶을 살았다.

유대인 철학자 한나 아렌트도 나치 전범의 얼굴을 보고 엄청 놀랐던 모양이다. 1961년 아렌트는 미국에서 이스라엘 수도 예루살렘으로 날아갔다. ‘인간의 얼굴을 한 악마’ 아돌프 아이히만을 직접 보기 위해서였다. 아이히만은 유대인 500만명의 학살을 지휘한 악인이었다. 하지만 법정에 선 전범의 모습은 악마의 얼굴과는 거리가 멀었다. 주변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중년 남성이었다. 그는 근면하고 조직에 충실한 사람이었다. 아내에게 성실한 남편이었고 딸에게는 자상한 아빠였다. 그 점이 철학자에게 더욱 소름이 끼치는 사실이었다.

악마란 뿔이 달린 괴이한 존재가 결코 아니다. 세계 최초로 가장 현대적인 동물보호법을 만든 이는 아돌프 히틀러였다. 말의 꼬리를 자르거나 산 개구리의 허벅지살을 떼어내는 행위까지 금지됐다. 이 법 1조는 ‘동물을 학대하거나 괴롭히는 것을 금지한다’고 천명했다. 나치 2인자 헤르만 괴링은 1933년 라디오방송에 출연해 이렇게 말했다. “동물들은 참을 수 없는 고통과 실험을 경험했습니다. 저는 신중하고 묵묵히 생각했습니다. 죽어가는 동물들을 지속적으로 대우하겠다고.”

동물의 고통조차 가슴 아파하던 이들이 왜 눈도 깜빡 않고 사람을 죽이는가? 깊은 회의에 빠진 아렌트는 마침내 이런 결론에 도달한다. ‘열심히 성실하게 사는 것도 죄가 될 수 있다. 양심에 따라 성찰하지 않으면 누구든 악의 구렁텅이에 빠질 수 있다.’

러시아 문호 표도르 도스토옙스키는 “신과 악마가 싸우고 있다. 그 전쟁터가 바로 인간의 마음이다”라고 말했다. 양심은 악마를 물리치는 신의 보검이다. 그걸 잃으면 악마가 승리하는 건 순식간이다. 그 보검을 상실한 ‘아이히만’이 주위에 즐비하다.

배연국 논설위원

ⓒ 세상을 보는 눈, 세계일보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