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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6 (화)

이슈 5·18 민주화 운동 진상 규명

광주정신 훼손 논란까지 번진 5·18 추모탑 표절 공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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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일 교수, 디자인 도용 주장하며

추모탑 제작자인 나상옥 작가 고소

나 작가 “5월 정신 훼손 의도 의심”

이 교수 “왜 광주시민을 들먹이냐”

중앙일보

이동일 부산대 명예교수가 ’5·18 추모탑을 디자인한 나상옥 작가가 작품을 표절했다“며 근거로 제시한 본인 작품 투시도(왼쪽)와 5·18민주묘지 중앙에 있는 추모탑. [사진 이동일 교수,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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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5·18민중항쟁 추모탑(이하 5·18 추모탑)을 둘러싼 표절 공방이 5·18 정신 훼손 논란으로 번지고 있다. 5·18 추모탑은 광주광역시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 중앙에 있는 40m 높이의 조형물이다. 1995년 김영삼 정부 시절 ‘5·18묘역 성역화 사업’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광주시는 그해 ‘5·18 추모탑 조형물’ 공모를 통해 조각가 나상옥(61)씨 작품을 당선작으로 선정해 사업비 15억원을 들여 1997년 5월 16일 추모탑을 세웠다. 매년 5·18 기념식은 이 추모탑 앞에서 열린다. 20여년간 광주 민주화운동을 상징해 온 이 추모탑이 갑자기 표절 논란에 휩싸인 까닭은 뭘까.

이 사건은 부산대 미술학과 이동일(80) 명예교수가 지난달 11일 “5·18 추모탑을 디자인한 나상옥씨가 내 작품을 표절했다”며 나 작가를 저작권법 위반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소하면서 불거졌다. 검찰은 피고소인인 나씨 주소지가 있는 광주 북부경찰서에 사건을 맡겼다.

“1995년 7월 광주시가 주관한 ‘5·18 추모탑 조형물’ 공모에 내기 위해 이 교수가 부산 모 건축설계사무소 Y소장에게 건넨 탑의 투시도(설계도) 패널을 나씨가 모방했다”는 게 고소장의 골자다. 앞서 그해 3월 ‘공동 출품’을 제안한 Y소장은 7개월 뒤인 10월 “우리 안이 낙선됐다”며 이 교수에게 투시도 패널을 돌려줬다고 한다.

이 일을 잊고 지내던 이 교수는 “2009년 5월 매스컴을 통해 5·18 추모탑을 처음 본 순간 내가 오래전 만든 디자인과 너무나 똑같아 당시 공모에 냈던 디자인이 도용 또는 원용됐다고 의심하게 됐다”고 말했다. “당시 Y소장이 이 교수의 작품을 공모에 내지 않고, 나상옥 작가나 다른 사람에게 보여줬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기단부 상단 꼭지 부분 좌·우측이 예각으로 절단된 점, 기단부 중간 부분이 다이아몬드(◆) 형태인 점 등을 표절 근거로 댔다.

정작 제작자인 나 작가는 “누구 말이 맞는지 팩트 체크하는 것 자체가 광주시민들에게 걱정을 끼치는 일”이라며 말을 아꼈다. 그러면서도 “표절은 아니다”고 일축했다. 나 작가는 “(탑이) 비슷하냐, 비슷하지 않냐가 문제가 아니라 누가 먼저 (제작)했느냐 판단해 볼 문제”라며 “이 교수가 먼저 작품을 발표했다거나 귀감이 되는 장소에 그런 탑을 세웠다면 제가 보고 베낄 수 있는데 그런 객관적 근거가 전혀 없다”고 했다.

나 작가는 “(5·18 추모탑은) 당시 광주미술인공동체 조각 분과 10여 명이 공동으로 만들었다”며 “부산까지 가서 건축사무소 업자(Y소장)를 만난 적이 없다”고 했다. 그는 “40m 공간에 탑신·제단·벽면 등 부수적인 것들이 많고, 모습도 (이 교수 작품과) 닮지 않았다”며 “그 시절 5·18 탑을 제작하려고 했다면 5월 정신을 알아야 하는데 이 교수가 이 정신을 아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그는 탑 기단부 중간에 있는 ‘계란을 손으로 감싸 쥔 모습’에 대해 “당시 민주화를 위해 피땀 흘린 광주시민 정신을 소중히 간직하고 계승하자는 의미를 담았다. ‘5월 정신의 부활’을 상징한다”고 했다. 그는 “(이 교수가) 인제 와서 표절 의혹을 제기하는 게 5·18 정신을 훼손하려는 의도가 아닌지 의심이 든다”고 했다.

이에 이 교수는 “나 작가가 왜 광주시민을 걸고 들어가는지 모르겠다. 광주시민을 모독한 일이 없다”고 발끈했다. 그는 “난 오로지 나 작가가 내 작품을 표절했다는 게 초점이다. 무고한 광주시민을 대상으로 고소한 게 아니다”고 했다.

고인석 광주 북부경찰서 수사과장은 “양측에 대한 조사는 마쳤고, 광주시에서 받은 당시 공모에 출품된 자료를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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