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리인단 “조약 아니란 판단…협상 파기 나아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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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합의(이하 12·28합의)’를 4년을 하루 앞둔 27일, 헌법재판소는 12·28합의가 헌법소원 대상이 아니라는 결정을 했다. 헌재는 합의가 법적 구속력있는 조약이 아닌 정치적 합의에 그치고, 피해자들의 대일 배상청구권 등 기본권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기 때문에 위헌 여부를 심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헌재는 강일출 할머니 등 피해자 29명과 가족 12명이 ’12·28합의가 위헌임을 확인해달라’며 낸 헌법소원 사건을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각하 결정했다. 각하는 헌법소원 청구가 헌재의 심판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할 때 본안 심리를 하지 않고 내리는 처분이다. 헌재는 12·28합의로 피해자들의 기본권이 침해될 가능성이 없다고 보아 헌법소원 심판의 대상이 안된다고 판단했다.
헌재는 12·28합의가 법적 구속력이 있는 조약이 아니고 정치적 합의에 그친다고 전제했다. 12·28합의가 서면으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구두 형식으로 합의됐으며 국무회의 심의나 국회의 동의 등 헌법상의 조약체결절차를 거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또한 일본의 사죄와 반성의 법적 의미를 확인할 수 없다고 보았다. 또 10억엔이라는 일본 출연금에 대해서도 시기, 방법이 언급되지 않는 등 합의의 법적 구속력이 있다고 보지 않았다. ‘해야 한다’와 같은 법적 의무를 나타내는 표현이 사용되지 않은 점도 근거로 들었다. 또 위안부 문제의 ‘최종적, 불가역적 해결’이나 ’국제사회에서의 비난·비판 자제’를 언급한 합의 내용을 두고도 한·일 양국의 공통된 인식이 존재하고 있지 않는다고 봤다. 나아가 12·28합의로 한국 정부의 외교적 보호권한이 소멸되지 않았다고 짚었다. 이런 이유로 헌재는 12·28합의를 통해 피해자들의 대일 배상청구권 등 기본권을 침해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헌법소원심판 청구를 허용하지 않았다.
한일 양국은 2015년 12월28일 일본 정부가 사죄를 표명하고, 위안부 피해자 지원재단에 10억엔(약 107억원)을 출연하는 대신, 위안부 문제를 최종적·불가역적으로 해결했다고 인정하는 내용의 합의를 발표했다. 그러나 피해자들의 입장을 배제한 채 이뤄진 양국 정부의 합의에 거센 비판이 쏟아졌다. 이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가족을 대리해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은 2016년 3월 헌법소원을 냈다. 앞서 헌재는 2011년 8월30일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정부가 노력하지 않는 부작위 상황이 위헌이라고 결정한 바 있다.
청구인들은 12·28합의로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 국가로부터 외교적으로 보호받을 권리를 침해받았다고 주장했다. 또 정부가 이 합의로 피해자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을 실현할 길을 봉쇄해 헌법상 재산권이 침해됐고, 합의 과정에서 피해자 주장이 반영되지 않아 절차 참여권과 알권리도 침해됐다고 주장했다. 반면 외교부는 합의가 법적 구속력 없는 정치적 합의이기 때문에 공권력 행사라고 보기 힘들며 피해자들의 기본권을 직접적으로 침해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각하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번 헌재의 결정은 외교부의 주장을 받아들인 것으로 해석된다.
민변의 이동준 변호사는 선고 직후 기자들을 만나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피해자들이 (합의로 인해) 받은 상처를 어루만져줄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었는데 그 부분을 헌재가 다하지 못한 것 같다”며 “헌재 결정으로 12·28합의가 조약도 아니고 공식적 협상 수준에 이르지 못한 것이란 점이 인정됐기 때문에 정부가 합의의 성격, 효력을 감안해 합의를 파기하거나 재협상하는 과정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요구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민변 일본군 ‘위안부’ 문제대응 티에프(TF)와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는 “헌재는 12·28합의로 정부의 외교적 보호권한이 소멸하지 않았다고 명확하게 판단했다“며 “한국 정부는 ‘위안부’ 피해자들의 인간으로서 존엄과 명예를 회복할 수 있도록 외교적 보호권을 행사하여야 한다. 일본 정부는 범죄 사실 인정, 공식 사죄와 법적 배상을 포함한 법적 책임을 이행해야 한다”고 변화를 촉구했다.
문재인 정부는 합의 파기를 선언하지는 않았지만 일본 정부의 출연금으로 세워진 ‘화해·치유재단’을 지난해 11월 해산한다고 발표했다. 이때문에 사실상 합의가 파기됐다는 해석이 나왔다.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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