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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1 (금)

[설왕설래] 평양 남북 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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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축구는 일제강점기부터 서울과 평양을 잇는 가교 역할을 했다. 1929년 경성중학이 주축이 된 경성팀과 숭실학교가 주축이 된 평양팀이 서울 휘문고보 운동장에서 첫 대회를 연 뒤 서울과 평양을 오가며 경기를 했다. 관중 수만명이 축구장으로 몰려들고, 경성과 평양을 오가는 기차는 응원 인파로 만석을 이뤘다고 한다. 경기가 과열돼 편싸움이 벌어질 정도였다. 대회가 중단된 1946년까지 경평전 전적은 10승7무6패로 평양이 다소 앞섰다.

1990년 10월11일 평양 능라도 5·1경기장에서 분단 이후 처음으로 ‘남북통일 축구경기’가 열렸다. 당시 15만명 규모의 능라도경기장을 가득 메운 북한 관중은 나무토막으로 만든 ‘딱딱이’라는 응원도구를 양손으로 치며 열렬히 응원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 ‘고향의 봄’ 노래도 목이 터져라 불렀다. 경기는 북한팀이 2대1로 이겼지만 승패는 중요하지 않았다. 12일 후 서울 잠실 올림픽주경기장에서 열린 2차전에서는 남한팀이 1대0으로 이겼다.

2022년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 예선 한국과 북한의 경기가 오늘 평양 김일성경기장에서 열린다. 평양에서 월드컵 예선 남북 대결이 펼쳐지는 건 처음이다. 2008년 3월26일 평양에서 열릴 예정이던 2010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아시아지역 예선 한국과 북한의 경기 장소는 막판에 중국 상하이로 변경됐다. 김일성경기장에 태극기가 펄럭이는 가운데 북한팀이 지는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북한은 2005년부터 이 경기장에서 열린 국가대표 축구경기에서 한 번도 진 적이 없다. 그만큼 일방적이고 광적인 응원전은 악명이 높다.

북한의 몽니가 지나치다. 한국대표팀은 서해 직항로가 아니라 중국 베이징을 경유해 방북했다. 응원단은커녕 취재진도 한 명 없이 뛴다. 북한은 선수단을 제외한 우리 측 인원의 방북을 아무런 설명 없이 불허했다. TV 생중계도 무산돼 남북직통전화로 경기상황을 공유해야 한다니 어이가 없다. 2011년 평양에서 열린 일본과의 월드컵 예선전을 생중계했던 북한이 우리에겐 이토록 무례하고 냉담하다. 김일성경기장에서 한국팀에 패하는 게 두려워 그러는 것은 아닐까.

채희창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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