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현의 부자유전·그 후’ 실행위원
오카모토 유카 ‘표현의 부자유전·그 후’ 실행위원이 지난 16일 도쿄 시내의 한 찻집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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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상 전시 둘러싼 소동들
일본의 거국적 검열 보여줘
“일본 작가들 머릿속에는
경찰 한 명씩 있는 것 같다”
공감하는 이들 늘어 희망적
소녀상 보고 눈물, 말걸기도
“정말 두꺼운 벽은 아직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트리엔날레가 끝나도 일본에서 ‘표현의 부자유’가 사라진 건 아닙니다. 싸움은 갈 길이 멀어요.”
오카모토 유카(岡本有佳) ‘표현의 부자유전·그 후’ 실행위원회 실행위원은 지난 16일 도쿄 시내 한 찻집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면서 “굉장히 복잡한 기분”이라고 했다. ‘평화의 소녀상’이 전시됐던 ‘아이치 트리엔날레’가 지난 14일 75일간의 일정을 마쳤지만, 소녀상을 포함한 ‘표현의 부자유전·그 후’ 전시는 우익의 협박과 항의로 사흘 만에 중단됐다가 막바지 겨우 재개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전시기간은 단 9일. 그나마 추첨에 당첨된 인원에게만 소녀상 관람을 허용했다.
오카모토는 “배외주의, 성차별, 식민지 책임 문제를 배경으로 한 폭력적인 상황에서 소수자의 표현이 지워지고 있는 데 대한 위기감이 전시의 출발점”이라며 “소녀상은 일본의 거국적인 검열을 보여주는 대표격”이라고 했다. 그는 “전시에 공감하는 이들이 생긴 건 희망적”이라며 “소녀상을 보고 눈물을 흘리고, ‘곤니치와(안녕)’라고 말을 걸거나 손을 잡고 한참을 서 있는 이들도 있었다”고 전했다.
다만 일본 사회에서 소녀상을 ‘여성인권과 평화의 상징’으로만 받아들이는 것을 두고 “자신들의 가해 책임을 애매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2012년 아베 신조가 재집권한 후 자기검열이 퍼지고 있다. 한 해외 작가는 ‘일본 작가들 머릿속엔 경찰이 한 명씩 있는 것 같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부자유전 실행위원들은 전시가 중단된 두 달여간 도쿄와 나고야를 오가면서 차단벽 뒤에 갇힌 소녀상 등 작품들을 지켰다. 실행위는 한국 근대미술 평론의 선구자 김복진(1901~1940)을 기리는 김복진상의 올해 수상자로 선정됐다. 다음은 오카모토와 일문일답.
- 우여곡절 끝에 전시가 끝났다.
“전시가 재개된 것은 기쁘지만, 한정적으로 공개됐다. 안전대책을 이유로 추첨이나 SNS(사회관계망서비스) 투고 금지 등 서약서, 금속탐지기 검사 등 관객들에게 부담을 주는 정말 ‘부자유한 전시’가 돼 괴로웠다.”
- 이번 사태가 뭘 남겼나.
“익명의 폭력적인 언어 공격, 이른바 덴토쓰(電凸·전화 돌격) 대책은 진전됐지만, 폭력의 정체는 결국 밝혀내지 못했다. 일본 사회에서 배외주의나 역사수정주의 폭력을 없애기 위해 폭력의 정체를 분석했어야 하는데 그게 안된다. 또 가와무라 다카시 나고야 시장 등이 전시 철거를 요구한 것은 완전한 검열이고 압력이다. 위안부 문제만 해도 (일본군 관여를 인정한) 고노담화마저 무시하고 있다. 그런데도 제대로 지적하지 않으니까 우익들의 언동은 전혀 변하지 않는다.”
- 긍정적인 영향은 없나.
“무관심하던 사람들이 관심을 갖게 됐다. ‘위안부상’이라던 것을 ‘평화의 소녀상’이라고 말하게 된 건 엄청난 변화다. 그 의미도 조금씩 알려졌다. 75일간 전시했으면 엄청난 일이 됐을 거다.”
- 시민사회가 지지했다.
“나고야 시민들이 매일 (전시가 중단된 것에 대해) 항의했고, 서명에도 수만명이 참여했다. 일본 사회에선 드문 일이다.”
- 해외 작가들도 보이콧했다.
