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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4 (금)

정조대왕이 지은 시 수원화성 서장대에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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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5년 장용영 군사훈련 친히 참관하고 지어

9개 현판도 고증 거쳐 '흰색 바탕, 검정 글씨'로

조선시대 정조가 수원 화성(華城)과 장용영 군사의 모습을 보고 지은 시를 새긴 ‘어제화성장대시문(御製華城將臺詩文)’ 현판이 복원돼 서장대에 게시됐다. 또 수원 화성 건물의 현판 9개도 원래의 모습을 되찾았다고 수원시가 23일 밝혔다.

새로 복원한 어제화성장대시문 현판은 정조대왕이 1795년 서장대에서 군사훈련을 참관하고, 화성과 장용영 군사들의 위용에 만족감을 표현한 시를 새긴 것이다. 서장대는 수원화성에서 유일하게 어제(御製·왕이 지은 글), 어필(御筆·왕이 쓴 글씨)이 함께 게시된 건축물로 수원 화성에서 가장 격이 높다. 화성장대 현판 글씨도 정조가 썼다.
조선일보

정조대왕이 수원화성에서 군사훈련을 참관하고 지은 시를 복원한 현판. 수원화성 서장대(화성장대) 1층에 새로 걸렸다. /수원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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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시는 현재 국립고궁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현판 원본을 복제했다. 우선 수원 화성을 축조한 과정을 세밀하게 기록한 ‘화성성역의궤’에 따라 잣나무를 사용했다. 바탕은 하얀색, 글자는 검정색으로 칠했다.

또 “왕의 시문 현판은 높은 위계의 칠보문(七寶紋)을 작용하는 게 타당하다”는 전문가 의견에 따라 테두리에 칠보문을 그렸다. 정조의 시문 현판은 원래 서장대 2층에 걸려 있었지만, 시민들이 편하게 볼 수 있도록 1층에 걸었다.

수원시는 또 화성의 팔달문·장안문·화서문·창룡문·화홍문·화성장대·연무대·방화수류정·화양루 현판도 보수 작업을 거쳐 원래의 모습을 되찾았다고 밝혔다. 이들 현판은 모두 흰색 바탕에 검정색 글자로 보수·정비했다. 방화수류정을 제외한 8개 현판 테두리는 팔달문 문양 흔적조사 결과를 반영해 황색 바탕에 연화문(연꽃 무늬)과 당초문(식물덩굴 무늬)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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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증을 거쳐 새로 흰색 바탕에 검정 글씨로 복원한 팔달문 현판(위)과 과거에 걸려있던 현판. /수원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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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시는 지난 2014년 수원화성 현판이 일제강점기에 편찬된 ‘조선고적도보’ 등에 수록된 사진과 다르다는 지적이 제기된 이후 ‘화성성역의궤’의 기록, 근대의 사진 자료 등을 비교·분석해 현판 원형 고증을 진행했다. 당시에는 현판의 바탕색은 검정색에, 글자는 흰색이었다. 수원시는 이 같은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지난해부터 현판 보수를 시작해 최근 마무리했다.

<화성장대에 걸린 정조대왕의 시>
拱護斯爲重 經營不費勞(공호사위중 경영불비노/현륭원 호위 중요하지만, 세금과 노역 쓰지 않았네)
城從平地迥 臺倚遠天高(성종평지형 대의원천고/성곽은 평지 따라 둘러 있고, 먼 하늘 기댄 장대는 높다랗구나)
萬垛䂓模壯 三軍意氣豪(만타규모장 삼군의기호/많은 성가퀴 구조 굳건하고, 군사들 의기 호기롭네)
大風歌一奏 紅日在鱗袍(대풍가일주 홍일재린포/ 대풍가 한 곡조를 연주하니, 붉은 햇살이 갑옷을 비추는구나)

[권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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