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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4 (일)

이슈 '위안부 문제' 끝나지 않은 전쟁

위안부 피해자 "우리는 죄가 없다" 오열...3년 기다린 日정부 상대 손배소 첫 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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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불응에…공시송달 거쳐 3년만에 법정 변론
"위안부 피해자들의 첫 변론이자, 마지막 변론일 것"
"헌법이 보호하는 대한민국 국민 천명하는 재판 되길"
타국에 법적 책임 못 묻는 국제법상 '주권면제' 쟁점

조선일보

이용수(오른쪽부터), 길원옥, 이옥선 할머니가 13일 오후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일본 상대 손해배상 청구소송 첫 재판이 끝난 뒤 법정을 빠져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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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의 첫 재판이 3년 만에 열렸다. 오랜 세월을 기다린 위안부 할머니 가운데 한 사람은 "우리는 아무 죄도 없다"며 법정에서 오열했다. 하지만 피고인 일본 정부 측은 이날 재판에 나오지 않았다.

서울중앙지법 민사15부(재판장 유석동)는 13일 오후 5시 고(故) 곽예남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자와 유족 20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1인당 2억원을 배상하라"며 낸 소송의 첫 변론기일을 열었다.

대리인단은 "위안부 생존 피해자들이 처음으로 법정에서 변론하게 됐다"며 "연령을 고려하면 마지막 변론일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일본은 위안소를 관리·통제했고, 조선 뿐만 아니라 여러 나라에서 동원했다. UN과 국제사회는 (위안부에 대해) 일본의 인권침해가 명백하다고 보고 있다"고 했다. 1992년 UN에서 발간된 보고서에 ‘군사적 성노예’라고 적시돼 있는 것을 근거로 들었다.

대리인단은 "일본은 1965년 한일청구권 협정으로 배상 관련 문제가 해결됐다고 주장하고, 2015년 12월에는 최종적·불가역적이라는 납득하기 어려운 합의로 해결됐다고도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금전적 배상이 아니고 75년 전 침해당한 인간 존엄성과 가치의 회복을 위해 법원의 문을 두드린 것"이라며 "일본이 저지른 반인륜적 범죄행위를 사법부에서 확인하고 싶다. 일제에 의해 인격이 부정당한 위안부 피해자들은 헌법이 보호하는 대한민국 국민임을 천명하는 재판이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 할머니는 법정에서 엎드려 오열했다. 그는 "저희는 아무 죄가 없다"며 "일본은 당당하다면 재판에 나와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진상규명과 공식적 사죄, 배상을 30년간 바라왔다. 재판장님, 저희를 살려달라. 너무 억울하다"고 했다. 이옥선 할머니도 "우리가 나이 어려서 끌려갔는데 왜 양보가 되어야 하느냐"며 "나라가 저지르고 (재판에) 나오지 않으면 아베(일본 총리)가 나와야 한다"고 했다. 이어 "공식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는데 할머니들이 죽기를 바라고 있다. 죽어도 이건 규명해야 한다"고 했다.

피해자와 유족들은 2016년 12월 소송을 냈다. 하지만 3년 가까운 시간동안 재판은 한 번도 열리지 못했다. 법원행정처가 소송 당사자인 일본 정부에 소장을 송달했지만, 일본 정부가 헤이그협약을 근거로 여러 차례 이를 반송했기 때문이다. 헤이그협약은 '자국의 주권 또는 안보를 침해할 것이라고 판단하는 경우'에 한해 송달을 거부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법원은 공시 송달 절차를 진행했다. 소송 상대방의 주소를 알 수 없거나 서류를 받지 않는 등 재판에 불응하는 경우 법원 게시판이나 관보에 게재한 뒤 내용이 전달된 것으로 간주하고 재판을 진행하는 제도다. 소장 수령을 거부했던 일본 정부는 소송에도 대응하지 않았다. 소송대리인도 선임하지 않았다. 통상 민사 소송의 경우 당사자가 소장을 송달받고도 법정에 나오지 않으면 상대방의 주장을 인정하는 것으로 보는 '자백 간주'가 적용된다. 하지만 공시 송달의 경우는 자백 간주가 인정되지 않아 원고 측에 입증 책임이 있다.

이번 재판의 최대 쟁점은 '주권 면제(sovereign immunity·국가 면제)' 원칙이다. 국제법상 통용되는 주권 면제 원칙은 주권 국가에 대해 다른 나라가 자국의 국내법을 적용해 민·형사상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내용이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이날 정례 기자회견에서 "국제법상 '주권면제' 원칙에 따라 일본 정부가 한국의 재판권에 속한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며 "이번 소송은 각하돼야 한다"고 말했다. 1965년 한일청구권 협정,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를 근거로 청구권이 없다는 기존 입장도 반복했다.

이와 관련해 위안부 피해자와 유족 측은 "이탈리아 대법원과 최고재판소는 반인권 불법행위를 이유로 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재판권 행사를 제한하는 것은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침해하는 것으로 판단했다"며 "우리 헌법재판소도 배상 청구권의 실현을 막는 것은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했다. 실체법적 판단을 하는 것은 헌법 질서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에 재판부는 "본안 심리로 넘어가기 전에 국가 면제 이론이라는 장벽이 있다는 것을 원고 측이 잘 알고 있을 것"이라며 "설득력 있는 방법을 잘 마련해 달라"고 했다.

대리인단은 "피해자들이 피해를 진술할 수 없기 때문에 피해자들의 구술·진술을 연구한 전문가들의 증언을 통해 입증하려 한다"며 전문가 진술을 신청했다. 또 주권면제와 관련해 백범석 경희대 교수와 아베 고우키 가나가와대학 교수를 증인으로 신청했다. 다음 변론 기일은 내년 2월 5일 오후에 열린다.

재판이 끝난 뒤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은 간단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용수 할머니는 "우리는 죄가 없다. 그런데 위안부라고 하고, 성노예라고 하고 지금까지 나이 먹도록 이런 소리를 듣는 게 너무너무 속상하다"며 ""어떻게 내가 위안부 딱지를 떼어야 하나. 반드시 이 재판에 이겨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끝까지 포기 안 한다. 제 나이는 92살이지만, 활동하기 딱 좋은 나이"라며 "끝까지 일본에게 사죄와 배상을 받겠다"고 했다.

[오경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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