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수출규제가 관세인상과 같은 가격규제보다 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한국은행의 진단이 나왔다. 향후 상황이 악화될 경우 반도체, 디스플레이, 기계 등 핵심 소재의 일본 의존도가 높은 업종에서 생산, 수출의 부정적인 영향이 현실화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은은 22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 제출한 현안보고 자료에서 일본의 수출규제가 우리나라 수출에 미치는 영향이 단기적으로는 제한적이겠지만, 장기화된다면 부정적인 영향이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삼성전자 직원이 반도체 생산 라인에서 제품을 점검하고 있다. /조선D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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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수출규제의 여파가 클 것으로 예상되는 업종은 반도체, 디스플레이, 기계 등이다. 이 업종들은 핵심 소재, 부품의 일본 의존도가 높아 소재, 부품 조달에 문제가 생기면 생산, 수출에 차질이 생기게 될 가능성이 크다. 구체적으로는 반도체 소재, 특수목적용 기계, 정밀화학제품 등의 품목에서 영향이 클 걸로 보인다. 디스플레이 제조용 기계는 대(對)일 수입비중이 82.8%, 산업용 로봇은 58.6%, 반도체 웨이퍼는 34.6%에 이른다.
실제로 지난달 일본이 한국으로 수출하는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소재 3개 품목에 대해 개별허가 의무화를 실시한 이후 일부 품목의 수입감소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일본으로부터 수입한 에칭가스 물량은 6월 3000톤에서 7월 500톤으로 급감했다. 수입금액 기준으로도 같은 기간 530만달러에서 100만달러로 줄었다.
한은은 "앞으로 상황이 악화돼 소재, 부품 소재에 애로가 발생할 경우 관세인상과 같은 가격규제보다도 더 큰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일본의 수출규제가 장기화될 경우 악영향은 일부 업종에 그치지 않을 가능성도 크다. 미래신산업인 비메모리 반도체, 친환경 자동차 등의 발전도 지연될 우려가 있으며, 수입규제 대상 여부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져 기업의 경영계획 수립에도 어려움이 발생할 수 있다.
일본의 수출규제가 설비투자를 악화시킬 가능성도 예상됐다. 반도체, 디스플레이 제조용 장비와 공장기계 수입제한이 현실화다면 기업이 관련 투자를 감소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소재, 부품을 국산화하기 위한 노력은 설비투자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여지가 있다.
한은은 일본의 수출규제 외에 미·중 무역분쟁,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이란을 둘러싼 군사적 긴장 고조, 홍콩 시위, 이탈리아 연정 붕괴 가능성 등 지정학적 리스크 등을 우리경제의 대외여건을 악화시키는 요소로 언급했다.
또 한은은 올해 연말까지 우리나라의 반도체 수출이 감소세를 나타낼 것으로 전망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전방산업 수요 부진, IT기업의 메모리 구매 지연, 미·중 무역분쟁 등으로 글로벌 반도체 경기가 악화됐는데 당분간 개선될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본 것이다. 올해 상반기 D램 매출액은 1년 전에 비해 31% 줄고, 평균단가는 30% 내외로 하락했다.
조은임 기자(goodnim@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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