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에 진출한 장편 영화 '산상수훈'의 감독을 맡은 대해 스님. 지난 3일 시사회가 끝난 뒤 가진 관객과의 만남에서 대해 스님이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제공=김상철 P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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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이런 어메이징한 영화인 줄 몰랐다. 스토리, 연기, 메시지 모든 것이 완벽하다.”(UN 안전보장이사회 관계자)
“영화에서처럼 현상이 아닌 본질이 서로 닿는다면 우리는 차별을 떠나 정말 평화로워질 것이라 생각한다. 종교는 때로 무기로 사용되는데, 이 영화는 평화의 무기로 사용되어 질 것 같다.”(UN 사무국 관계자)
최근 UN(국제연합)에서 시사회 한편에 때아닌 ‘소동’이 일어났다. 오스카 수상을 앞둔 ‘기생충’이 아니라 한국의 무명감독이 만든 종교 영화 ‘산상수훈’ 때문이다.
2017년 12월 국내 개봉한 이 영화는 5만 관객이라는 초라한 성적으로 잊혔지만, 해외에선 호평을 받으며 지금까지 생명력을 보존하고 있다. 모스크바 국제영화제 등 해외 영화제에서 ‘감독상’ ‘남우주연상’ 등을 잇따라 받았고 미국 CNN이 다큐멘터리 ‘어크로스’(ACROSS)를 제작한 데 이어 미국 예일대, UCLA 등의 초청으로 ‘순회 시사회’까지 열렸다.
급기야 지난 3일 UN 본부 12홀에서 각국 외교관, UN 관계자, 종교 NGO 임원 13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시사회가 열리는 ‘대형 이벤트’로 번졌다.
더 충격적인 것은 신약성서 ‘마태오의 복음서’ 5~7장에 기록된 예수의 산상설교를 소재로 한 이 영화의 감독이 영화를 한 번도 배워본 적 없는, 그것도 기독교인이 아닌 스님이라는 사실이다.
장편 영화 '산상수훈'의 감독인 대해 스님(왼쪽)과 이 영화 남자 주인공을 맡은 배우 백서빈. /사진제공=김상철 P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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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해(大海) 스님(여·61)은 지난 10년간 90여 편의 단편 영화를 제작했다. 이번 영화 ‘산상수훈’은 4대 성인 시리즈 중 하나로 기획된 것으로 ‘현상’과 ‘본질’이라는 난해한 내용에도 해외 관계자들의 ‘극찬’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6일 뉴욕에 머물고 있는 대해 스님과 전화 인터뷰를 통해 가장 궁금한 2가지를 물었다. ‘왜 영화를 만드느냐’와 ‘스님이 기독교 영화를 만드는 배경’이 그것이다.
전자에 대한 그의 답변은 간단했다. “제가 1995년 출가했는데, 인간의 본질을 알고 나서 이를 어떻게 알릴까 고민하다 처음엔 교과서로 시작했어요. 하지만 책은 한계가 있더라고요. 교과서는 현상은 제대로 구현하지만 본질은 형식적이었던 한계가 있었고 지금은 영상 시대니, 영화로 알리자고 마음먹고 98년부터 시작했죠.”
‘산상수훈’ 작업할 땐 불교와 기독교에서 ‘의아함’이 적지 않았다고 했다. 그럴 때마다 그가 내세운 한결같은 논리는 “(인간과 종교의) 본질은 다르지 않다”는 것이었다.
“제가 기독교를 알고 모르는 건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어떤 종교의 논리도 결국 ‘본질’이라는 측면에선 같거든요. 가령 하얀 종이로 배도 만들 수 있고 비행기도 만들 수 있는데, 배와 비행기는 현상이고 종이는 본질이죠. 그런데 배와 비행기만 본다면 안 보이는 종이(본질)는 찾을 수 없어요. 보이는 것을 놓아야 안 보이는 것을 볼 수 있어요. 불경도 그렇고 성경도 그래요. 본질의 형체를 못 보니 종교끼리 싸우고 갈등이 생기는 겁니다. 보이는 현상이 상대적이라면 안 보이는 본질은 절대적이에요.”
창조론과 진화론에 대한 논란도 그의 ‘본질’의 설명을 들으면 이해가 가는 듯하기도 하다. 종이로 배를 만들고 나서 더 잘 만들려면 다시 종이로 돌아가 만들면 되는데, 이때 종이 입장은 창조론이고 배의 입장은 진화론이다. 창조 없는 진화, 진화 없는 창조는 이뤄지지 않기에 둘은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산상수훈’은 신학 대학원생 8명이 마태복음에 나오는 신앙적인 부분을 토론과 연구를 통해 해답을 찾는 과정을 담았다. 하느님은 누구인지, 선악과는 무엇이고 천국에는 갈 수 있는지를 현상과 본질의 부분에서 탐구하고 이 과정에서 종교적 갈등, 세계 평화의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논증’을 얻는 식이다.
장편 영화 '산상수훈'의 감독 대해스님(가운데)이 시사회를 본 UN관계자들과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김상철 P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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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시간 4분에 이르는 이 장편 영화에 던지는 반응은 기대 이상이다. 대해 스님은 “관람객에게 가장 많이 들은 말은 ‘모두 말로만 평화를 부르짖지, 실질적으로 평화를 이룰 방법을 얘기하는 경우는 없었는데 이 영화는 달랐다’는 것”이라며 “예상 밖 호응에다 추가 시사회 문의가 잇따라 10일 귀국도 늦춰질 것 같다”고 했다.
영화로의 포교 활동은 앞으로 더 많아질 전망이다. 다음에 준비 중인 작품은 인간의 공통 윤리와 공통 가치관에 대한 얘기다.
이미 두 개의 시나리오를 완성했는데, 하나는 본질의 특성을 108가지로 나눠 그에 맞게 제대로 쓸 수 있는 ‘인간사용설명서’이고, 다른 하나는 108법의 상담 공식을 가진 AI(인공지능) 얘기를 다뤘다.
영화 콘텐츠에 대한 아이디어는 법명 ‘대해’처럼 끝이 없는 듯했다. 대해 스님은 그런 큰 그림을 얘기하다 “아, 그런데…”하고 잠시 머뭇거렸다. “UN에서 기자회견도 하자고 하는데, 처음이라 출입증도 없고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네요.” 그의 글로벌 진출은 그렇게 시작됐다.
김고금평 기자 danny@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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