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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2 (토)

뒤늦게 도마에 오른 홍형숙 감독 다큐 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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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 <본명선언>이 재일교포 영화감독인 양영희 감독의 1996년작 <흔들리는 마음>을 무단도용했다는 의혹과 함께 <경계도시 2>를 만들면서는 스태프에게 인건비를 제대로 지급하지 않았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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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7일 서울 은평구 서울기록원에서 <흔들리는 마음>과 <본명선언>의 비교상영회가 진행되고 있다. /김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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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영화 두 편을 두고 독립영화계에서 날선 공방이 이어지고 있다. 1998년작 <본명선언>과 2009년작 <경계도시 2>를 둘러싼 논란이다. 논란의 중심에는 이 두 작품을 연출한 홍형숙 감독이 있다. 홍 감독이 <본명선언> 제작 과정에서 재일교포 영화감독인 양영희 감독의 1996년작 <흔들리는 마음>을 무단도용했다는 의혹과 함께 <경계도시 2>를 만들면서는 프로듀서와 촬영감독 등 스태프에게 인건비를 제대로 지급하지 않았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각각 11년과 22년 전 발표된 두 작품이기에 긴 시간이 흐른 뒤 뒤늦게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는 점에서 독립영화계 안팎의 관심이 더해지고 있다.

1998년 제3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최우수 한국다큐멘터리상인 운파상을 받은 <본명선언>의 무단도용 의혹은 당시 수상 직후부터 제기된 바 있다. 이 작품은 재일 한국·조선인 학생들이 일본식 이름인 ‘통명’ 대신 원래의 한국식 이름 ‘본명’을 쓸지를 두고 고뇌하는 모습을 담았다. 문제는 상영시간 70분 가운데 총 9분 40초 분량을 양 감독이 찍은 <흔들리는 마음>에서 가져온 데서 시작됐다. <흔들리는 마음>은 1996년 양 감독이 연출해 일본 NHK에서 방영된 30분 분량의 다큐멘터리다.

11년과 22년 전 발표된 두 작품

1998년 <본명선언>의 부산영화제 수상 이후 도용 논란이 일자 일각에서 두 작품을 나란히 비교하는 상영회를 열어 진위를 판단하자는 목소리도 나왔다. 그러나 두 작품의 비교상영은 그동안 이뤄지지 못하다 지난 2월 7일 22년 만에 서울 은평구 서울기록원에서 열리게 됐다. 비교상영회에서 <흔들리는 마음>에 이어 상영된 <본명선언>에서는 다른 장면과 달리 작품에 들어간 <흔들리는 마음> 출처의 영상을 흑백으로 처리했다. 양 감독의 이름은 <본명선언> 엔딩 크레디트에 ‘8㎜ 취재’라는 타이틀로 나올 뿐이다.

<흔들리는 마음>의 영상 일부가 <본명선언>에 사용됐다는 사실은 양 감독과 홍 감독 모두 인정한다. 홍 감독이 <본명선언>을 만들기 전부터 두 사람이 만나 <본명선언> 제작을 앞두고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고, 양 감독이 홍 감독에게

<흔들리는 마음> 촬영 원본을 보냈다는 점까지도 양측의 주장이 일치하는 부분이다. 그러나 양 감독의 영상을 사용하는 데 있어 양측의 합의가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서로 의견이 크게 엇갈린다. 양 감독은 비교상영회 후 발언에서 “테이프(촬영 원본)를 보냈다고 해서 그걸 그대로 갖다 붙이는 게 말이 되느냐”라며 “테이프는 독창적인 작품을 만들라고 참고 자료로 보낸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영상을) 1초라도 쓴다면 꼭 가편집을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고도 말했다.

이에 대해 홍 감독은 1998년 부산영화제 출품을 앞두고 <본명선언>의 최종 제작 일정이 촉박하게 진행된 탓에 가편집본을 보내지 못하고 완성본만을 보낸 점은 인정하며 사과의 뜻도 밝혔다고 말했다. 그러나 양 감독의 말대로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무단도용을 했다는 데 대해선 동의할 수 없다는 뜻도 밝혔다. 홍 감독은 “사전 과정에서부터 양 감독에게 구성안을 보내기도 했고, <흔들리는 마음> 영상을 사용하겠다는 의사를 여러 차례 알렸다”며 “양 감독에게 촬영과 섭외 요청을 하기도 했고, 복사본이 아닌 촬영 원본 테이프와 편집 기록까지 함께 받는 등 양 감독이 적극적으로 협조해주었기 때문에 충분히 협의가 이뤄진 것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작품이 완성되고 부산영화제 수상 이후 양 감독이 문제를 제기하며 <본명선언>에 들어간 <흔들리는 마음> 부분을 모두 빼달라고 했을 때도 이를 받아들여 KBS에서 <본명선언>을 방영할 때엔 양 감독의 영상을 모두 빼고 방영했다고도 말했다.

