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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8 (월)

다국적 제약사 ‘찍퇴’ 되풀이…노동자들 “사실상 해고” 울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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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계 ‘머크’ 일반의약 사업부 철수

직원 35명에 “희망퇴직” 일방 통보

화이자는 8~9년새 7차례나 실시

국내경영진은 노동자 보호 소극적

노무사 “전환배치·고용승계 등 정리해고 준하는 회피노력 필요”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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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계 제약회사 ‘머크’의 한국지부 일반의약품(GM) 사업부 영업 분야 직원들은 지난달 23일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다. 회사가 일반의약품 사업부 판권을 다른 국내 회사에 넘기고, 사업을 철수하겠다는 통보였다. 회사는 동시에 사업부 직원 35명의 희망퇴직 절차를 시작한다고 했다. 이 회사는 지난 1일 ‘외투기업인의 날’ 행사에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표창을 받기도 했는데, 노동자들은 역설적으로 하루아침에 삶의 갈림길에 내몰린 것이다. 한국민주제약노동조합 머크지부 관계자는 9일 “회사는 일반 회의를 하자며 직원들을 따로 불러 사업 철수와 희망퇴직 계획을 통보했다. 사전 예고도 없었고 전환배치나 고용승계 같은 사후 대책도 내놓지 않았다”며 “이는 사업을 정리하며 그 분야 직원도 함께 정리해버리겠다는 명백한 ‘찍퇴’”라고 비판했다.

노조의 주장에 한국머크 사쪽 관계자는 “일반의약품 사업부 정리는 본사의 글로벌 전략에 따라 이미 결정이 난 사안이고, 선진국 시장의 흐름에 발맞춘 것”이라며 “해당 분야 직원들에게 일방적으로 희망퇴직을 압박한 게 아니라 희망퇴직, 전환배치, 고용승계 등 여러 선택지를 두고 의논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다국적 제약회사에서 일방적으로 직원들에게 ‘찍어내기식 희망퇴직’(찍퇴)을 종용하는 일이 반복적으로 일어나 노동자들이 고용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특히 한 다국적 제약회사에서는 1년에 한번꼴로 찍퇴가 이뤄지기도 했다.

미국계 제약회사인 한국화이자제약에서는 2015년 일반의약품 담당 부서를 대상으로 희망퇴직 작업이 이뤄졌는데, 부서 인원의 절반가량이 등 떠밀려 희망퇴직을 했다. 한국화이자제약 노조 조합원 ㄱ씨는 “한국화이자제약에서만 지난 8~9년 사이 7차례가량의 희망퇴직이 있었지만 국내 경영진은 법적인 문제만 따질 뿐 노동자의 고용 불안은 신경 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영국과 스웨덴계 제약회사인 한국아스트라제네카에서도 2016년 7월 본사의 예산감축 지침으로 희망퇴직 절차가 진행됐다. 사쪽은 고연차 직원을 대상으로 면담을 진행하며 퇴직을 권유했다. 당시 희망퇴직을 권유받은 이들 가운데 9명은 조직 개편 과정에서 보직을 받지 못했다.

다국적 제약회사에서 특히 찍퇴 논란이 되풀이되는 것은, 국내 경영진이 본사의 구조조정 방침으로부터 노동자들을 보호하는 데 소극적이어서다. 장환 제약노조 노무사는 “다국적 제약회사는 특성상 인수합병이나 제품 매각에 따른 구조조정이 잦은 편”이라며 “이런 구조조정 때 사용자가 나서서 노동자를 보호해야 하는데, 본사에 고용된 처지인 한국지부 경영진은 보호 의무를 다하지 않고 보상금을 준 뒤 손쉽게 내보내는 방식을 택한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이런 식으로 찍퇴를 당하면, 형식적으로는 자기 의사에 따른 희망퇴직이 되기 때문에 부당해고로 인정받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최정규 변호사는 “비슷한 사례가 부당해고로 인정받은 판례가 있긴 하지만 이를 입증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박성우 민주노총 법률원 노무사는 “현실적으로 다국적 제약회사를 비롯한 기업에서 벌어지는 찍퇴를 막을 제도는 없다”며 “다만 정리해고 때 임원의 임금 동결이나 불필요한 자산 매각 등으로 해고를 최소화하듯, 찍퇴를 막기 위해서도 정리해고에 준하는 회피 노력을 해야 하고 희망퇴직의 합리적 기준도 마련하는 등 상생을 위한 경영진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민제 기자 summ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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