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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1 (금)

[기고] 美中 무역협정 체결은 꼭 좋은 소식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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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지난주 금요일 미국과 중국이 1단계 무역협정을 타결했다는 소식은 양국 간 무역전쟁이 확대되는 것을 막았다는 의미에서 세계 경제에 희소식이었고, 그동안 계속되는 악재에 허덕이던 한국의 주식시장도 이를 반영해 오랜만에 상승 랠리를 펼쳤다.

하지만 필자는 미·중 간 1단계 무역협정의 타결, 아니 심지어 미·중 간 무역협정의 최종 타결조차 한국 경제에 장기적으로 정말 좋은 소식인가를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이는 세계무역기구(WTO) 중심의 다자주의 무역질서가 미국, 중국과 같은 강대국들이 주도하는 양자주의 무역질서에 의해 대체되기 시작하는 것을 의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양자주의적 세계무역질서의 형성이 한국 경제에 왜 나쁜 소식일 수 있는가를 이해하기 위해 우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단계 무역협정의 성과로 꼽은 내용을 살펴보자. 첫째, 중국이 해마다 400억달러에서 500억달러에 달하는 미국 농산물을 구매해주기로 약속한 것은 평년보다 거의 2배에 가까운 농산물 구매를 약속한 것이다. 이는 미국 농가에는 좋은 소식이겠지만, 그동안 대중 수출을 빠른 속도로 늘려왔던 한국 농식품의 수출 확대에는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둘째, 중국 금융시장에 미국 기업 진출 확대를 약속한 부분이다. 물론 중국 금융시장이 미국 기업에만 열릴 것은 아니지만, 미·중 양자 무역협정을 통해 열린 금융시장이 한국을 포함한 모든 국가의 기업들에 공정하게 경쟁할 기회로 이어질 것을 기대하는 것은 금융당국의 인허가가 매우 중요한 금융시장의 특성상 너무 안이한 기대다.

그렇다면 미국이 협상의 핵심적인 의제로 다뤄왔던 중국 내 지식재산권 보호와 기술 탈취의 문제는 어떠한가. 지재권 관련 협정의 이행에 대해 미국조차 이를 강제하는 것이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이 우려돼 무역전쟁의 확대를 협정 이행의 레버리지로 이용하려는 것을 보면, 이러한 레버리지를 이용할 수 없는 한국 기업의 지식재산권 보호가 적절히 이루어질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양자주의 무역협정으로 만들어진 질서는 양자 중 협상력이 더 큰 쪽에 유리한 방향으로 형성 유지될 가능성이 높고, 이러한 협정에서 제외된 한국과 같은 제3국은 오히려 무역을 통해 이익을 나누는 과정에서 더 소외될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미·중 무역협정을 시작으로 다자주의 무역질서가 붕괴되고 이 자리를 양자주의 무역질서가 대체할 수 있다는 것인데, 한국은 이와 관련해서 이미 큰 위험을 겪고 있다. WTO 체제의 모범생이었던 일본은 최근 이 체제가 약화되자, 안보 문제를 이유로 한국을 화이트리스트 국가에서 제외하는 정책을 통해 한국 경제를 압박하고 있다. 미·중 무역협정이 완료된 후, 만일 중국이 한국의 대중 무역흑자를 줄이기 위해 한·중 간 양자협의를 공격적으로 추진한다면 한국은 이에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 것인가. 미국, 유럽연합, 중국, 일본 등 거대 경제가 주 교역국인 한국에 있어서 양자주의 무역질서의 대두는 무역정책 관련 불확실성을 확대시켜 한국 기업들의 수출입 활동에 큰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기업들에는 수출입 루트의 다변화 등을 통해 무역정책의 불확실성 확대에 대응할 수 있는 준비가 필요하다. 정부도 이미 많은 국가들과 체결한 자유무역협정을 잘 유지 발전시키고, 현재 진행 중인 거대 자유무역협정의 적절한 마무리와 앞으로 있을 수 있는 무역협정에 대한 대비를 해야 하며, 다자주의 국제무역질서의 붕괴를 막기 위한 국제적인 움직임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박지형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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