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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9 (목)

정유사 '실적쇼크' 조선사 '수주가뭄'···주력산업 치명상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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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유증산 전쟁···유가 30% 뚝

정유사 1분기 재고 손실 3,280억

수요 급감···감산해도 손실 불가피

조선도 해양플랜트 수주 내리막길

車도 소비심리 위축에 판매량 뚝

서울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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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영향으로 수요 부진을 겪고 있는 국내 산업계가 국제유가 급락으로 ‘이중 충격’을 받고 있다.

일반적으로 국제유가가 하락하면 기업들의 비용 절감에 도움이 된다. 특히 항공산업과 자동차산업 등의 경우 유가 하락이 수익성 상승의 기회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코로나19 여파로 수요가 급감한 상황에서 유가 하락은 오히려 수요를 더 악화시킬수 있다는 점에서 산업 전반에 걸쳐 부정적인 영향을 확대시킬 수 있다.

당장 유가 급락은 정유업계와 조선·철강업계 등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산업의 실적에 타격을 준다. 정유업계는 유가가 하락하면 원유재고 평가손실이 크게 불어나는 구조이고 조선업계는 해양플랜트 발주가 지연돼 일감 부족을 걱정해야 한다. 철강업계도 유가 하락으로 철강제품 가격 인상 시도가 물거품이 될 수 있어 전전긍긍하는 분위기다.

특히 정유업계는 지난해 말부터 이어진 정제마진 하락에 유가 급락으로 어닝쇼크 수준의 직격탄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에 공급과 수요가 모두 타격을 입은 국내 주력산업이 이제는 유가 전쟁에 휘말리고 있다.

9일 정유업계에 따르면 3월 첫째 주 배럴당 정제마진은 전달 대비 1.1달러 하락한 1.4달러를 기록했다. 정유사 수익의 핵심지표인 정제마진은 지난해 9월 10.1달러로 정점을 찍은 뒤 계속 하락해 손익분기점(BEP)인 4~5달러 밑으로 추락했다. 지난달에는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중국 소규모 정유공장의 가동률이 떨어지면서 정제마진이 반짝 상승했으나 사태가 장기화하며 다시 1달러 수준을 맴돌고 있다. 국내 1위 정유업체인 SK에너지가 지난 2009년 이후 10여년 만에 정제공장 가동률을 15% 낮춘 데 이어 롯데케미칼 등 석유화학업체들도 가동률을 조정 중이다.

정제마진 악화에 국제유가 급락으로 국내 정유사들의 1·4분기 실적은 쇼크 수준일 것으로 전망된다. 단기적으로 유가가 하락하면 정유사가 높은 가격에 구매한 원유 재고의 평가손실이 발생한다. 노우호 메리츠종금증권 연구원은 2월 이후 유가 급락으로 인한 SK이노베이션(096770)과 에쓰오일의 합산 재고손실이 3,283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일각에서는 유가 하락이 장기적으로는 정유사들의 원가 경쟁력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예측을 내놓기도 한다. 국내 정유사들이 저유가와 함께 호황을 누렸던 2015~2016년이 재현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사우디아라비아 국영 석유회사 아람코는 다음달 원유공식판매가격(OSP)을 배럴당 6~8달러 낮춘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문제는 산유국들의 치킨게임이 결국 글로벌 수요 급감에 기인하고 있다는 점이다. 시장조사업체 IHS마킷은 코로나19 확산 탓에 1·4분기 세계 석유 수요가 지난해 대비 일평균 380만배럴 감소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통계 집계 이후 사상 최대 규모의 감소폭이다. 정유업계의 한 관계자는 “2015~2016년에는 저유가와 함께 수요가 뒷받침됐기 때문에 실적이 좋아질 수 있었다”며 “지난해 미중 무역분쟁, 올해 코로나19로 세계 경제가 위축되고 있는 국면에서 같은 상황을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내다봤다. 높아진 불확실성에 정유업계의 긴장감은 어느 때보다 고조된 상태다. 또 다른 관계자는 “사우디가 증산을 선언하면서 1~3개월 정도는 유가가 떨어질 텐데 얼마나 갈지는 짐작이 되지 않는다”며 “정유산업 자체의 불안정성이 심화하는 것 같아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조선산업은 해양플랜트 부문의 ‘수주 가뭄’이 악화할 것으로 우려된다. 유가가 내리면 유전 시추와 원유 생산을 위한 해양플랜트 발주가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올해 발주가 예상됐던 1조원 규모의 프로젝트들의 일정이 지연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앞서 시추선 인도 취소로 몸살을 앓고 있는 국내 조선업체의 자금 부담이 커질 수 있다. 국내 조선업 회생의 발판이던 액화천연가스(LNG) 추진선도 타격이 우려된다. 조선업계의 한 관계자는 “저유가에 따른 미국 셰일가스 생산 둔화 등으로 향후 LNG선 투자가 위축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플랜트에 쓰이는 파이프(강관)와 선박용 철강 제품(후판)을 생산하는 철강업계도 저유가의 유탄을 맞을 수 있다. 전방산업이 침체되면 덩달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철강업체들은 지난해에 이어 실수요향 가격을 인상하지 못해 수익성이 크게 악화했다. 높아진 원가 부담과 더딘 수요 회복에 장기 불황을 걱정하는 상황이다. 철강업계의 한 관계자는 “코로나19라는 돌발 변수로 가뜩이나 어려운 상황에 저유가 압박까지 더해졌다”며 “저유가 기조가 장기화한다면 원료 수입과 수출, 운송비 부담도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과거에는 유가 하락을 반겼던 자동차업계도 코로나19에 따른 소비심리 위축에 더 힘겨워하고 있다. 자동차업계의 한 관계자는 “일반적으로는 유가가 하락하면 내연기관 자동차 수요가 늘어난다고 본다”면서도 “다만 현재로서는 코로나19의 영향력이 더 커 판매량 증가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라고 분석했다.
/박효정·한동희·서종갑기자 jpar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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