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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의 최근 경제 관련 메시지가 달라졌다. “우리 경제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9월16일)에서 “건설 투자를 확대해야 한다”(10월17일)로 옮아갔다. 발걸음도 분주하다. 최근 한달 새 국내 1~2위 재벌 그룹의 문을 모두 두드렸다. 그 자리에서 그룹 사주의 손을 맞잡고 “우리 삼성” 같은 친근함도 드러냈다.
평가는 갈린다. 보수 쪽에선 “총선을 염두에 둔 정치쇼”라 폄하하고, 진보 쪽에선 “친기업 행보가 우려스럽다”거나 “재벌 개혁이 멀어지는 것 아니냐”고 우려하며 ‘경제 패러다임 전환’을 외친 대선 때 초심을 잊지 말라 주문한다. 이런 엇갈린 평가는 우리 사회 분열상의 ‘경제 버전’처럼 보인다.
달라진 메시지를 지금 내놓는 이유는 뭘까? 진영과 정치 환경을 제거하고 숫자만 바라보며 든 첫 의문이었다. 숫자만으로는 안 되지만 숫자 없이는 경제 흐름을 파악할 수 없다. 전반적인 경기 국면을 보여주는 동행지수 순환변동치가 꺾인 지는 2년이 다 되어간다. 민간 소비·수출과 함께 경제 성장의 핵심 축인 건설·설비 투자는 모두 5분기 연속 줄고 있다(실질·원계열·동기비 기준). 그 감소 폭이 너무 크다.
현 정부 집권 초 <한겨레>와 첫 인터뷰에 응한 홍장표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의 말이 떠올랐다. “문재인 정부는 과거 정부처럼 단기 경기 관리는 하지 않습니다.” 이 말을 기사에 담으면서 어떤 불안함을 느꼈던 기억이 난다. 경기 관리를 보수의 전유물로 여기는 시각도 의아했지만, 경기 관리가 안 되는 상황에서 ‘경제 개혁’은 언감생심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생각이 여기에 이르니 의문은 저절로 풀렸다. 그간 고용과 경제 개혁에 견줘 상대적으로 주의를 덜 기울인 투자 흐름의 심각한 악화가 메시지 변화로 나타난 것 아닐까.
현재 대통령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정부가 들고 있는 경제 개입의 수단은 여럿이지만, 효과가 큰 건 두개다. 재정(예산과 조세)과 제도(또는 규제)다. 먼저 재정을 살펴보기 위해 정부의 올해 실질성장률 전망 수정 흐름을 살폈다. 재정 계획은 경제 전망을 토대로 짜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지난해 12월에 올해 성장률을 2.6~2.7%, 지난 7월엔 2.4~2.5%로 내다봤다. 성장률 2%대가 위태한 ‘실적’(10월 국제통화기금 추정)에 견주면, 약 0.5%포인트 높다. 금액으로는 오차(잠정)가 9조원(실질 국내총생산 기준)이 넘는다. 낙관적으로 경제 흐름을 예상했으며, 이를 전제로 짠 올해와 내년 예산과 세금 계획에 구멍이 크다고 볼 수 있다. 문제는 올해 예산은 지난해 말 확정됐고, 내년 예산은 대통령의 손을 떠나 국회에 가 있는 터라 애초 예상과 달리 가는 경기를 고려해 바꿀 수 없다는 점이다. 이에 재정은 대통령이 쓸 수 있는 카드는 아니다.
또 다른 무기인 제도는 어떨까. 굵직한 제도 변화는 법률 개정이 필요한 터라 국회를 거쳐야 한다. 시간도 걸리고 처리도 난망한 정치 상황이다. ‘대기업 팔 비틀기 식 투자 압박’도 효과는 작고 부작용은 커서 선뜻 집어 들기 어려운 카드다. 이전 정부들도 심각한 투자 침체를 겪고, 이를 넘어서기 위해 무리수를 두었지만 효과가 거의 없었다.
그렇다고 분위기 쇄신을 위해 경제 사령탑 교체를 검토하기도 쉽지 않다. 새 진용이 꾸려진 지 얼마 되지 않아서다.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과 이호승 경제수석을 기용한 지 3개월 남짓이고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취임한 지 1년이 채 안 됐다. 물론 보수 언론에선 경질론을 슬슬 제기할 테고, 내년 총선을 염두에 둬야 하는 여당 안에서도 선거가 가까워질수록 경제팀 책임론이 부상할 여지도 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이 책임을 따져 묻기에는 그들로선 무언가를 하기 어려운 짧은 시간이었다.
이런 점을 염두에 두면 다음주는 물론 당분간 문 대통령은 계속 기업을 찾아갈 것이며 지지층에는 불편한 발언을 이어갈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당장 쓸 수 있는 카드가 경제활동 주체의 심리에 영향을 주는 ‘메시지 정치’만 남았기 때문이다. 다만 그간의 어긋난 경제 전망의 원인을 분석하고 내년 상반기 추가경정예산 편성이나 제도 개혁 등을 포함해 달라진 경제 환경에 맞춘 촘촘한 대응 전략을 서둘러 세울 필요는 명확하다. 숙제는 미룰수록 힘이 배로 든다.
김경락 산업팀 데스크 sp9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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