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1.01 (금)

‘韓 기술 단속’에 대한 보복? … 의문 투성인 ‘반간첩법’ 한국인 첫 구속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中반간첩법 구속 한국인 딸
“간첩죄 외 다른 내용 몰라
CXMT 관련 혐의로 추측뿐
주요 정보 접근 권한 없어”

韓, 中 기술 탈취 단속하자
‘보복성 조치’ 맞대응 분석
내부 보안 강화나선 기업들
“유사 사례 더 나올 수도”


매일경제

중국 인민대회당 전경. <연합뉴스>


중국에서 반간첩법이 시행된 이후 한국인 처음으로 구속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진 가운데, 당사자인 50대 교민 A씨의 범죄 혐의를 둘러싼 의문이 여전해 구속 배경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중국 허페이시에 거주하던 A씨는 삼성전자에서 오랜 기간 근무한 뒤 2016년 중국 반도체 기업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로 이직했다. CXMT에서 3년여간 일한 뒤 다시 이직해 현지 반도체 기업 2곳을 더 다녔다. 그러다 지난해 12월 중국 공안에 간첩 혐의로 체포됐고 지난 5월 구속됐다.

중국 정부는 2014년 반간첩법을 제정한 뒤 지난해 7월 간첩 행위의 정의와 적용 범위를 넓힌 반간첩법 개정안을 시행했다. 그 뒤로 한국인이 반간첩법을 적용받아 체포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러나 A씨의 범죄 혐의에 대해선 간첩 혐의라는 점 외에는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다.

A씨의 딸 B씨는 31일 매일경제신문과 통화에서 “아버지가 1년 가까이 반간첩법 혐의로 수사를 받고 구속됐는데, 가족들은 어떤 혐의를 받고 있는지 아직까지도 들은 바가 없다”며 “어머니 참고인 조사 때 CXMT 관련 질문이 많아 그것과(CXMT) 혐의가 연관된 것 아닌지 추측만 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어 “당시 CXMT로 이직한 한국인들이 많았는데, 여태까지 파악한 바로는 반간첩법으로 중국 당국의 수사를 받고 있는 사람은 아버지가 최초이자 유일하다”고 덧붙였다.

반간첩법이 애매모호한 부분이 많다 보니 A씨의 체포 배경을 두고 여러 추측이 나오고 있다. 특히 최근 수년새 격화된 한·중 간 반도체 경쟁이 발단이 됐다는 시각이 많다. 중국의 기술 탈취에 대한 한국의 단속이 갈수록 강화되고 있어 중국이 이를 경계하기 위해 ‘보복성’ 조치를 취한 것이라는 해석까지 나온다.

B씨는 이와 관련해 “지난해 말 중국 공안이 아버지를 연행해갈 당시 한국에서는 중국의 반도체 기술 유출 사건이 떠들석했다”며 “두 사건이 연관성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설명했다.

앞서 한국 검찰은 지난 1월 삼성전자 메모리 기술을 CXMT에 유출한 혐의로 전직 삼성전자 부장 김 모씨를 구속 기소했다. 지난해 6월에도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반도체 임원을 지낸 최 모씨가 삼성전자 설계도를 훔친 혐의로 체포됐다.

중국 입장에서는 한국 당국의 이러한 움직임을 미국의 대중(對中) 반도체 제재에 동참한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고 외교 전문가들은 말한다. 심지어 일각에서는 한국을 상대로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사실상의 ‘인질 외교’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이러한 관측이 나오는 것은 A씨의 혐의에 관한 의문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CXMT가 중국 D램 반도체를 대표하는 회사인 것은 맞지만,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보다는 기술력이 뒤쳐진다. 즉, A씨가 위험을 감수하며 CXMT 내부 정보를 빼돌릴 유인이 적다는 얘기다.

A씨 측도 내부 정보를 빼돌린 적 없다고 주장한다. B씨는 이에 대해 “아버지가 CXMT로 이직할 당시 공장이 건설되는 중이어서 외국인, 특히 한국인에 대한 보안이 철저했다”며 “요직은 대부분 대만인들이 담당했고, 아버지를 비롯한 한국인들은 주요 정보를 다룰 만한 권한이 없었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반도체를 포함한 첨단산업 분야에서 한·중 간 경쟁이 고조되면서 유사한 사례가 더 생길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이재민 서울대 교수는 파이낸셜타임스(FT)에 “양국이 첨단기술 분야에서 산업 스파이 사건을 더 많이 볼 가능성이 크다”며 “반도체 등을 국가 안보의 핵심 산업으로 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A씨 측은 한국 정부의 보다 적극적인 대응을 요구하고 있다. B씨는 이와 관련해 “사건 발생 직후 주중한국대사관에 연락을 취했지만, 관할 및 담당자 파악 등의 문제로 초동 대처가 일주일가량 지연됐다”며 “보다 적극적인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하소연했다.

주중한국대사관은 A씨의 구속 사실이 언론에 알려지기 전까지 반간첩법 혐의로 구속된 한국인은 없다고 밝혀왔다. 그러다 최근 보도가 나오자 “필요한 영사 조력을 제공하고 있다”며 말을 아끼고 있다. 이번 사건이 외부에 알려지면 A씨의 재판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번 소식이 전해지자 주중 한국 기업들의 불안과 우려도 커지고 있다. 특히 첨단산업 관련 기업들은 이번 일을 반간첩법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는 계기로 삼는 데 주력하는 모습이다. 익명을 요구한 대기업 관계자는 “중국 당국에 빌미를 주지 않도록 기술 보호에 관한 직원 교육을 실시할 것”이라고 전했다.

베이징 송광섭 특파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