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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8 (토)

[왜냐면] 재난기본소득과 스웨덴의 대응 / 양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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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양재진 ㅣ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와 생계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재난기본소득’이 떠오르고 있다. 전국민 대상의 1인당 100만원 지급(이재명 경기지사, 김경수 경남지사)에서부터 기존 복지제도의 지원을 받지 못하는 중위소득 이하 위기 가구 대상의 재난긴급생활비 지원(박원순 서울시장, 김승수 전주시장)까지 다양한 안이 제시되고 있다. 청와대에서 지자체장을 상대로 선호안에 대한 설문조사를 했으니 조만간 정부 입장도 표명될 것이다.

서울시나 전주시의 재난긴급생활비는 기본소득이라기보다는 기존 긴급복지지원제도의 확대판으로 보는 게 맞다. 경기도의 재난기본소득이 기본소득에 가깝다. 위기상황 여부도, 소득수준도 따지지 않고 동일하게 100만원씩 전국민에게 지급하자고 하기 때문이다. 경제가 크게 위축되고 있으니, 소비촉진을 위해서라도 필요하다고 한다. 전국민에게 1000달러씩 지급하겠다는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구상과 동일한 논리다. 대한민국 국민 5200만명에게 100만원씩 1회만 지급하더라도 52조원이 필요하다. 올해 50조원을 돌파한 국방예산보다 많다. 과연 기대한 효과가 날까? 재원을 더 효과적으로 쓸 수는 없을까?

지금의 소비 위축은 구매력 저하 때문이 아니다. 감염을 피하고자 사회적 격리를 하다 보니 오프라인 시장이 큰 타격을 받고 있다. 100만원씩 받았다고 여행을 가고 모임을 만들고 마트에 갈까? 저축하고 말거나, 소비를 해도 온라인을 통할 것이다. 사용 기한이 정해진 상품권으로 지급하여 오프라인 소비를 유도하자고 한다. 그러나 이는 사회적 격리를 권고하는 정부 방침과 어긋날 뿐만 아니라, 상품권은 소위 ‘깡 시장’에서 현금화되어 사장되고 말 가능성도 크다.

정부는 국채 발행을 통한 2차 추경예산도 예고하고 있다. 규모를 크게 늘려도 쓸 곳은 많고 돈은 늘 부족할 것이다. 미국과 같은 기축통화국이 아니기에 채무를 계속 늘릴 수도 없다. 한정된 자원을 유동성 위기에 처한 기업과 위기 가구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필요 여부를 따진다고 선별적 복지인 건 아니다. 누구든 아프거나 실직했을 때 복지 혜택을 받을 수 있다면 보편복지가 되는 것이다. 보편적 복지국가의 대명사 스웨덴에서는 정부, 야당, 노조 그 누구도 필요 없는 사람에게까지 급여를 주는 기본소득을 주장하지 않는다. 기본소득 풀어서 경제를 살리겠다는 정치가도 과문한 탓인지 아직 들어보지 못했다.

현재 스웨덴 사민당 정부의 위기대책은 선택과 집중이다. 중앙은행을 통한 회사채 인수(3000억크로나, 한화 36조원)와 기업대출(5000억크로나)과 별도로, 수출기업(2000억크로나)과 중소기업(30억크로나)에 대한 추가 대출을 약속했다. 타격이 큰 항공업계(50억크로나 지급보증)와 문화·스포츠업계(10억크로나 무상지원)에 대한 핀셋 지원도 빼놓지 않았다. 고정비용인 사회보험료, 급여세 그리고 부가세의 납부유예, 인건비의 50%까지 무급휴가 국고지원, 병가 비용의 전액 정부부담, 자영업자에 대한 14일간 병가수당 지급 등도 포함되었다. 유동성 위기에 빠진 기업을 지원해 고용을 지키면서 기존의 실업보험제도와 공적부조제도가 커버하지 못하는 빈틈을 메우겠다는 뜻이다.

우리라고 못하랴? 그러나 청와대 설문에서 지자체장들은 ‘국고’로 자기 지역 주민에게 재난기본소득을 주자고 할지도 모르겠다. 정부가 이에 흔들려서는 안 된다. 4·15 총선이나 정무적 판단도 배제된 실효성 있는 위기 타개책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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