그러나 홍 감독의 해명에 대해 양 감독은 납득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양 감독은 촬영 원본을 홍 감독에게 제공한 것이 “당시 지금보다 더 재일교포에 대한 관심이 없을 때이기도 했고, 한국에서 이를 소재로 영화가 만들어지면 좋을 것 같아서”였다며 “홍 감독이 방송에 나간 30분 분량 외에도 보고 싶다고 해서 이해를 돕는 차원에서 원본을 다 보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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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건비 미지급 논란이 되고 있는 홍형숙 감독의 영화 <경계도시2> 메인예고편 장면/화면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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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년 전 작품이 또다시 도마 위에 올라 서로 다른 주장이 대립하면서 홍 감독의 또 다른 작품인 <경계도시 2>의 인건비 미지급 논란도 함께 거론되고 있다. 홍 감독의 2009년작 <경계도시 2>는 한국계 독일인 철학자 송두율 교수가 2003년 한국에 입국한 뒤 수사기관에 구속되고 재판을 받은 일련의 경과를 다뤘다. 2003년부터 제작에 들어간 이 작품은 7년에 걸쳐 만들어져 2009년 발표됐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제작자인 홍 감독이 프로듀서와 스태프들에게 인건비를 지급하지 않았다는 주장이 나오며, 홍 감독을 둘러싼 의혹이 또 한 차례 불거진 것이다.

중재위 판단 보류로 법정에 설 듯

<경계도시 2> 제작 당시 프로듀서로 참여한 김명화 굿필름 대표는 연출을 맡은 홍 감독이 제작비를 대야 했지만 홍 감독으로부터 받은 돈이 부족해 자신이 사비를 들여 제작에 참여했음에도 이를 받지 못했고, 다른 촬영 스태프들 역시 인건비를 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김 대표는 인건비를 지급하라는 요구와 함께 프로듀서를 맡은 자신에게 영상 제작자로 참여했음을 인정하라는 요구를 담아 지난해 영화인신문고 중재위원회에 중재를 신청한 바 있다.

김 대표는 <경계도시 2>를 기획하고 제작하는 과정에서 자신과 스태프들이 인건비를 받지 못하고 참여했고 이후에도 아무런 정산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또 홍 감독이 해당 작품에 대해 “처음 기획할 때 대학원 졸업작품으로 시작했던 것이기 때문에 인건비를 주고받는 계약이 아니라 서로 ‘품앗이’하는 개념으로 작품에 참여한 것이고, 김 대표는 제작을 도맡은 프로듀서라기보다는 일종의 ‘라인 프로듀서’(보조적 역할)였다고 볼 수 있다”고 주장한 데 대해서도 반박했다. 김 대표는 “촬영 당시 송두율 교수의 입국 이후 국내 현장을 추적하는 팀을 맡아 촬영을 이끌었는데 송 교수가 구속되고 재판이 진행되면서 제작 기간도 길어져 영화 후반부 작업에서는 아예 배제되고 말았다”고 말했다.

홍 감독도 인건비를 지급하지 않은 점에 대해서는 인정하고 있다. 김 대표를 비롯해 당시 제작에 참여한 스태프들에게 뒤늦게나마 인건비를 지급하겠다는 의사를 밝혀 총 5명 중 2명에게서는 인건비를 받지 않겠다는 의사를 전달받았다고도 말했다. 그러나 김 대표를 포함한 3명과는 논의가 이어지지 않거나 연락이 닿지 않은 탓에 협의가 진행되지 못했지만 차후 충분한 협의를 거치겠다는 것이다. 다만 김 대표의 제작자 지위를 둘러싼 논쟁에 대해서는 김 대표를 프로듀서로 명기하긴 했고, 그 밖의 요구는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 대표가 영화인신문고 중재위에 신청한 사건은 해당 중재위가 지난 1월 10일 판단을 보류하겠다고 발표함에 따라 결국 법정에서 양측이 다투게 됐다. 영화인신문고는 “동일한 내용으로 ‘영상제작자지위부존재확인소송’이 서울중앙지법에 접수된 사실을 확인해 민간중재조정기구로서 사법기관과 다른 판단을 할 수 없으므로 해당 사건 처리를 일시적으로 보류했다가 법원 판결 이후 속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김 대표는 “그동안 여러 차례 영화인신문고에 해당 내용을 소명했음에도 수개월 동안 아무 판단을 내리지 않다가 소송이 제기되자 보류 방침을 내놓은 것을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반면 홍 감독은 “시대가 지나며 바뀐 흐름에 맞춰야 한다는 데는 동의하지만 그 시점에서는 서로 양해했던 일을 차후 긴 시간이 흐른 뒤 다시 문제 삼는 모습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고 맞섰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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