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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맛집 선정 뒤… 주인은 왜 심장약을 먹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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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이용재의 필름위의만찬]

21. '음식남녀'와 거리 두기

조선일보

‘음식남녀’는 식탁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남녀와 가족 간의 사랑을 주제로 한 영화지만, 동시에 음식과 거리 두기나 관계 맺기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영화이기도 하다. 사진은 주인공 주사부의 오랜 요리 동료 노온이 의사의 지시를 만류하고 일찍 복귀하자마자 주방에서 앉은 채 숨을 거둔 장면./ 조이앤시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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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이른 저녁이었다. 홀이 한산한 가운데 별실 하나로 음식이 들락날락거렸다. 방송 촬영인 걸까? 지배인이 맞는다고 확인해주었다. 본의 아니게 음식점이 '귀환 불능 지점(point of no return)'으로 나아가기 전의 마지막 식사를 즐긴 셈이었다. 우연히 발견한 동네 중국집에서 큰 변화가 일어나기 전 마지막 식사 또한 우연히 즐겼다. 당분간은 오기 어렵겠지, 나는 속으로 작별 인사를 건네며 그곳을 나섰다.

그곳은 그저 동네 중국집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문을 열었다. 하필 2층이라 당장의 장사에 일희일비하지 않을 거라는 분위기도 약간 풍겼다. 심지어 모퉁이를 돌면 바로 '홀에서 드시면 짜장 3000원'인 또 다른 중국집이 있었음에도 배달도 하지 않았다. 신기해서 올라가 이것저것 먹어보니 1990년대 이전에 시간이 멈춘 듯한 완성도의 음식이 나왔다. 한국식 중식이 외식의 거의 유일한 선택지였던 시기에 먹었던 것을 2010년대 재료와 설비로 재현해 낸 음식이었다.

걸어서 5분 거리에서 이런 음식을 먹을 수 있다면 감사할 일, 꾸준히 드나들며 메뉴를 섭렵하다가 사장과 자연스레 대화를 나눴다. IT 관련 업종에서 일하다 가업을 다시 일으키고 싶어서 중국에서 양(羊)을 치며 은퇴 생활 중이던 아버지를 설득했고, 작은아버지까지 합류해 식당을 열었다는 사연이었다. 한 번에 한두 마디 간신히 나눴으니 이만큼의 사연을 듣는 데 간짜장 열 그릇쯤은 족히 들었다. 주문과 동시에 볶아내는, 조금 뻑뻑하면서도 짭짤한 간짜장이 자리를 어느 정도 잡자 곧 시험을 거쳐 수제 군만두를 메뉴에 올렸다.

예상대로 방송을 타자 변화가 바로 일어났다. 일단 사람이 몰리고 음식점 밖으로 길게 줄이 늘어섰다. 이제 떼돈을 버는 일만 남은 걸까?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음식점이 방송을 탄 이후의 변화는 예상할 수 있는 것보다 조금 더 복잡하다. 방송은 음식점의 사정을 딱히 고려하지 않는다. 요리와 식사류 포함해 오십 가지쯤을 내놓을 수 있는 중국집이라고 해도 대표 메뉴 한두 가지만 소개한다. 이곳은 간짜장과 게살볶음 맛집으로 소개되었다. 그럼 방송을 보고 찾아온 이들은 두 메뉴만 줄곧 찾는다. 맛보다 소셜네트워킹서비스(SNS)에 올릴 인증 사진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어떤 메뉴는 인력 부족 등으로 내놓을 수 없어져 버린다. 이곳에서는 방송 이후 군만두가 사라졌다. 더구나 방송 이후 찾아오는 이들은 음식점의 진짜 수입원인 음료나 술도 잘 안 시킨다. 오래 기다리기도, 지나치게 북적거리는 상황도 싫은 단골들이 당분간은 발을 끊으므로 객단가가 떨어진다. 그렇다고 회전을 더 빨리 시킬 수 있는 것도 아니니 결국 한정된 시간과 공간 속에서 수입이 크게 늘지 않는다. 그런 가운데 어쨌든 늘어난 손님에 대응하느라 접객 인력을 추가로 뽑아 쓴다면 인지도가 결국 부담이 되어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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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남녀'(1994년)는 보고 싶은 대로 볼 수 있는 영화다. 요리 대가인 아버지 주사부(랑웅 분)가 혼자 세 딸을 키우고 주말이면 다 함께 먹는 만찬을 준비한다. 이 기본 설정에서 조건반사적으로 사랑을 읽을 수도 있다. 마침 식탁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세 딸의 이야기도 각자 방식대로 겪는 사랑이 핵심이다. 결국은 사랑 이야기라고 치부하면 간단하건만, 나는 이제 음식남녀를 볼 때마다 이 동네 중국집을 떠올린다. 그것은 아마도 주사부의 오랜 요리 동료 노온 때문일 것이다. 비중이 크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의 존재는 나름대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요리하다가 쓰러져서는 의사의 지시를 만류하고 일찍 복귀하자마자 주방에서 앉은 채로 숨을 거둔다.

