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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1 (금)

이춘재 대신 살인 누명 40대 “거꾸로 매달고 짬뽕 국물 얼굴에 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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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8일 넘게 잠을 재우지 않았고, 쓰러지면 마구 때려 다시 일어서게 했습니다. 수사 막바지에는 경찰이 거꾸로 매달고 짬뽕 국물을 얼굴에 부었습니다. ‘이러다가 죽겠구나’ 싶어서 허위 자백을 하게 됐습니다.”

1991년 청주 공장 직원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몰렸다가 재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박모(47)씨는 23일 당시 강압 수사를 이렇게 증언했다. 박씨는 1990년대 화성연쇄살인 사건의 피의자 이춘재 대신 살인 누명을 썼다.

1991년 1월 27일 청주시 가경택지개발지구(복대동 소재) 현장 콘크리트관 속에서 박모(당시 17세)양이 속옷으로 입이 틀어막히고 양손을 뒤로 묶여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이었다.

박씨는 공장 직원 살인 사건이 발생한 지 약 두 달이 지나서 형사들이 자신의 자취방에 찾아왔다고 기억했다. 해당 살인 사건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던 박씨는 혐의를 부인했다.

하지만 경찰은 박씨가 전과가 있고 사건 당일 알리바이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며 그를 체포했다. 그는 당시 복대파출소와 강서파출소를 옮겨 다니며 강압 수사를 받았다. 경찰의 무자비한 고문이 시작됐다.

비슷한 기간 절도죄로 실형을 선고받은 박씨는 교도소에서 공장 직원 살인 사건관련 경찰 보강 조사를 받았다. 박씨는 “살인 혐의에 대해서 부인하자 형사가 교도관에게 ‘싸가지가 없으니 수갑을 채우고 수감 생활을 하게 하라’고 지시하듯 말했다”며 “이후로 무죄 판결을 받을 때까지 약 2년간 24시간 수갑을 차고 지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식사 시간에도 수갑을 찬 채 밥을 먹었고, 일주일에 한 번 목욕할 때30분 정도만 수갑을 풀 수 있었다”며 “몇 달이 지나자 손목에 시퍼렇게 멍이 들 정도였다”고 수감생활을 회상했다.

1993년 6월 23일 청주지방법원은 강간치사·강도 혐의로 구속기소 된 박씨에게 증거 부족 등의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다. 박씨는 2심에서도 무죄를 선고받았다.

박씨는 “절도죄 복역을 해야 하긴 했지만, 살인 누명을 쓰고 교도소에서도 '살인범'으로 낙인찍혀 수갑을 찬 채 생활해야해 정말 고통스러웠다”며 “강압 수사를 했던 경찰은 지금이라도 사과해야 한다”고 말했다.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피의자 이춘재(56)는 10건의 화성사건 외 청주에서 1991년 1월 청주 공장 직원 살인사건, 두 달 뒤인 3월 청주 주부 살인사건을 저질렀다고 시인했다.

청주=김을지 기자 ejki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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