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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2 (토)

[기자의 시각] '벌거벗은 임금님 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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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이기훈 경제부 기자


"제발 문재인 케어라고 부르지 말아 주세요."

최근 만난 한 보험업계 관계자는 '실손보험 적자가 왜 이렇게 늘어났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이렇게 마무리했다. 이른바 '문재인 케어(문케어)'라 불리는 정부의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을 실손보험 적자의 원인이라고 지목하면 정부·여당이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다는 게 이유였다. 그는 "실손보험 적자가 문케어 때문이라고 말하면 정부·여당이 들어줄 요구도 안 들어준다"고 했다.

문케어는 대통령 이름이 달린 몇 안 되는 정책 가운데 하나다. 대통령 이름이 접두사로 달린 정책에 대한 비판을 인정하는 게 불충(不忠)으로 보일까봐 그런지, 이 정부 관료들은 유난히 문케어에 방어적이다. 보험업계가 '문케어 이후 과잉 진료 탓에 죽겠다'고 하소연하자, 보건복지부 산하기관인 건강보험공단이 이례적으로 보험업계를 공격하는 자료까지 낼 정도다.

지난 11일 금융위원회·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자료가 마치 암호문 같은 이유도 그래서일까. 정부가 발표한 KDI(한국개발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2017년 문케어 시행 이후 올 9월까지 실손보험이 얻은 반사이익은 6.86%였다. 하지만 지난해 5월부터 올해 9월까지만 보면 반사이익은 0.6%로 사실상 실종된다. 그러자 정부는 "신뢰하기 어려운 결과"라고 했다. 자료의 한계 때문이란다. 작년까지만 하더라도 정부는 같은 자료로 한 연구를 인용하며 "문케어 덕에 민간 실손보험금 지출이 6.15% 낮아진다"고 주장했다. 보험료 인상 역시 그만큼 덜 해야 한다고 억눌렀다. 공공 지출이 늘어나는 대신, 민간 의료비 부담은 줄어든다고 홍보할 수 있었다.

그러던 정부가 올해는 문케어 효과를 보험료 산정에 반영하지 않겠다고 한다. 그러면서 문케어로 인한 실손보험금 지출 감소 효과가 없다는 건 또 아니라고 한다. '문재인 케어'를 문 대통령 치적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의무와 실손보험 적자가 치솟는 현실 사이에서의 고민이 말을 배배 꼬아 암호문처럼 만들고 말았다. 이런 속사정으로 이번 발표 자체도 수차례 연기된 끝에 잡힌 것으로 알려졌다.

의료계에서는 문케어가 도입될 때부터 의료 이용량이 폭증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런 우려는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 갑자기 아픈 사람이 늘어난 것도 아닐 텐데, 문케어 시행 후에는 뇌 MRI 검사가 2배 규모로 늘어났다고 한다. 민간 실손보험, 공공 건강보험에서 나가는 돈 모두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결국 공·사 의료보험료 모두 오르는 게 뻔한 수순이다. 그런데도 이게 문재인 케어 때문이라는 말을 못 하는 것이다. 정부 당국과 보험업계에 문재인 케어는 '홍길동 케어'이고, 속 터지는 국민 입장에선 '벌거벗은 임금님 케어'인 셈이다.

[이기훈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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