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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6 (일)

부당행위 ‘진상규명’ 대신 흥정 붙이듯 ‘화해’ 강권하는 노동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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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25% 안팎으로 ‘취하’ 이어 다수

매뉴얼로 권장…기관평가 배점 높아

“행정편의주의적 운영” 비판 나와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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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신청인은 신청인의 행위가 성희롱이고 반성도 안 해 해고감이라고 주장하고, 신청인은 해고감이 아니라고 한다. 법으로 갈 데까지 가보는 방식도 있지만, 서로 마음의 상처를 덜 받게 해야 되지 않겠나.”

“심문에 앞서 화해 의사를 묻겠다. 잘못을 인정하는 것과는 별개로, 금전적으로 화해할 의사가 있나? 어느 정도 선이면 화해하겠나?”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이용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7일 공개한, 지난해 한 지방노동위원회의 부당해고 구제신청 사건 심문회의에서 위원들이 한 얘기 가운데 일부다. 심문회의는 위원들이 당사자의 이야기를 직접 듣는 첫 창구인데, 이 자리에서 위원들은 사실관계를 따지는 질문을 하는 대신 흥정을 붙이듯 화해부터 유도했다.

노동위원회는 부당해고, 부당노동행위 등의 노동 사건을 법에 근거에 판정하는 준사법기관이자 행정심판기구지만, 복잡하고 까다로운 판정 대신 당사자의 화해를 이끌어내 사건을 끝낼 권한도 갖고 있다. 하지만 화해를 강권하는 경우가 지나치게 많아, ‘당사자의 자율성 보장, 노동위원회의 중립성 유지’ 원칙에 근거한 화해 제도가 행정편의주의적이고 편파적으로 운영된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용득 의원이 중앙노동위원회에서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지난해 중앙노동위원회와 지방노동위원회가 처리한 사건(1만4079건) 중 4건 가운데 1건꼴(25.6%, 3607건)이 화해로 종결됐다. 이는 취하(4068건, 28.9%) 다음으로 많은 비중이다. 다른 해에도 이런 경향은 마찬가지여서, 해마다 화해는 25% 안팎을 차지했다.

노동위원회가 화해를 중시하는 분위기는 지난해 12월 발간한 ‘조사관용 화해업무 매뉴얼’에서도 확인된다. 매뉴얼에선 한 강사 부당해고 사건의 화해 조정을 우수 사례로 들었는데, 그 ‘성공 요인’으로 “근로자 측의 패소 가능성과 패소 시 명예 실추, 다른 학교에서 강의하는 데 나쁜 평판으로 작용될 수 있음을 설명”했고, “대법원까지 진행되는 동안 생계 곤란 등을 부각하고, 승소하더라도 현실적으로 강의 배정이 불가능함을 안내”했다고 적었다. 부당해고를 당했으니 억울함을 구제해달라는 노동자에게 ‘현실적인 어려움’을 들어 화해를 압박한 것을 우수 사례로 칭찬한 것이다.

노동위원회가 화해에 매달리는 한 원인으로는 기관평가가 꼽힌다. 지난해 지방노동위원회 기관평가 기준을 보면, 전체 배점 83점 가운데 ‘화해 및 취하율’ 항목이 14점으로, ‘조정 성립률’(22점) 다음으로 높았다. 이용득 의원은 “잘못된 기관평가 기준 탓에 화해 제도가 취지에 맞지 않게 운영되고 있다”고 짚었다.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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