“검열로 표현의 자유가 침해당한 작가들과 연대하는 행위다. 반면 일본 작가들은 검열에 대한 인식이 옅다. 아베 정권 들어 자숙(自肅)과 손타쿠(忖度·윗사람이 원하는 대로 알아서 행동함)가 흔히 얘기될 정도로 자기검열이 퍼지고 있다.”
- 부자유전 당초 기획 의도는.
“단지 검열당한 것들을 모은 게 아니다. 일본 안에서 배외주의, 성차별, 식민지배 책임 부정이 퍼지면서 지워지고 있는 소수자의 표현을 제대로 바라보자는 것이다. 왜 위안부 작품들이 많냐고 하는데, 가장 많이 지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진행형인 국가검열을 전시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일본 아이치 트리엔날레에서 중단됐던 ‘표현의 부자유전·그 후’ 전시가 재개를 시작한 지난 8일 작가들이 ‘평화의 소녀상’ 옆에서 ‘미투 운동’을 상징하는 팻말을 들고 정지 동작을 취하는 ‘마네킹 플래시몹’을 선보이고 있다. 전시 재개 이후 ‘평화의 소녀상’ 사진이 언론에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오카모토 유카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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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인권·평화 상징으로만
소녀상 받아들이려는 일본
가해 책임 애매하게 하려 해
전시 의뢰 있어…책도 낼 것
한·일서 크라우드 펀딩 계획
- 소녀상에 대한 관객 반응은.
“절반 넘은 관객들이 소녀상 옆에 앉았다. 소녀상이 맨발이라고 양말까지 벗은 여성도 있었다. ‘만나서 다행’이라고 말을 걸거나 눈물을 흘리는 이들도 있었다. 실제 보니까 전혀 다른데, 왜 보여주지 않으려는지 모르겠다는 사람도 있었다. 30대 남성은 ‘일본인에다 남성인데 소녀상 옆에 앉아도 괜찮냐’고 물었다. (소녀상을 제작한) 김서경 작가가 ‘소녀상에는 여성인권 회복과 전쟁·성폭력이 없는 사회에 대한 염원이 담겨 있고, 이를 위해선 남성의 힘도 필요하다’고 했다.”
- 소녀상이 받아들여지고 있나.
“트리엔날레 검증위가 배포한 자료에 소녀상과 ‘베트남 피에타상’을 비교하면서 소녀상은 여성의 인권 회복, 피에타상은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희생자를 위해 만들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가해의 역사는 마주하지 않고, ‘한국인들은 베트남 민간 학살까지 했으니 안심하세요’라는 식이다. 가해 책임을 배제하고 싶으니까 소녀상을 평화의 상징으로 위치지우려는 거다. 애매하게 만들어 중요한 것을 말하지 않는다. 전부 일본스럽다. 소녀상이 성노예 피해자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는 원점이 지워져선 안된다.”
- 표현의 자유 논쟁이 일었다.
“본질로 들어가면 위안부 문제와 천황제가 있다. 일본에서 최고의 ‘터부(금기)’로 뛰어넘을 수 없는 문제라는 게 부각됐다. 천황제는 내면화돼 있어 더 어렵다.”
- 정부가 보조금을 철회했다.
“검열 그 자체다. 사전 심사를 통과했는데, 트리엔날레만 구체 보고를 안 했다고 (철회하는) 이유는 이상하다. 한 심사위원은 사임했다. 의사록이 없는 것도 이상하다.”
- 향후 계획은.
“전시에 공감한 사람이 생긴 건 희망적이다. 몇 군데에선 전시 의뢰도 들어왔다. 책도 낼 예정이다. 싸움을 이어가기 위해 일본과 한국에서 크라우드펀딩을 할 생각이다.”
◆일본 민낯 드러냈던 아이치 트리엔날레
우익 협박 굴복 ‘나쁜 선례’정부는 보조금 철회로 검열
지난 14일 폐막한 일본 최대 국제예술제 ‘아이치 트리엔날레’는 일본 사회의 ‘민낯’을 되레 보여줬다.
우익 협박에 굴복해 ‘평화의 소녀상’ 전시를 사흘 만에 중단하는 ‘나쁜 선례’를 남겼다. 일본 정부는 보조금을 철회해 입맛에 맞지 않는 예술은 배제한다는 뜻을 노골화했다.
17일 일본 언론에 따르면 올해 4회째를 맞은 아이치 트리엔날레의 전체 관람객 수는 67만546명으로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관람객 수만 보면 성황리에 끝난 셈이다.
