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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5 (토)

"한국 사회 불평등… 정치·경제권력 독점한 386에도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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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서 '불평등의 세대' 펴낸 이철승 교수

"상층 노동시장과 기업, 정치권력의 최상층을 차지한 386세대의 자리 독점은 한국 사회 전체의 비효율을 걱정해야 할 수준에 이르렀다. 386세대의 자리 독점은 상승 통로가 막혀버린 아래 세대에게 궁극적 회의를 자아낼뿐더러, 온갖 폐해를 양산할 것이다."

이철승(48)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가 최근 펴낸 '불평등의 세대'(문학과지성사)는 386세대의 정치·경제적 권력 독점을 정조준한 학술서다. 그는 한국 사회의 불평등·양극화 문제를 기존의 계층이 아니라 세대론적 관점에서 접근해 학계의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 교수는 미 노스캐롤라이나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시카고대 교수를 거쳐 2017년 서강대에 부임했다.

책에서 그는 1996~2016년 총선의 세대별 입후보자·당선자 분포나 100대 기업 이사진의 세대별 분포 같은 실증적 데이터를 바탕으로 "2010년대 들어 386세대는 정치·경제 권력에서 모두 1930년대 출생한 산업화 세대를 대체했다"고 주장했다. 386세대 막내뻘인 그가 내부 비판에 나선 이유가 뭘까. 10일 서강대로 향했다.

조선일보

이철승 교수는 “오늘날 한국 사회의 정상에 오른 386세대는 미래의 주역인 청년 세대가 더 나은 삶을 꿈꿀 수 있도록 자리와 기회를 보장해줘야 할 책무가 있다”고 말했다. /주완중 기자


―386세대가 불평등을 악화시켰나?

"정치적으로는 2016년 총선에서 386세대가 역사상 가장 높은 입후보자 점유율(48%)을 자랑하면서 산업화 세대를 몰아내고 정치권력을 장악했다. 문제는 후속 세대인 30~40대 입후보자·당선자 점유율이 역대 최하위권이란 점이다. 정치권만이 아니다. 1998~ 2017년 국내 100대 기업 임원의 세대별 분포를 조사하면, 1960~1964년에 출생한 세대는 2010년대 초·중반에 처음 40%를 돌파한 뒤 내려올 줄 모른다. 정치·경제 수뇌부를 장악한 386세대가 아래 세대의 성장을 억압하며 장기 독점하고 있다."

―386세대는 민주화에 적잖은 공로가 있지 않은가.

"386세대의 '저항 네트워크'가 권력을 확장·유지하기 위해 철저한 '이익 네트워크'로 전환했다. 과거 평등주의와 민족주의로 무장한 386세대는 20대에 노동·빈민 운동 현장으로 '하방(下放)'했다. 이런 조직화의 경험과 네트워크야말로 이 세대의 최대 자산이다. 1990년대 구소련의 몰락과 함께 시민단체와 제도권 정당으로 진출하고 40~50대 들어서 정치·경제 권력을 장악하기에 이른다."

―386세대가 1997년 IMF 외환 위기의 최대 수혜자라고 분석했다.

"IMF 폭탄은 산업화 세대의 머리 위에서 폭발했다. 1930~1940년대 출생한 세대는 당시 추풍낙엽처럼 노동시장에서 퇴출됐다. 386세대는 이 칼날을 무사히 비켜났다. 또 세계화·정보화의 물결이 전 세계를 휩쓴 1990년대 이 흐름에 올라탄 뒤 임원으로 승진했다. 문제는 IMF를 겪은 기업들이 짧게는 3~4년, 길게는 10년 가까이 정규직 채용에 지극히 인색했다는 점이다."

―세대 간 불평등을 지나치게 과장한 건 아닌가.

"지금 한국 사회에는 3중의 위계 구조가 존재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조합의 유무(有無)에 따라 신분이나 임금에서 차별받는다. 거기에 동아시아 특유의 연공(年功) 구조까지 얽히면 그야말로 '신분 계급'이 되고 만다. 이 때문에 20~30대들은 청년 실업과 스펙 경쟁의 극심한 고통을 받고 있다. 슬프게도, 이들 20~30대가 바로 386세대의 자식들이다."

조선일보

―386세대는 '열심히 산 죄밖에 없다'고 반발할 것이다.

"첫 책 '노동·시민 연대는 언제 작동하는가'를 통해 노동·시민운동에 뛰어들었던 386세대가 복지 국가의 확장에 큰 기여를 했다고 경의를 표했다. 그들의 민주화 투쟁이 첫 번째 희생이라면, 지금은 자식 세대의 미래를 위해 '두 번째 희생'이 절실하다."

―'두 번째 희생'이란?

"나를 포함해 대기업, 공공 부문, 전문직에 해당하는 상층 정규직은 임금 상승을 포기하는 정도를 넘어 임금의 일부라도 청년 고용을 위해 내놓고, 그 포기분만큼 고용이 이뤄지도록 '사회적 협약'을 체결해야 한다. 처음엔 1%로 시작해서 조금씩 늘려갈 수 있다. 연금에서도 노후 보장의 정도를 조금이라도 줄여서 다음 세대에게 남겨주는 '세대의 희생'이 필요하다."

[김성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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