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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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국회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사노맹(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이 부상했다. 자유한국당은 조 후보자가 과거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 수감됐던 전력을 거론하며 지명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특히 '미스터 국보법(국가보안법)'이란 별명을 가지고 있는 검사 출신 황교안 한국당 대표가 선봉에 섰다.
황 대표는 12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조 후보자가 1993년 '사노맹 사건'으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며 "국가 전복을 꿈꾸는 조직에 몸담았던 사람이 법무장관에 앉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직격탄을 날렸다.
1989년 결성
사노맹은 1980년대 학생운동 세력 가운데 민중민주주의(PD)를 뿌리로 하는 민족민주혁명(NDR) 계열의 단체다. 서울대 총학생회장 출신인 백태웅 하와이대 로스쿨 교수, 박노해 시인 등의 주도로 노태우 전 대통령 시절인 1989년 11월 출범했다. 1989년 1월 NDR 세력 140여 명이 모여 사노맹 출범 준비위원회를 꾸렸고, 1989년 11월 12일 지역별·업종별 노동조합 전국회의가 주최한 서울대 집회에서 사노맹 출범 선언문이 발표됐다.
이 단체의 목표는 노동자 중심의 민중통일전선을 형성해 궁극적으로는 사회주의 제도로 사회를 변혁하는 것이었다. 당시 공안 당국의 수사 결과에 따르면, 사노맹 지도부에 해당하는 조직위는 조직관리·재정을 전담하는 사무국, 조직수호와 유인물 배포 등을 전담하는 연락국으로 구성됐다. 특히 연락국은 무장봉기를 위한 폭발물 개발, 무기탈취계획, 독극물 개발 등의 특수 임무를 맡은 것으로 조사됐다.
안전기획부는 이들이 서울시내 오피스텔·상가 등에 은신처 10여 곳을 마련하고, 수사기관 수색에 대비해 가스총, 도검류, 쇠파이프, 염산 등을 비치해 뒀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황 대표가 지적한 건 바로 이 당시 안기부의 발표 내용에 해당한다.
정부종합청사에서 김영수 당시 안기부 제1차장이 남한사회주의 노동자동맹에 대한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재판부 "사노맹은 반국가단체"
1990년 안기부가 사노맹을 대규모 사회주의 혁명조직으로 규정하고 핵심 관계자들을 구속하기 시작하면서 사노맹은 빠르게 와해됐다. 1991년 3월에는 사노맹 핵심 관련자 6명이 구속됐고, 1992년 4월에는 사노맹 중앙위원장인 백태웅 교수 등 조직원 39명이 검거됐다. 안기부는 사노맹이 전국의 노조 50여 개와 대학 40여 곳에서 조직원 1230여 명을 뒀다고 발표했다. 이 사건과 관련해 기소된 인원은 300명에 이른다.
당시 재판부는 사노맹을 "국가의 존립, 안전을 위태롭게 하거나 헌법의 대전제인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파괴하려는 단체로서 국가보안법 제2조 제1항 소정의 국가 변란을 목적으로 하는 반국가단체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낮은 형량 선고한 재판부, 그리고 사면과 복권
다만 재판부는 사노맹이 사회에 끼치는 위험성이 높다고 보기 어렵다는 판단을 내렸다. 백태웅 교수의 공판 과정에 이 같은 내용이 드러난다. 1992년 1심 재판부는 "사회모순을 해결하려는 열성에서 사노맹 활동을 주도했고, 이후 합법적 정당 결성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힌 점을 인정해 검찰이 구형한 사형이 아닌 무기징역을 선고한다"고 했다. 1993년 2심에선 징역 15년으로 감형됐고, 대법원에서도 2심 판결이 인용됐다.
국제 인권단체 엠네스티 인터내셔널은 사노맹 사건이 무장반란을 꾀했다는 실체적 진실이 없다고 지적하면서 한국·미국 정부와 유엔에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1994년 '불공정한 재판을 받았거나 가혹행위를 받은 정치범 및 양심수'로 백태웅 교수, 박노해 시인 등 사노맹 관련 인사들을 '올해의 양심수'로 지정하기도 했다.
엠네스티는 1998년 김대중 대통령의 취임을 준비하던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사면복권을 요청했고, 1999년 3월 1일 사건 관련자들은 모두 특별사면 및 복권됐다. 이명박정부 시절인 2008년 12월에는 민주화운동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에서 백태웅 교수, 박노해 시인을 민주화 운동 관련자로 인정하기도 했다.
조국 몸담은 사과원, 사노맹 지원 단체
백태웅 교수의 서울대 법대 후배인 조 후보자는 사노맹 산하 남한사회주의과학원(사과원)에 가입해 활동한 혐의로 1993년 5월 구속돼 6개월간 옥살이를 했다. 당시 조 후보자는 울산대 법대 전임강사로 일하고 있었다. 사노맹 사건과 관련해 대학교수가 구속된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조국 교수 석방과 학문·사상의 자유 수호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가 구성돼 탄원 운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앰네스티 인터내셔널은 사노맹 사건으로 수감된 조 후보자를 '올해의 양심수'에 선정했다.
1993년 11월 열린 조 후보자의 1심 재판 재판장은 김황식 전 국무총리였다. 1심 재판부는 국가보안법 위반(반국가단체 가입죄 등)으로 조 후보자에게 징역 2년6월에 자격정지 2년6월,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1994년 6월 열린 2심에선 형량이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으로 줄었다. 사과원이 국보법상 반국가단체가 아니라 '이적단체'라는 판단이 나왔기 때문이다.
2심 재판부는 "사과원의 설립목적과 강령, 활동 내용 등을 종합해 볼 때 반국가단체인 사노맹에 이론적 기초를 제공하고 사노맹을 지원하는 데 주목적이 있지 직접 국가 변란을 일으킬 목적이 없는 만큼 이적단체로 분류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사과원 자체를 폭력적 방법으로 정부를 전복하고 국가 변란을 획책하려는 단체로 보기는 어렵다는 뜻이다. 1995년 5월 대법원은 조 후보자에 대해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2심 판결을 그대로 확정했다. 이어 1995년 8·15 광복절에 특별복권됐다.
황 "제 이야기 틀린 것 있나" 조국 "청문회에서 답할 것"
황교안 대표는 조 후보자의 사노맹 연루 사건을 언급한 것이 '공안검사의 시각'이라는 비판이 제기되자 "제가 이야기한 것 중에 틀린 것이 있느냐"고 반박했다. 황 대표는 13일 강원 고성군에서 열린 고성·속초 산불 피해지역 주민 간담회를 마치고 기자들을 만나 "판결문을 보셔도 여러분이 판단하고 이해하실 수 있을 것"이라며 "법무장관은 헌법과 법을 지키겠다고 하는 확고한 신념뿐만 아니라 그에 맞는 처신과 행동을 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부적격하다는 판단 때문에 제가 말씀을 드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 후보자는 야당의 공세에 대해 "할 말이 많지만 인사청문회에서 충분히 답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백상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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