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1.25 (월)

이슈 불법촬영 등 젠더 폭력

[단독]'상습 몰카존' 된 서울시 안심화장실…"점검표, 범행 힌트돼"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같은 화장실·같은 수법’...두 달 전 범죄와 같아
‘안심 화장실’ 인증, 오히려 ‘몰카찍기 좋은 날’ 힌트돼
"현실적인 대안 시급...화장실 앞 CCTV 설치해야"

서울시가 몰카 범죄를 예방한다는 취지로 공공화장실을 대상으로 도입한 ‘안심 화장실’에서 불법 촬영 범죄가 발생했다. 안심 화장실에서 몰래카메라를 찍고 도망가는 범죄가 이어지면서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28일 서울 서대문경찰서에 따르면, A(29)씨는 지난 17일 오후 10시 20분쯤 지하철 2호선 신촌역 인근 한 주상복합 상가 1층 ‘안심 화장실’에 들어갔다. A씨는 뚜껑이 닫혀있던 변기의 물을 내리고, 변기를 휴지로 한 번 닦았다. 그때 머리 위에서 인기척을 느꼈다. 순간적으로 위를 쳐다봤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A씨는 변기에 앉으면서도 경계를 늦추지 않고 천장을 계속 응시했다고 한다.

조선일보

일러스트=정다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몇 초 뒤 ‘셀카 모드’로 설정된 휴대전화 카메라가 머리 위로 슬며시 올라왔다. 당황한 A씨가 "지금 뭐하는 거냐"고 소리치자, 피의자는 화장실 밖으로 달아났다. A씨는 경찰에 신고한 뒤 건물 폐쇄회로(CC)TV를 확인하고자 했지만, 경찰은 "화장실 쪽을 비추는 CCTV가 없어 드나든 사람들 모습을 확인할 수 없다"고 했다.

이 안심 화장실은 서울시에서 매달 2회 이상 불법 촬영 장비 설치 여부를 점검한다. 범죄가 일어나기 사흘 전인 지난 14일에도 '보안관이 나와 점검을 했다'는 표시가 있었다. 서울시는 지난 2016년 8월 여성 안심 보안관들을 임명해 공공·민간개방 화장실 등 다중이용시설에 몰래카메라 설치 여부 등을 집중 점검해 왔다.

일각에서는 안심 화장실 인증이 취지와 달리, 불법 촬영 범죄에 더 많이 노출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몰카범이 안심 화장실 인증표에 적힌 점검 날짜를 보고 최근 날짜가 적혀 있으면 보안관이 당분간은 오지 않을 것으로 보고 불법 촬영을 하는 경우도 있다"며 "사용자인 여성이 아닌 관리자의 입장에서 만든 전형적인 ‘탁상행정’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안심 화장실의 허술한 시설과 관리도 문제다. 범죄가 발생한 화장실 입구에는 ‘CCTV 녹화 중’이라는 팻말이 붙어 있지만, 정작 화장실 근처에는 CCTV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피해가 발생한 1층에는 CCTV가 총 3대 있었으나 후미진 화장실 쪽을 비추는 건 없었다.

피해자 A씨는 "순식간에 찍힌 내 얼굴과 몸 영상이 인터넷에 유통되고 있을 수 있다는 생각에 소름이 돋는다"며 "‘안심 화장실’ 인증을 할 게 아니라, 차라리 ‘몰카 위험 화장실’이라는 걸 알리고 CCTV를 제대로 설치해야 범죄 재발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선일보

지난 17일 불법 촬영 범죄가 또 발생한 서대문구 신촌의 한 주상복합 건물 내 여자 화장실 앞에는 ‘CCTV 녹화 중’이라는 팻말이 붙어있었으나, 정작 근처에 CCTV는 전무했다(왼쪽). 화장실 내부에 붙어있는 ‘안심 화장실’ 점검표엔 범죄 발생 3일 전 보안관이 불법 촬영 장비 점검을 했다는 표시(빨간 원)가 있었다(오른쪽). /최지희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 안심 화장실에서는 두 달 전에도 동일한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 6월 15일 이 화장실 변기에 앉아 있던 B(19)양은 바닥에 비친 검은 그림자를 보고 위에서 자신을 찍고 있는 휴대전화 카메라를 발견했다. 당시 경찰은 "최근 발생하는 몰카 범죄는 남성이 몰래 여성 화장실에 들어가 휴대전화를 직접 들고 찍은 뒤 도주하는 기법이 대부분"이라며 "화장실 근처에 CCTV가 없으면 용의자를 특정하기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라고 했다.

서울 관내 한 경찰서 여성청소년과장은 "휴대전화를 들고 불법으로 찍은 뒤 도망가는 경우엔 피해자가 위를 보고 적발하지 않는 이상 피해를 입은 사실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며 "전국적으로 얼마나 많은 ‘몰카범’이 이런 수법으로 범죄를 행하고 있는지조차 가늠하기 어려운 실정"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직접 들고 찍는 몰카’가 활개를 치는 만큼 실질적인 조치가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부 교수는 "피의자가 범죄를 저지를 때는 쉽게 범행을 할 수 있고, 잡히지 않을 수 있는 곳을 찾으려 하는 경향이 있다"며 "안심 화장실 인증 시점을 오히려 가리거나, 화장실 쪽에 CCTV를 설치하고 경비원을 배치하는 것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최지희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