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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4 (목)

“공정” 27번 언급…조국 사태로 퇴색한 국정 가치 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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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권초 화두로 ‘신뢰 위기’ 돌파 구상

“특권·반칙 없애려 노력했지만

국민 요구는 그보다 훨씬 높아”

제도에 내재한 불공정 개선뜻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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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22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가장 힘을 실어 이야기한 가치는 ‘공정’이었다. 국정 가치로 내걸었던 ‘공정’이 ‘조국 사태’를 거치며 의미가 퇴색한 사실을 인정하고, 정권 출범 당시의 초심으로 돌아가 국민 신뢰를 회복하겠다는 의지를 담은 것으로 보인다.

이날 시정연설에서 문 대통령은 내년도 예산안 설명을 마친 뒤 바로 ‘공정을 향한 개혁’으로 연설 주제를 전환했다. 공정이란 단어는 27차례나 등장했다. 시정연설이 보통 예산안에 대한 설명과 협조 당부로 채워지는 것을 고려하면 이례적이다. 가장 많이 등장한 ‘경제’(29차례)에 견줘도 언급 빈도가 크게 뒤지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조국 사태를 겪으며 자신이 생각했던 공정함의 잣대가 국민 눈높이보다 느슨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했다. 그는 “국민의 다양한 목소리를 엄중한 마음으로 들었고, 공정과 개혁에 대한 국민의 열망을 다시 한번 절감했다”며 “정부는 그동안 사회에 만연한 특권과 반칙, 불공정을 없애려고 노력했지만 국민의 요구는 그보다 훨씬 높았다”고 했다. 이어 “국민 요구는 제도에 내재한 합법적인 불공정과 특권까지 기본적으로 바꿔내자는 것이었다”며 “대통령으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갖겠다”고 다짐했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지 않은 채 공정함을 강조하는 것은 공염불에 그칠 수 있다는 점을 절감했다는 것이다.

실제 이날 연설에서 ‘공정 실현’은 혁신이나 포용 성장,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같은 국정과제들보다 우선순위에 놓였다. 문 대통령은 “공정이 바탕이 되어야 혁신도 있고, 포용도 있고, 평화도 있을 수 있다”며 “경제뿐 아니라 사회·교육·문화 전반에서 공정을 새롭게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관성화된 불공정’을 척결하겠다는 의지도 드러냈다. 문 대통령은 교육, 채용, 납세, 병역, 직장 내 차별 문제까지 두루 언급한 뒤 “국민의 삶 속에 존재하는 모든 불공정을 과감하게 개선해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겠다”고 했다. 이 과정에서 ‘대입 정시 확대’를 추진하겠다는 뜻도 내비쳤다.

문 대통령이 임기 반환점(11월9일)을 맞는 시점에서 ‘공정’을 다시 화두로 꺼낸 것은 정권이 맞닥뜨린 신뢰의 위기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이른바 문재인 정부의 주축인 ‘민주개혁세력’ 인사들 역시 우리 사회의 ‘기득권 카르텔’에 깊숙이 편입돼 있다는 사실이 드러남에 따라, 정부가 출범 초 밝힌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할 것이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란 선언의 신뢰도 역시 심각한 손상을 입은 것이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문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도가 대선 득표율(41.1%) 아래로 떨어지고, 민주당과 한국당의 정당 지지도가 조국 사태를 거치며 현저하게 좁혀진 것도 정권 수뇌부의 위기감을 키웠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공정은 대통령이 늘 강조해온 가치이지만, 이번에 조국 사태를 거치며 ‘제도화된 합법적 불공정’ 문제가 사회의 표면 위로 떠올랐다. 대통령 스스로 공정의 기치를 다시 세우지 않고서는 ‘무신불립’의 위기를 맞을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성연철 기자 sych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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