하지만 지난 75일간 적지 않은 진통을 겪었다. 지난 8월1일 개막 때 화제는 단연 ‘표현의 부자유전·그 후’ 전시에 쏠렸다. 소녀상과 일왕, 미군 문제 등 일본 사회의 금기를 건드렸다는 이유로 전시를 중단·거부당한 작품들이 공공미술관에서 선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치권과 우익들의 공격이 시작됐다. 아베 신조 정부는 보조금 교부를 문제삼았고, 가와무라 다카시 나고야 시장은 “일본 국민의 마음을 짓밟는다”고 전시 중지를 요구했다. 우익들은 조직적으로 전화 항의를 하고, “휘발유 통을 들고 전시장에 가겠다”고 협박했다. 트리엔날레 측은 결국 사흘 만에 전시 중단을 발표했다.
시민·예술계의 전시 재개 요구, 트리엔날레 참가 작가 13개 팀의 보이콧, 실행위원회 측의 가처분 신청이 잇따른 끝에 폐막 일주일 전인 지난 8일에야 전시가 재개됐다. 그나마 추첨에 당첨된 인원만 입장을 허용하는 반쪽짜리였다. 엿새 동안의 재개 기간에 1만3298명이 추첨에 참여해 1133명이 관람했다.
일련의 사태는 여러 문제를 남겼다. 일본 정부는 표현의 자유를 침해했으며, 협박하고 소란을 피우면 우익들 뜻대로 된다는 나쁜 사례를 만들었다. 일본 정부가 트리엔날레에 대한 보조금 지급을 철회하면서 일본 예술계에 정부 의도를 미리 헤아리는 ‘자기검열’ 분위기가 확산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일왕이나 역사에 관련한 일본 사회의 금기를 오히려 강화했을 수 있다”고 마이니치신문은 지적했다.
우익 협박 굴복 ‘나쁜 선례’정부는 보조금 철회로 검열
지난 14일 폐막한 일본 최대 국제예술제 ‘아이치 트리엔날레’는 일본 사회의 ‘민낯’을 되레 보여줬다.
우익 협박에 굴복해 ‘평화의 소녀상’ 전시를 사흘 만에 중단하는 ‘나쁜 선례’를 남겼다. 일본 정부는 보조금을 철회해 입맛에 맞지 않는 예술은 배제한다는 뜻을 노골화했다.
17일 일본 언론에 따르면 올해 4회째를 맞은 아이치 트리엔날레의 전체 관람객 수는 67만546명으로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관람객 수만 보면 성황리에 끝난 셈이다.
하지만 지난 75일간 적지 않은 진통을 겪었다. 지난 8월1일 개막 때 화제는 단연 ‘표현의 부자유전·그 후’ 전시에 쏠렸다. 소녀상과 일왕, 미군 문제 등 일본 사회의 금기를 건드렸다는 이유로 전시를 중단·거부당한 작품들이 공공미술관에서 선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치권과 우익들의 공격이 시작됐다. 아베 신조 정부는 보조금 교부를 문제삼았고, 가와무라 다카시 나고야 시장은 “일본 국민의 마음을 짓밟는다”고 전시 중지를 요구했다. 우익들은 조직적으로 전화 항의를 하고, “휘발유 통을 들고 전시장에 가겠다”고 협박했다. 트리엔날레 측은 결국 사흘 만에 전시 중단을 발표했다.
시민·예술계의 전시 재개 요구, 트리엔날레 참가 작가 13개 팀의 보이콧, 실행위원회 측의 가처분 신청이 잇따른 끝에 폐막 일주일 전인 지난 8일에야 전시가 재개됐다. 그나마 추첨에 당첨된 인원만 입장을 허용하는 반쪽짜리였다. 엿새 동안의 재개 기간에 1만3298명이 추첨에 참여해 1133명이 관람했다.
일련의 사태는 여러 문제를 남겼다. 일본 정부는 표현의 자유를 침해했으며, 협박하고 소란을 피우면 우익들 뜻대로 된다는 나쁜 사례를 만들었다. 일본 정부가 트리엔날레에 대한 보조금 지급을 철회하면서 일본 예술계에 정부 의도를 미리 헤아리는 ‘자기검열’ 분위기가 확산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일왕이나 역사에 관련한 일본 사회의 금기를 오히려 강화했을 수 있다”고 마이니치신문은 지적했다.
도쿄 | 김진우 특파원 jw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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