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헌 원장 ‘시장에 확실한 메시지’ 관철
사실상 제 목소리 내는 첫 금감원장 평가
은 위원장도 ‘원칙대로 결정’ 주문
금융소비자보호처장 임명 놓고는
미묘한 긴장 관계 보여주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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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생결합증권(DLF) 손실 사태와 관련한 금융당국의 우리·하나은행 경영진 제재는 금융계에 상당한 파장을 몰고 왔다. 은행의 불완전판매를 이유로 일선 판매 책임자들을 문책한 적은 있지만, ‘내부통제기준 마련’ 미비를 이유로 최고책임자인 은행장을 중징계한 것은 사상 처음이었다. 그렇기에 다른 금융회사 최고경영자들도 혹시나 자신들도 걸려들까 예의주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금융사 잇속만 챙기고 소비자에게 큰 피해를 입히면 엄벌한다’는 강력한 신호를 보낸 금융당국의 의도가 어느 정도 먹혀들고 있는 셈이다. 이번 제재의 중심에는 그 누구보다도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이 있었다.
윤 원장은 역대 금감원장 가운데 가장 개혁적인 인물로 사실상 처음으로 제 목소리를 내는 금감원장이라고 금감원 내부 직원들은 말한다. 2008년 금융위-금감원 분리 이후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는 모두 경제·금융 관료 출신들이 금감원장을 맡아 사실상 금융위 정책의 성실한 수행자 노릇을 했다. 금감원 한 간부는 “당시 원장 방에는 ‘혼연일체’라고 쓰인 액자가 걸려 있었다. 금융위와 다른 목소리를 내지 말라는 뜻이 담겨 있었다”고 말했다. 현 정부 들어 민간 출신의 최흥식·김기식 원장이 임명되긴 했으나 단명에 그쳐 평가대상이 못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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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원장은 이번 제재를 결정하면서 밤잠을 설쳐가며 고심을 거듭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중징계 조처를 하면 우리금융지주 손태승 회장의 연임이 불가능해져 자칫 출범 1년밖에 되지 않은 우리금융지주의 조직 안정성을 해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이번 결정과정을 아는 한 금융계 관계자는 “윤 원장은 우리금융 쪽의 이런 사정을 이해하지만, 시장에 확실한 메시지를 줘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한 것으로 안다”며 “지금까지 어느 금감원장도 이런 때 시장에 메시지를 제대로 주지 못해 금융사들의 잘못된 행태가 반복돼온 것 아니냐는 인식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실제로 윤 원장은 지난달 20일 국회 정무위원회 답변에서 “확실한 시그널을 시장에 발할 필요가 있다. 경영 판단 또는 경영 책임, 내부통제를 포함해서, 이것에 대한 책임은 분명히 지적을 하고 넘어가는 게 맞다는 생각이 다른 모든 것보다 크게 다가와서 그렇게 판단했다”고 말했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의 태도도 주목된다. 이번 은행장 제재 결정과 관련해 금융위원회와 금감원 사이에 갈등이 있었다는 일각의 관측이 있었으나, 실제로는 금감원에 거의 전권을 맡겼던 것으로 파악된다. 특히, 은 위원장은 원칙대로 처리할 것을 주문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는 과거 민감한 사안의 경우 금융위가 물밑 조율을 해왔던 관행과 상당히 다른 것이다. 은 위원장은 지난달 기자간담회에서 관련 질문에 “금감원은 조사한 자료에 바탕을 두고 그 다음에 여러 제재심 위원들의 의견을 들어서 판단한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위의 이런 태도는 우리은행 민영화 과정에서 정부가 자율 경영을 공개적으로 보장했던 점, 그리고 국정농단 사태 이후 직권남용에 대한 공무원들의 몸조심 등 여러 사정도 배경에 깔려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어찌됐든 이 사안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은 위원장과 윤 원장이 나름의 ‘공조’를 이룬 것으로 평가된다. 이번 결정과정을 잘 아는 또다른 금융계 관계자는 “은 위원장은 다양한 의견을 받아들이려는 태도를 갖고 있다”며 “윤 원장의 뚝심과 은 위원장의 포용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두 사람의 관계가 마냥 좋은 것은 아니다. 최근 금감원 금융소비자보호처장(부원장) 임명을 둘러싼 갈등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금감원 부원장은 금감원장의 제청으로 금융위가 임명하는 절차를 밟게 돼 있다. 금융위는 윤 원장이 금소처장 후보로 올린 3명을 모두 거부했고, 더 나아가 자본시장을 담당하는 개혁 성향의 원승연 부원장의 교체를 주문한 것으로 알려진다. 뚜껑을 열어보니, 제3의 인물을 금소처장에 임명하고, 다른 부원장들은 유임하는 것으로 타협점을 찾은 것으로 보인다. 금융위-금감원 사이의 ‘미묘한 긴장’ 관계는 계속되고 있다는 얘기다.
박현 기자 hy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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