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탄핵 정국에서 경영 환경의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노동계의 목소리가 커지는 상황에서 경영계와 노동계의 오랜 갈등인 통상임금과 관련한 이슈가 재점화됐다.
대법원의 법리 변경에 따라 6조8000억원 규모의 추가 인건비가 발생해 경영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고 대·중·소기업 간 임금 격차도 더욱 확대될 것이라고 우려를 표명해 온 경영계의 고심이 더욱 깊어질 전망이다.
대법원 [사진=뉴스핌 DB]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 대법원 전원합의체 "조건부 정기상여금도 통상임금에 포함"...2013년 전합 판결 변경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이날 한화생명보험 근로자·퇴직자가 한화생보를 상대로 낸 임금 청구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로 판단한 원심 판결을 확정하고, 현대자동차 근로자들이 현대차를 상대로 낸 임금 청구 소송에서는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 판결을 파기 환송했다.
통상임금을 판단하는 데 있어 개념적 징표로 사용된 '고정성' 개념을 폐기하고, 소정 근로 대가성을 중심으로 통상임금 개념을 재정립했다. 고정성 개념이 법령상 근거가 없으며, 통상임금의 범위를 부당하게 축소한다는 이유에서다.
재판부는 "법령상 근거 없이 임금의 지급 여부나 지급액의 사전 확정을 의미하는 고정성을 통상임금의 개념적 징표로 요구하는 것은 통상임금의 범위를 부당하게 축소한다"며 "당사자가 재직 조건 등과 같은 지급 조건을 부가해 쉽게 그 임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할 수 있게 허용함으로써 통상임금의 강행성이 잠탈된다"고 판시했다.
그러면서 "통상임금은 소정 근로의 가치를 평가한 개념이므로 실근로와 무관하게 소정 근로 그 자체의 가치를 온전하게 반영해야 한다"며 "통상임금이 전제하는 근로자는 소정 근로를 온전하게 제공하는 근로자"라고 부연했다.
재판부는 통상임금이 법정 수당 산정을 위한 도구 개념이므로, 연장 근로 등을 제공하기 전에 산정될 수 있어야 한다고 봤다. 즉 소정 근로를 온전히 제공할 경우 충족되는 근무 일수를 정한 근무 일수 조건부 임금은 통상임금이고, 소정 근로 일수를 초과하는 근무 일수 조건부 임금은 통상임금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에 재판부는 기준 급여의 850%를 연간 일정한 주기로 분할해 지급한 한화생보의 상여금, 통상임금의 750%를 연간 일정한 주기로 분할해 지급하는 현대차의 상여금 모두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포스코 노동조합은 회사를 상대로 하는 통상임금 소송에 6670명이 참여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기사와 무관함. [사진=포스코 노조]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 경영계 "심히 유감...정치적 혼란에 더해 예기치 못한 재무적 부담까지 떠안게 돼"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 대해 경영계는 심각한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한국경영자총협회(회장 손경식)는 판결 이후 공식 입장문을 통해 "2013년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재직자, 최소 근무 일수 조건이 있으면 정기 상여금도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판결을 전면적으로 뒤집고 통상임금 범위를 대폭 확대시킨 것으로서 경영계로서는 심히 유감스럽다"고 말했다.
경총은 "최근의 정치적 혼란과 더불어 내수 부진과 수출 증가세 감소 등으로 기업들의 경영 환경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이번 판결로 예기치 못한 재무적 부담까지 떠안게 돼 기업들의 경영 환경은 더욱 악화될 것"이라고 예고했다.
경총은 "정기 상여금을 모두 통상임금에 포함시킬 경우에는 향후에도 지속적으로 인건비 부담이 늘어날 수밖에 없으므로, 우선 노사 간 합의를 통해 정기 상여금을 기본급에 포함시킬 부분과 성과를 반영한 성과급으로 재편성해서 현재의 복잡한 임금 체계를 단순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 사건을 계기로 우리 노동시장의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되어 온 연공형 임금 체계를 직무성과 중심의 공정하고 합리적인 임금 체계로 바꾸기 위해 노사가 함께 노력해 주길 당부드린다"고 촉구했다.
또한 "법원 역시 향후 노사 간 이해가 첨예하게 엇갈리는 임금 관련 소송에서 새로운 갈등과 혼란을 유발시켜서는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사진=뉴스핌 DB]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경총은 판결 전인 지난달 10일 '재직자 조건부 정기 상여금의 통상임금 산입 시 경제적 비용과 파급 효과'를 보고서를 통해 "법리를 변경한다면 기업 경영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는 비용이 발생할 뿐만 아니라 대·중·소기업 간 임금 격차도 더욱 확대될 것"이라고 우려한 바 있다.
대법원은 지난 2013년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특정 시점에 재직 중인 근로자에게만 임금을 지급하는 조건'의 효력을 인정하고, 그와 같은 조건이 부가된 임금은 고정성을 결여하였으므로 성질상 통상임금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이후 대법의 통상임금 판단과 다른 하급심 판결이 계속됐다. 서울고법은 지난 2018년 12월 선고된 세아베스틸 통상임금 사건 2심에서 처음으로 대법의 '재직 조건' 해석에 반하는 판결을 내렸다.
또한 지난 2022년 5월 서울고법은 금융감독원 전·현직 직원 1832명이 금감원을 상대로 제기한 임금 청구 소송에서 원심을 뒤집고 근로자 측 손을 들어줬다. '지급일에 재직하는 근로자에게만 지급한다'는 조건이 달린 정기 상여금도 통상임금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취지다.
경영계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법리의 변동으로 기업들이 대거 줄 소송에 휘말리는 등 통상임금 갈등이 재점화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경총 보고서에 따르면 경총 회원사 설문 조사와 고용노동부 '고용 형태별 근로 실태 조사' 2023년 자료를 분석한 결과, 재직자 조건이 부가된 정기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산입하도록 법리를 변경할 경우, 연간 약 6조7889억원의 추가 인건비가 발생할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부담은 법리 변경으로 영향을 받는 기업(전체 기업의 26.7%로 추정)의 1년 치 당기순이익의 14.7% 규모다.
또한 경총은 정기 상여금의 비중이 높고 초과 근로가 많은 대기업 근로자에게 임금 증가 혜택이 집중됨으로써 대·중·소기업 간 임금 격차는 더욱 확대될 것으로 분석했다.
보고서에 의하면 29인 이하 사업장 전체 근로자와 30~299인 사업장 근로자 중 임금 증가 혜택을 받게 되는 근로자 사이 월 임금 총액 격차는 기존 월 107만1000원에서 120만2000원으로 13만1000원 확대된다.
또한 29인 이하 사업장 전체 근로자와 300인 이상 사업장 근로자 중 임금 증가 혜택을 받게 되는 근로자와의 월 임금 총액 격차는 기존 월 321만9000원에서 351만7000원으로 29만8000원 확대되는 것으로 나타나는 등 대·중·소기업 간 임금 격차는 더욱 확대될 수밖에 없는 것으로 분석됐다.
재직자 조건부 정기 상여금의 통상임금 산입으로 혜택을 받게 되는 근로자의 임금 증가율을 살펴보면, 29인 이하 사업장의 경우 0.6%에 불과하나 30~299인 사업장은 3.4%, 그리고 300인 이상 사업장은 4.9%에 달해 그 차이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kimsh@newspim.com
저작권자(c) 글로벌리더의 지름길 종합뉴스통신사 뉴스핌(Newspim),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