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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6 (일)

이탈리아 집권당 창립자 "노인 투표권 박탈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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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 정책 결과 오래 못기다려… 미래 관심 젊은층 뜻 반영해야"

조선일보

이탈리아 집권당인 오성운동 창립자가 노인들의 투표권을 박탈하자는 공개 제안을 내놔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 2009년 오성운동을 창당한 유명 코미디언 출신 정치인 베페 그릴로(71·사진)는 지난 17일 자기 블로그에 '노인들의 투표권을 회수한다면?'이라는 도발적 제목의 글을 게시했다. 그는 구체적 투표 제한 연령을 언급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노인들의 투표를 제한하고, 젊은이들에게는 투표 가능 연령을 낮춰 투표권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이탈리아 정치권에서는 투표 가능 연령을 18세에서 16세로 낮추자는 구체적인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그릴로는 "투표권 제한 논의는 나이가 들면 젊은 세대에 비해 사회·정치·경제적 미래에 관심을 덜 갖게 되고 어떤 정치적 결정이 미칠 장기적인 결과를 차분히 기다리기 어려워진다는 가정에서 출발한다"고 했다. 그는 65세 이상에서 5명 중 1명, 75세 이상에서 3명 중 1명은 정치에 관심이 없다는 이탈리아 통계청의 4년 전 설문조사를 근거로 제시했다.

그릴로는 "노인들과 젊은 세대의 이해관계가 상반될 때 민주주의는 무엇을 해야 하나"라고 반문하며 "미래에 진심으로 관심을 가진 젊은 세대의 의중이 반영될 수 있게 노인의 투표권을 회수하는 게 옳다"고 했다. 그는 영국을 예로 들었다. 영국 젊은이들은 EU(유럽 연합)에 머물고 싶어 하지만 노인들이 브렉시트를 원하는 바람에 젊은이들이 의사에 반해 브렉시트를 강요당하고 있다고 했다.

그릴로는 "노인 유권자는 현재도 많은 수를 차지하고 앞으로도 계속 증가할 것"이라며 "투표권은 영구적인 특권이 아니라 국가 운영을 결정하기 위한 참여여야 한다"고 했다. 이탈리아는 이미 65세 이상 인구가 1350만명으로 전체의 22%에 달한다. 출산율이 낮아 빠른 속도로 노인 인구가 늘어나고 있다. 그릴로는 "젊은 세대 역시 언젠가는 노인이 되기 때문에 특정 나이 이상의 노인만을 대상으로 투표권을 거둬들이는 것이 연령에 기반한 차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릴로가 제시한 노인 투표권 박탈에 대해 이탈리아 정치권은 반응이 갈리고 있다. 주세페 콘테 총리는 "여론조사로 국민 의견을 수렴한 뒤 결과를 보고 검토하자"며 신중한 반응이었다. 그릴로의 후계자이며 현재 오성운동 대표인 루이지 디 마이오 외무장관은 구체적인 언급을 피했다. 반면 원내 2당인 동맹당의 마테오 살비니 대표는 "역겨운 제안"이라며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동맹당은 극우 성향이라 지지자 중 노년층 비율이 높다.

인기 정상 코미디언이었던 그릴로는 2009년 기본 소득 지급을 전면에 내세운 포퓰리즘 정당인 오성운동을 창당했다. 그는 직접 선거에 출마하지 않고 있지만 여전히 막후에서 오성운동을 좌지우지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 총선에서 오성운동이 원내 1당으로 발돋움해 집권당이 되면서 그의 위상은 더 높아졌다.





[파리=손진석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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