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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7 (월)

“동이야, 넌 게으른 사람이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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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탄샘의 10대들♡마음 읽기】

“선생님, 사람은 왜 사는 걸까요?”

열여덟 살 동이(가명)가 상담을 시작한 뒤 처음으로 한 질문이다. 무척 반가웠다. 항상 위축되고 무기력한 모습으로 상담실에 와서 수동적으로 임했던 아이가 먼저 말문을 연 것이다.

“음, 사람마다 다 이유가 있겠지. 그러는 동이는 왜 사는데?”

한참을 생각한 뒤 동이는 말했다.

“행복하려고 사는데, 어떻게 행복해질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동이가 생각하는 행복은 어떤 거야?”

“글쎄요….”

“그럼, 동이는 어떨 때 행복한 기분이 드는데?”

“운동장 풀밭에 누워서 하늘을 올려다볼 때…. 그리고 음식을 만들 때랑 내가 만든 음식을 다른 사람이 맛있게 먹을 때.”

동이는 어려서부터 잔병치레가 많은 허약한 체질이어서 다른 남학생들처럼 운동장에서 뛰어놀 수도 없었고, 학업도 많이 뒤처져 대학 진학도 쉽지 않은 상태였다. 진로상담을 위해 나를 만나게 된 동이는, 유일하게 좋아하는 것이 음식 만드는 일이라고 했다.

“동이가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일을 하게 되면 행복하게 사는 거 아닐까?”

“요리사가 되고 싶다고 엄마한테 말씀드렸는데, 엄마는 제가 게을러서 아무것도 못 할 거래요. 또 흐지부지 그만둘 거라고 요리학원 다니는 걸 허락해 주지 않으세요.”

“너는 어떻게 생각해? 네가 게을러서 학원 다니다 그만둘 것 같니?”

“그럴 것 같진 않은데, 제가 게으른 건 사실이에요. 아침에 못 일어나서 맨날 지각하고….”

사실 동이는 아침 일찍 출근해서 늦게 퇴근하시는 어머니의 도움 없이 스스로 일상생활을 챙겨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동이는 자신이 ‘게으른 사람’이라며 항상 부정적으로 이야기했다. 어머니가 늘 대학에 다니는 형과 자신을 비교해 왔기 때문에 스스로도 형보다 못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선생님에겐 동이가 게으른 사람이 아니라는 증거가 있는데?”

“뭔데요?”

“지난번에 동이가 형은 집안일을 하나도 안 하는데, 너는 바쁜 엄마를 위해 청소며 빨래며 가사노동을 거의 도맡아 하고 있다고 이야기해줬잖아. 게으른 사람이 그렇게 할 수 있을까? 네 또래 친구들 중에서 집안일을 너처럼 잘하는 아이는 아마 없을걸?”

동이도 동의한다는 듯이 엷게 웃었다. “엄마도 그 점에 대해선 칭찬해 주세요.” 동이는 어머니가 무심코 뱉은 부정적 평가에 상처받고, ‘나는 ∼한 사람’이라고 스스로 낙인찍고 있었다.

단점만 가진 사람은 없다. 누구나 장점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단점만 부각해 스스로 부정적인 자아상을 갖게 된다면 불행할 수밖에 없다. 동이는 자신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꿔 긍정적으로 이해하는 작업을 한 뒤, 자신감이 생기고 기분이 좋아졌다고 말했다. 엄마에게도 좀 더 자신 있게 본인의 진로에 관해 설명하고 설득하겠노라고 했다.

그날 “왜 사는가”“행복이란 무엇인가”라는 아이의 철학적 질문으로 시작한 상담은 자신에 대한 이해로 마무리를 했다. 덕분에 동이와 부쩍 가까워졌다.

#사례는 내담자 보호를 위해 재구성했습니다.

이정희 청소년상담사·전문상담사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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