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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2 (토)

"그 무엇에 간절할 때… 등뼈에서 피리 소리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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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신달자]

15번째 시집 '간절함' 펴내… 3년간 쓴 70편의 詩 한 곳에

"나이 들수록 감사함 느껴… 모래알처럼 작은 것들에 다시 눈뜨는 이야기 담았죠"

"나이 들수록 '간절함'이 더해지는데, 그것은 곧 '감사함'이죠. 주어진 시간과 사람들이 감사하기만 해요."

조선일보

신달자 시인은 "낙엽 지는 계절에 '저 낙엽은 소리가 바닥난 것'이라고 썼는데, 모든 존재의 내면엔 소리가 있다. 하물며 접시도 깨질 땐 소리를 내지 않는가"라고 말했다. /오종찬 기자


신달자(76) 시인이 열다섯 번째 시집 '간절함'(민음사)을 냈다. 고희(古稀)를 넘겨 시집 '북촌'을 낸 데 이어 지난 3년 동안 쓴 시 70편을 한자리에 모았다. 시인은 "사소하고 작은 것들에 다시 눈뜨는 이야기"라며 "시간에 허기지고, 모래 한 줌을 쥐어도 저릿저릿하게 느끼면서 그 모래알처럼 작은 것들의 소중함을 생각하게 된다"고 말했다.

시 '자서전'도 시집에 실었다. '긴 세월을 좍 펴봐라/ 그 긴 세월 밟아 보라는 벌이 주어졌다/ …발이 사라졌다'라는 3행시. 수수께끼 같은 마지막 줄에 대해 시인은 "그 험난한 삶을 다시 밟아보라고 하면 두려워서 내가 어떻게 다시 걷겠는가"라며 "내가 바라보는 내 발자국을 되밟을 수 없다는 뜻에서 '발이 사라졌다'고 한 것"이라고 풀이했다. '두려움' 못지않게 '부끄러움'도 발을 사라지게 한다는 것이다.

시인은 최근 교통사고로 허리뼈가 골절되는 바람에 한 달 동안 병원 침상에 누워 시집의 교정쇄를 검토했다. "시집 제목을 뭐로 할까 고민하다가, 자신을 낮추고 누군가의 손을 잡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간절함'을 골랐다"고 했다. '그 무엇 하나에 간절할 때는/ 등뼈에서 피리 소리가 난다'고 시작한 시 '간절함'엔 시인이 지향하는 성속(聖俗)의 융합이 들어 있다. 가톨릭 신자인 시인은 "나이가 들수록 영적인 것에의 의존이 필요하다"고 했다. 시인은 '두 손과 손 사이에/ 깊은 동굴이 열리고/ 머리 위로/ 빛의 통로가 열리며/ 신의 소리가 내려온다'고 찬미한 뒤, 지상의 사물들에게도 눈길을 던지면서 '모든 사물이 무겁게 허리를 굽히며/ 제 발등에 입을 맞춘다'고 애틋하게 전한다. 자기애(自己愛)를 암시하기도 한다. 시인은 신과 자연, 자아를 한꺼번에 섞은 뒤 무아(無我)의 경지에 이른 듯 '엎드려도 서 있어도/ 몸의 형태는 스러지고 없다// 오직 간절함 그 안으로 동이 터 오른다'고 마무리한다. 신의 빛이 내려오는 가운데 자연과 시인이 몸을 낮추자 그 안의 간절함을 뚫고서 존재의 빛이 솟아오르는 순간이다.

시인은 "우리말 중에서 '결'이란 말이 참 좋다"며 시 '결'을 썼다. '나뭇결이 되고 살결이 되고/ 물결이 되면서/ 마음결이 고운 무늬가 된다'고 흥얼거린다. '생은 다 그렇게 흐르고 흘러/ 억만 년 생명의 무늬를 그리며/ 바위 위에 새겨 흐르며 결이 되는 것'이라고 쓴 시인은 '손톱 열 개가 쑤욱 올라와 결의를 묻는 아침'이라고 예찬했다. '결'을 통해 삶의 '결의(決意)'를 다진 것. 시인은 요즘 다듬고 있는 시심(詩心)과 관련해 노년의 영성(靈性)이 지닌 창조성을 강조했다. "아주 간절하게 기도할 때는 육신이 없어지고 신의 목소리가 들린다. 완전한 간절함에 이어지면 다 사라지고 창의적 상상력이 피어난다."

[박해현 문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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