그게 동네 중국집과 무슨 상관이냐고? 방송의 영향이 조금씩 빠지면서 다시 이곳을 찾았다가 사장의 부재(不在)를 알아차렸다. 지배인에게 물어보니 건강이 나빠져서 손님이 몰리지 않는 시간대에만 잠깐씩 왔다 간다는 답을 들었다. 그런가 보다 듣고 넘겼는데 어느 날 골목을 산책하다가 우연히 사장과 마주쳤다. 덕분에 음식을 먹은 지 몇 년 만에 처음으로 조금 길게 이야기를 나눴는데, 그동안 사정은 놀라운 수준을 넘어 자못 충격적이었다.

다른 곳도 아니고 심장이 나빠져 한참 고생했다는 것이었다. 방송을 탄 뒤 몰려드는 손님으로 인한 과로와 인터넷에 올라오는 부정적인 평가, 그리고 이곳이 성공했다고 믿는 주변 주민의 항의로 인한 스트레스 탓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음식점 폐쇄회로 카메라에 찍힌 영상을 스마트폰으로 보여주었다. 손님이 잔뜩 줄을 서 있는 음식점에서 무엇인가 항의하다가 공병을 집어 휘두르려는 사람이 찍힌 영상이었다. 다행히 신약 덕분에 수술을 피할 수 있었으며, 건강도 회복 중이라고 사장은 이야기했다.

모두가 음식을 좋아하는 것 같지만 왜 좋아하는지는 헤아리기 어려운 시대다. 그저 '먹는 게 좋아서 그런 것 아닐까?'라고 생각하면 편하고 좋은데 현상을 보면 그런 것 같지 않다. 최근 방송 출연으로 큰 유명세를 치르고 있는 돈가스집이 좋은 예다. 새벽부터 사람들이 줄을 서는 등 주변 상가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쳐 결국 제주도로 이전했지만 상황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어떤 이들은 텐트를 쳐 놓고 한밤중부터 대기한다. 그런 상황에 이르면 만드는 쪽이나 먹는 쪽 누구에게도 음식은 더 이상 음식이 아니다.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도 알 수 없다. 만드는 이에게는 끊임없는 고통의 원천으로, 먹는 이에게는 스마트폰 카메라의 피사체이자 인증 수단, 자랑거리로 전락할 뿐이다. 한마디로 음식과 관계 맺기에 모두가 실패하고 만다.

은퇴한 아버지를 설득해 개업한 사장의 최종 목표는 요리를 완전히 전수받아 오너 셰프가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식당 운영만으로 건강을 위협할 정도의 스트레스를 받았다면 생각이 바뀌지는 않았을까? 이후 우연히 마주친 적이 없고 다른 동네로 이사해 요즘의 사정은 모른다. 요즘 '사회적 거리 두기'가 화두다. 음식과 거리 두기 혹은 관계 맺기에 대해서도 한 번쯤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다.

[이용재 음식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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