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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6 (토)

의협 “요양기관 손해배상 땐 선별진료소 폐쇄”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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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당제생병원 고발, 요양병원 상대 구상권 청구 방침에 반발

“국민 생명 볼모 삼은 의협”…“보건당국도 메시지 관리 신경 써야” 지적도
한국일보

서울 구로구 콜센터 관련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최소 50명으로 확인된 지난 10일 콜센터 앞 선별진료소에서 건물 입주민 등 관련자들이 바이러스 진단을 받고 있다. 이한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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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의사협회(의협)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환자를 가려내기 위해 설치된 민간 선별진료소를 없애고 전국에서 자원봉사 중인 의사들을 철수시키겠다고 정부에 경고했다. 방역 일선에서 고생하는 의료인을 정부가 잠재적 범법자 취급해 참기 어렵다는 게 의협 주장이다. 그러나 초유의 위기 상황에서 의사들이 국민 생명을 볼모로 삼고 있다는 비판도 상당하다.

최대집 의협 회장은 23일 한국일보와 전화 인터뷰에서 “신종 코로나 방역을 위해 목숨 걸고 진료에 나서는 의사들을 정부가 부당하게 범죄자 취급을 하고 있다”면서 “의사들의 민심이 엄청난 분노로 들끓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관리 소홀로 집단감염이 발생한 요양기관에 대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안본)의 손해배상 청구 검토, 확진자와 접촉한 직원 144명의 명단 누락 등 역학조사에 부실하게 응한 분당제생병원에 대한 경기도의 고발 등을 정부가 의료인을 부당하게 대접하는 사례로 꼽았다.

그는 “감염이 발생하면 누구보다 큰 피해를 보는 의료기관이 일부러 역학조사를 방해하고, 감염 관리를 허술하게 할 리가 있겠느냐”며 “고생하는 의료진의 실수를 꼬투리 잡아 법적 조치를 하겠다는 것은 세계에 전례가 없는 패륜 행위”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의협은 요양병원과 분당제생병원에 대한 조치들이 철회되지 않으면 민간병원의 선별진료소를 없애고, 코로나 방역 현장에서 자원봉사 중인 의사들을 철수하는 방안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의협은 이런 내용을 담은 공문을 질병관리본부와 경기도에 각각 보낼 예정이다.

논란이 일자 경기도가 분당제생병원 고발 방침을 철회하고 ‘엄중 경고’ 하는 선에서 끝내기로 했지만, 온 나라가 신종 코로나와 사투를 벌이는 상황에서 여차하면 방역과 환자 치료에 어깃장을 놓겠다는 의협의 대응 방식이 무책임하다는 지적도 만만찮다. 현재 보건소와 국공립의료기관, 민간병원에 마련된 선별진료소 600여곳 가운데 민간병원의 선별진료소 수백 곳을 없애면 감염 여부를 확인하려는 사람들의 접근성이 떨어진다. 병원 감염을 막기 위해 건물 밖에 별도로 설치한 선별진료소를 걷어내면 의심 환자가 곧바로 병원 본원 내에 들어가는 문제도 생길 수 있어 확산 위협은 더 커진다. 의사들이 갑자기 진료와 치료를 중단할 경우 그에 따른 의료공백으로 국민 생명은 위협받을 수밖에 없다. 중안본에 따르면 대구ㆍ경북 지역 병원이나 전국 선별진료소에서 자원 봉사 중인 의료인력은 이달 5일 기준으로 294명이다. 지방 의사회 차원에서 봉사에 나선 사례까지 더하면 현재 신종 코로나 환자 진료와 치료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정형준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재활의학과 전문의)은 “정부 대책에 아쉬운 점이 있다 해도 선별진료소를 하지 않겠다는 주장은 국민 건강을 볼모로 삼은 협박이자 법정단체인 의협을 정쟁의 도구로 활용하는 행태”라며 “의협이 극단적인 주장을 반복하면서 신종 코로나 자원봉사로 어렵게 쌓은 국민과 의사들의 신뢰 관계를 깨뜨리고, 의사들의 체면을 떨어뜨리고 있다”고 꼬집었다.

정부가 메시지 관리에 좀 더 세심했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서영준 연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는 “의협의 대응이 감정적인 면이 있는 건 사실”이라면서도 “바이러스는 요양병원에서 관리를 엄격하게 한다고 해도 막는 데 한계가 있는데 이를 두고 구상권 청구를 언급하는 것은 실효성이 없고 의사들의 감정만 자극하는 것으로 보건당국의 메시지 관리에 문제가 있음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 12일에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료인들이 좀 더 넉넉하게 재고를 쌓아두고 싶은 심정에서 (마스크의) 부족함을 느끼는 게 사실”이라고 말한 것도 메시지 관리 실패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이성택 기자 highn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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