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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4 (월)

이슈 미술의 세계

'동네 미술' 불과했던 뉴욕, 현대미술의 심장 되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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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대전 후 세계의 리더 된 미국

미술이 힘을 드러내는 표상 되며 뉴욕이 미술계 수도로 자리 잡아

美 미술 중심 휘트니미술관 기획, 추상주의·팝아트·페미니즘 등 현대미술의 성장 촘촘히 분석

조선일보

20세기 미국 미술

휘트니미술관 기획|송미숙 옮김|마로니에북스
568쪽|2만8000원


지금이야 뉴욕을 '현대미술의 심장'이라 부르지만, 1940년대까지만 해도 미국 미술가들은 국제 미술계의 주류가 되기엔 한참 부족한 '동네 미술가' 취급을 받았다. 미국 미술이 현재의 위상을 갖추기 시작한 건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국이 '세계의 리더'가 되면서부터. 미술은 세계 무대의 새로운 패자(覇者)로 등극한 미국의 힘을 드러내는 표상이었다. 유럽이 전쟁의 폐허를 복구하는 동안 뉴욕은 미술계 수도로서 파리를 대체하기 시작했다. 1950년대 초 30여 곳에 불과했던 뉴욕 화랑은 1960년이 되자 300개로 급증했다.

미국 미술의 대표적 집결지인 뉴욕 휘트니 미술관이 기획한 이 책은 1950년부터 1999년까지 미국 미술의 성장 양상을 당시 사회상과 결부시켜 촘촘하게 분석한다. 1999년 책 출간 당시 휘트니 미술관 큐레이터였던 리사 필립스 뉴뮤지엄 관장이 대표 집필자다.

잭슨 폴록, 윌럼 드 쿠닝, 마크 로스코 등 1950년대 미국 미술의 중심이 된 뉴욕학파는 추상표현주의의 다양한 양식을 포괄적으로 아우른다. 추상표현주의의 특징인 거대한 화면은 당시 미국인과 미국이 품고 있던 대망을 반영한다. 대형 화면에 물감을 끼얹고 튀기고 쏟아붓는 '액션 페인팅'의 대표주자 잭슨 폴록은 독창성과 자율성, 개인적인 행동을 중시했다. 예술가는 '낭만적이고 소외된 천재'라는 인식을 만들어 낸 그는 44세였던 1956년 자동차 사고로 요절하면서 '미국적 영웅' 신화에 기여한다.



조선일보

큰 사진은 앤디 워홀의 1960년작 ‘딕 트레이시’. 만화 이미지를 차용한 팝 아트 작품이다. 아래 왼쪽은 잭슨 폴록의 그림을 담은 세실 비턴의 1951년 ‘보그’ 특집 광고, 오른쪽은 페미니스트 미술가 바버라 크루거의 1989년 작 ‘무제’. /마로니에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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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F 케네디가 취임하고 대중문화가 지배하던 1960년대 미국 미술은 소비자본주의 문화를 소재로 삼는다. 팝아트는 미국적 특징이 온전히 드러나는 독창적 양식을 창조하기 위해 광고, 만화, 상품 등 통속적 이미지들을 사용했다. 선구자 앤디 워홀은 유명세가 천재성을 대체해 새로운 권위로 부상했다는 통념을 반영한다. 책은 엘리자베스 테일러, 엘비스 프레슬리 같은 유명 사교계 인사의 초상화 작업을 했던 워홀을 "팝 미술가를 통틀어 홍보와 선전의 예술을 완벽하게 구사하면서 문화 산업을 가장 탁월하게 이용하고 변형시켰던 인물"이라 평한다.

번영과 풍요가 영원할 수는 없었다. 1972년 워터게이트 사건은 미국인들에게 권력 구조에 대한 환멸감을 불러일으킨다. 냉소주의가 만연하면서 다원주의가 미술의 새로운 화두로 떠오른다. 페미니즘 미술도 급부상한다. 미술사학자 린다 노클린의 글 '왜 위대한 여성 미술가는 없었나?'(1971)가 화제가 되고 여성 미술가들은 작업이 너무나 '여성적'이라는 이전까지의 부정적인 평가를 힘과 자긍심의 원천으로 바꾼다. 수공예와 가사가 작업 소재로 적극적으로 쓰인다. 39개의 세라믹 접시에 버지니아 울프를 비롯한 유명 여성 인사들을 위한 식탁을 차린 주디 시카고의 작품 '디너 파티'가 대표적이다. 오노 요코 등이 여성의 '몸'을 주제로 삼으며 퍼포먼스 작업이 급발전한 것도 이 시기다.

인플레이션으로 경제 침체기였던 카터 행정부에서 오히려 미술이 번성한다. 미술 애호가인 부통령 부인 조앤 먼데일이 큰 역할을 했다. 1980년 재스퍼 존스 그림 '3개의 성조기'가 휘트니 미술관에 100만달러에 팔리자 생존 미술가 작품 가격이 급등한다. 바야흐로 미술이 '빅 비즈니스'가 된다. 평론가들이 화랑 도록에 평문을 쓰기 위해 고용되고, 일라이 브로드를 비롯한 신세대 컬렉터들이 등장한다.

미국 미술이 궁금하다면 이 한 권만 읽어도 충분할 정도로 잘 만든 책이다. 600개 넘는 도판도 풍성하다. 다만 아방가르드의 최전선 '휘트니 비엔날레'를 개최하는 미술관의 기획물이란 건 책의 강점이자 한계로 보인다. '전위'로서의 미술에만 초점을 맞추다 보니 대중에게 친숙한 에드워드 호퍼, 앤드루 와이어스 같은 '전통적 화가'는 소홀히 다룬 측면이 있다. 그들 역시 엄연히 '미국 미술'의 한 줄기인데도 말이다. 2008년 국내에 처음 소개된 책을 이번에 다시 펴냈다. 원제 The American Century: Art and Culture, 1950-2000.




[곽아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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