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위 포기해도 향후 협상에 적용
당장 관세율 등 불이익 없다 판단
장기적으론 공익형 직불제 시급
오늘 농민단체들 의견수렴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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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미국의 통상 압박에 대응하기 위해 세계무역기구(WTO) 안 농업 분야 개발도상국 지위를 포기하기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르면 25일 대외경제장관회의를 열어 확정할 가능성이 있다. 정부는 개도국 지위를 포기해도 당장 관세나 보조금에 변화가 있는 게 아니라고 강조했지만, 농민단체들은 향후 농업 기반이 무너질 것이라며 반발했다.
21일 기획재정부·산업통상자원부·농림축산식품부의 설명을 종합하면, 정부는 이달 안으로 대외경제장관회의를 열어 개도국 지위 포기를 결정한다. 시점은 기획재정부 국정감사(23~24일)가 지난 25일이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전해진다. 유명희 산업부 통상교섭본부장은 이날 미국으로 출국해 미 무역대표부(USTR)와 관련 현안을 논의하고 24일 귀국할 예정이다.
지난 7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한국 등 ‘가장 부유한 나라’들이 세계무역기구에서 개도국 지위를 인정받는 것에 문제를 제기하고 90일 시한 내 조처가 없다면 해당 국가를 개도국으로 대우하지 않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지난달 20일 홍남기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향후 개도국 특혜를 유지할 수 있을지 근본적인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재검토 입장을 밝혔다. 한국은 1995년 세계무역기구 출범 당시 농업 분야에서 개도국 지위를 택해, 수입 농산물에 고율 관세를 부과하고 국내 농업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특혜를 인정받고 있다.
정부는 이번에 개도국 지위를 내려놓더라도 상징적인 의미가 있을 뿐이지 당장 국내 농업과 농민들에게 미칠 실질적 불이익은 없다고 설명했다. 1995년 타결된 우루과이라운드 협정을 대체하기 위해 농업 분야를 포함한 세계무역기구 도하개발어젠다(DDA) 협상이 2001년 시작됐지만, 선진국과 개도국의 의견 차이로 2008년 이후 10년 넘게 논의가 멈춰 사실상 결렬된데다, 가까운 장래에 협상이 타결될 가능성도 거의 없기 때문이다. 개도국 지위를 포기하더라도 새 농업협상 타결이 요원한 상황이라 당장 선진국 수준으로 쌀 관세율과 농업보조금 한도가 조정되진 않는다는 것이다.
미국이 한국뿐만 아니라 35개 나라를 ‘개도국 제외’ 대상으로 분류해 압박하지만, 당장 새 협상이 시작될 가능성은 낮다는 게 정부 관측이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미국이 주장하더라도 중국, 인도 등이 반대하고 있어 새 협상이 만들어져도 최종 타결까지는 어려울 수 있다. 여러 측면에서 불확실성이 큰 상황”이라고 말했다.
장기적으로는 새 협상에 따른 농업 기반 변화에 대비해야 한다. 새 협상에서 관세율과 보조금 한도가 선진국 수준으로 조정되는 경우 국내 농업 분야에 타격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김태훈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특정 품목이나 직접 생산과 관계없이 농가에 지원을 하는 ‘공익형 직불제’는 세계무역기구가 허용하는 방식이다. 미리 준비해놓지 않은 상태에서 세계무역기구가 정한 보조금 총량 한도가 줄어드는 상황이 되면 더 이상의 농가 지원이 어려워지게 된다”며 “공익형 직불제로의 전환을 더 앞당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전국농민회총연맹 광주전남연맹과 전국쌀생산자회 광주전남본부 등 농민단체 6곳은 이날 전남도청 앞에서 기자회견 열어 “정부의 개도국 지위 포기는 통상주권을 포기하고, 농업을 낭떠러지로 내모는 일”이라며 “농업선진국을 주장하지만 식량자급률 24%, 농업소득 20년 정체, 도농 간 소득 격차 60% 등의 현실은 전혀 개선되지 않고 있다. 농민들과 머리를 맞대고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정부는 22일 김용범 기재부 1차관 주재로 농민단체와 간담회를 열어 의견 수렴을 할 예정이다.
이경미 안관옥 최예린 기자 km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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